“외환위기로 촉발된 구조조정 과정에서 기업들 사이에서 주주중시 경영패러다임이 자리를 잡았습니다. 이에 따라 기업들은 단기투자에 관심을 갖는 반면 투자하면 15년 이상이 걸리는 바이오 산업 등 장기투자는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병욱 전국경제인연합회 산업조사본부장은 “산업 인프라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현금흐름을 장기적으로 개선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등 치밀한 산업정책이 추진됐어야 했다”고 국제통화기금(IMF)관리체제 이후 10년을 돌아봤다. 그는 IMF 관리체제 진입이후 구조조정 분야 실무를 맡아 빅딜 등을 챙겼던 주역 중 한 사람이다. 이 본부장은 “거의 모든 정부 부처가 금융 재정분야에 정책의 초점을 맞추는 등 정책 쏠림현상이 심했다”고 말했다. 금융과 산업은 두 개의 바퀴처럼 조화를 이뤄야 하는데 외환위기 이후 투자나 산업정책을 주도하는 사람들의 입지는 오히려 약화됐다는 것.

이 본부장은 또 IMF관리체제 진입이후 부채비율이 400% 수준이던 기업들이 이를 200% 이하로 줄이는 데 급해 핵심기업까지 외국 등에 매각함에 따라 국가적 차원에서 산업기반이 크게 약화됐다고 지적했다. “미국식 주주중시경영체제에서는 기업들의 가치가 배당과 주가로 나타납니다. 전문경영자들의 입지가 어려워짐에 따라 오너를 대신해 과감하게 장기 투자를 하는 것을 기대하기 힘든 구조가 됐지요. 단기업적주의가 성행하면서 장기적 차원에서 주주이익을 생각하는 마인드가 약해 아쉽습니다.”

그는 기업 투자가 부진한 다른 이유로 IMF관리체제 진입 이후 해외 판로망, 해외 자원개발 등 미래산업부문과 인프라 투자 부문 등이 대거 정리된 점을 꼽았다. 기업들이 핵심기업을 매각한 상황에서 기술개발과 경쟁력 확보를 하는데 필요한 투자는 2배 이상의 자금을 동원해야 하는 등 리스크가 더욱 커졌다고 말했다. 이 본부장은 “기업들이 출자총액규제 등 각종 규제와 함께 적대적 인수합병(M&A)시장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어 미래 위험 투자에 나설 수 없는 상황”이라며 “웬만한 기술은 1~2년내로 중국의 짝퉁 제품 등이 나와 시장을 교란시키고 있어 이를 막기 위한 장치도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철저하게 고통을 감내하면서 IMF 위기체제를 극복한 부문이야말로 대기업이며 지금도 상시구조조정을 하는 등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일자리를 많이 창출할 수 있고 신산업동력이 될 수 있는 서비스 산업은 개방이 미흡해 제대로 파이를 키워내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본부장은 “작지만 강한 ‘강소국’ 중 하나인 한국은 아시아 시장에서 법률, 의료, 교육, 관광 등 서비스 분야 경쟁력을 높여야 하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우리 서비스분야 경쟁력을 제고시키는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진수기자 jiny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