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패는 병가지상사라 했다. 제 아무리 강팀이라도 운이 없으면 지는 것이 월드컵의 승부이다. 우리는 스위스에 1패를 했다. 아쉽기도 하지만 그 패배는 우리 축구를 더 단련시키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 우리가 다음에 또 스위스를 만난다면 그때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을까? 그렇진 않을 것이다. 우리의 투지는 더욱 더 불타올라 스위스를 압도할 것이다. 우리는 지금껏 그렇게 살아왔다. 패배의 아픔 속에서 승리의 씨앗을 심지 못한다면 우리의 미래는 없을 것이다.

한 축구해설자가 오프사이드에 대한 견해를 밝힌 것 때문에 집중 공격을 당하고 중도 귀국했다. 패배의 아쉬움을 풀 데가 없었던 사람들에게 그는 아주 적당한 희생양이었다. 그런데 그가 악의적으로 오프사이드가 맞다고 주장했다면 그래서 얻는 이득이 무엇이었을까? 여론에 맞서 다른 의견을 말하면 바로 집단매도 당하는 우리의 풍토를 몰랐을까?

반만년 역사를 가진 단일민족임을 자랑하는 우리는 장점이 많다. 온 국민이 하나 되어 보여준 응원은 감동적이었다. 우리의 국가대표들 역시 국가대표라는 사명감 때문에 자신의 개인적인 역량보다도 더 큰 능력을 발휘하였다. 나는 그 점이 자랑스럽다. 엄청난 몸값을 받으면서 대중의 사랑을 받는 외국의 스타들은 국가대표에 걸맞지 않은 처신으로 결국은 자국에 패배를 안겨주는 빌미를 제공하지 않았던가. 개인을 버리고 팀을 위한다는 사명감이 부족하면 평소 보여주던 기량보다도 못한 경기력을 보이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그날 아르헨티나의 얼치기 시인 주심이 오심을 했다고 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반대의 의견을 말한 축구해설자가 중도 귀국해야 한다고 보지도 않는다. 그 해설자 때문에 우리가 진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프랑스가 선전하고 있다. 늙은 수탉이라고 자국 언론에게까지 조롱을 받던 팀이기에 그들의 선전은 빛이 난다. 내친 김에 그들이 우승까지 한다면 우리의 자존심에는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스페인과 브라질을 누르자 돌변한 평가는 한 편의 코미디를 보는 것 같다. 마치 나폴레옹이 엘바 섬에서 탈출했을 때 신문기사 속에서 그에 대한 호칭이 살인귀에서 우리의 위대한 황제로 변하던 상황이 생각난다.

노름할 때 ‘돈 잃고 속 좋은 놈 봤냐?’는 말이 있다. 졌는데 속을 긁는다면 기분 좋을 사람이 없다. 그런 면에서 그 해설자는 참 눈치 없는 사람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눈치 없는 사람도 필요하다. 우리 국민 모두가 비분강개한다고 해서 승부가 바뀌는 것은 아니다. 진 건 진 것이니 왜 졌는지, 어떻게 하면 이길 수 있는지 냉정한 분석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제 특정인에 대한 비난은 접어야 할 때이다. 승부는 잃었어도 사람은 놓치지 말자. 우리와 다른 의견을 가졌다고 매장한다면 반만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단일민족국가인 우리는 독선적이라고 평가받을 것이다.

참 스위스도 안 된 것이 1대0으로 끝났으면 군말 없었을 경기를 2대0이 됨으로써 자신들의 승리를 의심받는 꼴이 되었다. 거기에다가 억울한 판정이었다는 우리 국민의 한을 받아야 하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그게 얼마나 막강하고 두려운 힘인지 한 백 년 당하고 나면 알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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