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나라 중국에서 월드컵 경기를 보다가 사망하는 사람이 여럿 생겼다고 하는데 축구는 정말 사람을 흥분시키는 격렬하고 위험한 운동이다. 보는 사람조차도 안전할 수가 없는 것이다. 실제 내 주변에도 우리 팀의 경기가 다가오면 가슴이 두근거려서 청심환이라도 먹지 않으면 못 견딘다는 사람들이 있다.

새벽 4시까지 기다리는 일 또한 만만한게 아니다. 그냥 잠이 들면 지나치기 쉽고 계속 깨어 있으려면 남자들은 아무래도 술을 마시게 되는데 정작 경기가 시작할 때쯤엔 취해서 망치기 쉽다.

내 생각에 새벽 4시까지 기다리는 방법 중에서 제일 좋은 방법은 독서를 하는 것이다. 프랑스와의 시합을 앞두면 프랑스 책을 읽고 스위스와 경기를 앞두면 스위스 책을 읽는 것은 단순히 시간을 때우는 방편을 떠나 상대국의 정서를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추천할 만하다. 책을 읽으면 마음이 차분해지니 심장에 무리가 가지 않고 술을 마시거나 TV를 보는 것에 비해 피로도 덜하다. 게다가 조금 있으면 우리 선수들과 몸을 부딪치며 격돌할 나라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기질을 가지고 있는지도 짐작할 수 있으니 일거양득이라 하겠다.

첫 경기에서 만난 토고는 프랑스의 식민지여서 프랑스어를 공용어로 쓰고 있다. 아프리카라고 좋은 작가들이 없을 리 없다. 노벨 문학상을 받은 한국작가는 아직 없지만 아프리카는 여러 명의 수상자를 배출했다. 인종차별과 식민지의 고통을 담은 그들의 소설을 읽으면 그들의 생각과 투쟁심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짐작할 수 있는 열쇠가 된다. 그리고 자국의 승리를 염원한다는 부두교에 대한 책을 읽는 것도 흥미진진할 것이다.

프랑스는 두말 할 필요 없는 문학과 예술의 나라다. 우리는 프랑스의 역사와 문화가 담긴 책을 읽으며 왜 ‘레블뢰’라 불리는 프랑스의 축구 대표팀에 백인은 세 사람밖에 없고 그나마도 본토 출신이 아닌 기현상이 일어났는지를 알 수 있다. 자국 축구대표에 냉담한 언론의 자세와 개인적인 성향의 스타들이 모인 나라. 모든 답은 프랑스의 역사에 숨어 있다. 어쩌면 그들은 예전의 용병과 같은 존재들인지 모른다. 나는 이번에 프랑스와의 경기를 기다리며 집에 혼자 깨어 있었다. 경기 전의 초조감과 불안감은 예외 없이 나를 괴롭혔지만 서가에 있는 프랑스 관련 책들을 하나하나 들춰보면서 지루한 시간을 유익하게 견딜 수 있었다.

경기가 우리에게 유리한 무승부로 끝나고 환호하는 내 머릿속으로 프랑수아즈 사강의 ‘슬픔이여 안녕’이라는 소설이 문득 떠오른 건 왜일까. 한때는 넘보기도 어렵던 세계챔피언 프랑스에 0-5, 2-3으로 지더니 이젠 무승부가 되었다. 그러면 이제 앞으로는 우리가 프랑스를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다.

이제 스위스와의 결전을 앞두고 스위스의 자연을 노래한 소설들을 읽어볼 참이다. 아까 용병이란 말을 썼지만 중세에 스위스 병사들 또한 용병으로 용맹을 떨쳤다. 유럽의 각 왕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감한 스위스 용병들이 지켰던 것이다. 물론 그 이면에는 가난한 소국에서 태어나 먹고 살기 위해 용병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현실이 숨어 있다. 그래서 스위스는 천성적으로 수비가 강한지 모른다. 외세와 끊임없는 투쟁을 벌여 생존해온 우리와 스위스의 경기는 그래서 더욱 흥미진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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