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는 많은 시인이 있습니다. 어떤 경우로든 시집을 내면 시인이라 부르고, 시인으로 만들어준다며 돈을 받는 등단 전문 잡지도 있습니다. 어쨌거나 시집을 내서 화제가 되고 시집이 많이 팔리는 베스트셀러 시인이 좋은 시인이라 착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오죽하면 시인축구팀에서 회원을 받을 때, 등단을 어디로 했느냐를 따지는 지경에 이르렀겠습니까.

시인은 이 시대의 마지막 자존심이고 양심이어야 합니다. 스위스 전에서 심판을 본 아르헨티나 사람의 프로필에 시인이라고 나왔을 때 나는 최소한 시인의 자존심을 걸고 공정한 진행을 하겠지 하는 기대를 했었습니다. 하지만 그곳도 얼치기들이 있는 모양입니다. 시적인 행보는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우리들의 월드컵은 끝났습니다. 그렇게 기를 쓰고 올라갔던 스위스도 떨어졌습니다. 어차피 마지막에 한 팀만 남기는 대회입니다. 우리가 우승을 못한다면 언젠가는 떨어져야 합니다. 다만 우리가 보는 것은 우리의 자존심을 대표선수들이 제대로 지켰느냐에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에 만족하지 못한다면 이제 4년간 열심히 더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이 땅의 남녀들이 모두 축구팬이 된 듯한 6월이었습니다. 하지만 축구팬이라고 다 축구팬은 아닙니다. 그저 4년에 한 번 흥분해서 붉은 옷 입고 거리로 나가는 이는 역시 얼치기 팬입니다. 진정 축구를 사랑하는 이들은 이제 우리 선수들이 뛰는 경기장을 찾아가야 합니다.

관중이 없는 축구장에서 축구를 하는 선수들이 갑자기 수만명이 열광하는 그라운드에 섰을 때 제 실력이 안 나오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우리는 이번 경기를 보면서 각 선수들에 대한 비판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누구는 빼고 누구는 넣어야 했다며 침 튀기는 당신, 하지만 그들이 뛰고 있는 축구장엔 몇 번이나 가보셨나요?

오심도 경기의 일부입니다. 한번 내려진 결정은 뒤집을 수 없습니다. 진정 안타깝다면 500만 재경기 서명운동을 하지 말고 500만 축구장 찾아가기 운동을 해야 할 때입니다. 마지막 남은 힘을 모두 쏟아내고 쓰러져 있는 선수들에게 우리는 이제 손을 내밀어야 합니다. 시간은 또 금방 지나갑니다. 2002년이 어제 같은데 2006년이 훌쩍 다가왔고 아시안컵이 있고 올림픽이 있고 그러다 보면 다시 월드컵 예선이 시작됩니다. 이번엔 호주도 아시아 예선에 참가한다니 더욱 좁은 문이 되겠지요. 게다가 구경만 한 중국도 기를 쓸 거고 체면 구긴 일본과 중동도 명예회복을 노릴 것입니다.

이번에 있었던 문제점을 개선하는 데 4년은 턱없이 짧습니다. 우리의 무관심이 그렇게 만듭니다. 그 기간을 단축시키려면 축구장에 사람이 많아야 합니다. 제대로 축구를 보고 제대로 선수를 보는 관중이 있어야 합니다. 결과만 보지 말고 과정을 만들어야 합니다. 국내리그 경기에서도 운동장을 가득 메운 팬들이 열광적으로 응원하는 날이 오면 우리는 한 단계 올라선 대표팀을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 남미의 심판은 좀 화가 나는군요. 언제 만나면 물어봐야겠습니다. “당신이 시가 뭔지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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