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는 ‘경제전쟁’의 시대다. 1차대전과 2차대전 등 총칼을 들고 영토 침범 싸움을 벌였던 20세기와의 차이점이다. 글로벌화한 세계시장을 놓고 벌이는 거대 기업 간 경제전쟁은 영토전쟁보다 더 무자비하고 치열하다. 지난 세기의 기업 간 경쟁은 함께 파이를 나눌 수 있는 ‘과점경쟁’ 구조였다.

그러나 21세기 경제전쟁은 오로지 일등만이 살아남는 독점경쟁 구조로 흐르고 있다. 일등상품을 만들지 못하는 기업들은 설 자리를 잃는다. 기술개발이나 마케팅, 연구개발(R&D), 고객 서비스, 사회공헌 등 어느 한 분야에서라도 잠깐 한눈을 파는 기업들은 하루아침에 도태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문화일보의 새 시리즈 ‘글로벌 코리아 - 21세기 경제대전, 현장을 가다’는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21세기 경제전쟁의 최전선을 찾아가는 기획이다.

삼성과 현대차, LG, 포스코 등 우리의 간판기업들이 ‘글로벌 정글’ 속에서 벌이는 경제전쟁의 상황을 생생하게 전달할 예정이다. 미국과 유럽, 중국 등 지구촌의 큰 시장은 물론 중남미, 아프리카, 인도, 러시아 등 신흥시장까지 두루 찾아갈 예정이다. 글로벌 기업 간 경제전쟁은 국운(國運)을 좌우한다. 두 눈 크게 뜨고 지켜봐야 한다.


미국 뉴욕 맨해튼의 방 2개짜리 아파트는 요즘 150만달러 정도에 거래된다. 세계를 이끄는 ‘미국의 심장부’라는 이름에 걸맞은 금싸라기 땅이다. 그런 탓인지 미국 어디를 가나 널려 있는 대형 유통점들이 맨해튼에는 단 한 곳밖에 없다. 바로 브로드웨이 애비뉴 80번가에 있는 전자제품 유통점 서킷시티다.

지난 9일 정오쯤 맨해튼의 서킷시티를 찾았다. 매장 안으로 들어서자 왼쪽편으로 6대의 TV들이 진열돼 있었다. 맨해튼 유일의 전자유통점인 서킷시티 매장의 첫머리를 장식한 TV브랜드들은 어떤 것들인지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소니 3대, 삼성전자 2대, LG전자 1대였다.

가는 날이 장날이었을까. 인부 두 명이 마침 매장 벽면에 전시되는 TV 제품을 새로 설치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삼성전자의 40인치짜리 밀라노 TV를 새로 내걸고 있었던 것이다. 바로 옆엔 이미 설치 작업을 마친 LG전자의 37인치짜리 초박막액정표시장치(LCD) TV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가격표를 유심히 살폈다. 삼성전자의 50인치짜리 DLP(미세한 거울이 박힌 칩에 이미지를 반사해 투영시키는 기술) 프로젝터 TV에는 2849.99달러, 같은 크기의 소니 DLP TV에는 2549.98달러의 가격표가 붙어 있었다.

닉 파글리아로 서킷시티 맨해튼 지점장은 “삼성과 소니는 가격결정과 신제품 출시 등 모든 부문에서 치열한 신경전을 펼치고 있다”며 “우리 매장에서 팔리는 TV 제품 숫자로 본다면 최근에는 삼성이 우위로 올라섰다”며 “하루 10대를 판다고 가정할 경우 이중 6∼7대는 삼성전자 제품이고, 나머지는 소니와 파나소닉 제품”이라고 전했다.

파글리아로는 또 “경쟁업체 마케팅 요원들이 수시로 매장을 드나들며 매장 점검을 하는 등 경쟁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며 “삼성과 파나소닉 직원들이 가장 열심히 매장관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파글리아로는 매장 한가운데 진열된 소니의 46인치 LCD TV 앞으로 안내한 뒤 “바로 어제(8일) 새로 들여온 신제품”이라며 “제품 외곽을 둘러싼 유리 장식에 대한 고객들의 반응이 좋다”고 말했다.

최근의 시장조사 결과는 ‘메이드 인 코리아’의 약진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지난 5월 삼성전자는 사상 처음으로 미국 내 월간 판매대수 1위 자리를 차지했다. 삼성전자 북미총괄의 추종석 부장은 “판매대수 기준으로 삼성 23.9%, 소니 17.7%, 파나소닉 8.7%순을 기록했다”며 “삼성전자가 지난 1978년 미국시장에 진출한 이후 처음 이뤄낸 쾌거”라고 밝혔다.

삼성의 고민은 이 같은 시장우위를 얼마나 지켜나갈 것인가 하는 문제다. 미국 소비자들의 특징이 아주 보수적이면서도 실용적이기 때문이다. 소니나 GE 등 오래된 브랜드에 대한 미국민들의 로열티(충성도)는 요지부동이라는 것이다. 일시적으로 시장점유율의 우위를 점하고 있다고 방심할 수 없다는 게 이곳 삼성 임직원들의 이야기다.

이에 앞선 8일 오후 1시쯤, 허드슨강을 사이에 두고 맨해튼과 마주 하고 있는 뉴저지주의 파라무스 17노스 530 루트에 위치한 고급 전자제품 매장인 ‘6애비뉴 일렉트로닉스 시티’. 이곳은 일반 전자제품 매장과는 달리 특정 브랜드들의 전용 전시관을 두고 있었다.

7평 정도 크기의 LG전자 전용관이 비슷한 크기의 파나소닉, 샤프, JVC 등 세계적 브랜드의 전시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었다. LG 전용관으로 들어서자 71인치 플라스마표시패널(PDP) TV가 홀 중앙에 놓여 있었다. 제품 앞에는 “상용화된 스크린 중 세계 최대 사이즈”라는 설명과 함께 7만달러라는 가격표가 붙어 있었다. 옆에는 37∼50인치 사이의 각종 LCD TV모델들이 나란히 전시돼 있었다.

이곳 매니저인 프레드는 “LG전자가 미국시장에 들어오기 시작한 지 불과 5년 정도밖에 안됐지만 고급 이미지로 소비자들에게 어필하고 있다”며 “LCD와 PDP TV를 모두 생산하고 있는 데다 사이즈도 다양해 소비자들의 인기를 끌고 있다”고 말했다. LG전자 북미총괄의 이연모 부장은 “2003년 말 LG전자가 본격적인 브랜드 론칭을 시작한 지 1년6개월 만에 PDP TV는 2~3위, LCD TV는 7위권의 성적을 거뒀다”며 “짧은 시간에 성공적인 브랜드 신고식을 한 것 같다”고 자평했다.

뉴욕·뉴저지 = 박상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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