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정세가 어지럽고 어려울 때도 외국이 공격을 못한 건 정체불명의 도시락 폭탄을 들고 아침에 출근하는 수많은 방위병과 밤이면 오토바이에 가스통을 매달고 질주하는 특수부대, 폭주족 때문이라는 유머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월드컵 4강국의 신화를 쌓은 한국 축구 역시 수수께끼의 나라이긴 마찬가지입니다. 몇 팀 안되는 프로리그에 그나마 관중이 야구보다도 적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 어떻게 그런 전력을 유지할 수 있는 걸까요? 한국의 정확한 사정을 파헤치기 위해서 스파이가 잠입했습니다. 서울월드컵이 열렸던 2002년부터 수년 간의 첩보활동 끝에 바로 어제 자기 나라에 제출한 보고서를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한국은 외세와 싸워온 오랜 역사 환경 때문에 비밀리에 활동하는 조직을 가지게 되었다. 한국 축구 역시 드러나지 않는 비밀 조직이 있다. 그들의 모습을 파악하려면 일찍 일어나야 한다. 그들은 조심스럽게 동트는 새벽이면 어김없이 축구화를 신고 동네 학교로 모여든다.

조직원들은 상인, 영업사원, 택시 기사, 회사원, 사장, 퇴직 노인 등으로 위장하고 있는데 한국의 모든 계층이 총망라되어 있다고 보면 된다. 국회에도 의원들의 축구조직이 있는데 정치보다 축구를 잘 하는 걸 보면 그들 역시 의원이 아니라 비밀조직의 일원이 아닐까 의심된다.

한국은 성직자들의 조찬기도회 같이 새벽에 움직이는 조직이 파워가 있다. 그들은 새벽부터 축구에 관한 정보를 교환하고 한국 축구에 관한 토론을 벌인다. 그들의 의견을 들어보면 국가대표감독이 울고 갈 정도로 논리적인데 전날 벌어진 국가대표 평가전에 대한 분석은 소름이 끼칠 정도로 정확하다.

이 조직의 무서운 점은 조직과 인원이 얼마나 되는지 파악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들은 종교의례처럼 축구를 하는데 그 수준 역시 보통이 아니다. 특징은 누군가 보이지 않는 평가를 하는지 보는 사람이 없어도 열심히, 너무 열심히 뛰는 데 있다.”

저도 스파이는 아니지만 궁금해서 신수동의 조기 축구회에 가입했습니다.

새벽에 학교에 나갔더니 너무 일찍 나갔는지 축구하는 사람들은 보이지 않고 걷기 운동을 하러 나오신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눈에 띄더군요.

하지만 잠깐 사이에 오토바이를 탄 펑크족 청년들과 자전거를 탄 아저씨, 승용차를 몰고 온 사람들이 축구화를 들고 모였습니다.

그런데 걷기 운동을 하는 노인들 중에서도 백발이 성성한 몇 분이 축구화를 신고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날 아침 게임을 하는데 60대의 노인 세 분에게 무참하게 농락당했습니다.

홍콩배우 저우싱츠(周星馳)의 ‘소림축구’라는 영화가 생각나더군요. 이 축구팀은 생긴 지 30년이 훨씬 넘었는데 그때부터 운동하던 원년 멤버도 아직 공을 찬다는 겁니다. 축구용품점을 하는 50대의 욕 잘하는 회장님 역시 70년대부터 뛰었는데 지금도 일주일의 반 이상은 전국의 축구행사에 봉사하고 다닌답니다.

총무는 숯불갈비 집 밴을 타고 오고 정말 생긴 거 그대로 마르고 날카로운 슈터는 세무공무원이고 밤섬지킴이라는 양반은 제가 킥을 제대로 못한다고 불러다 연습을 시켜댔습니다.

조폭 행동 대원처럼 생긴 마르고 까만 감독은 말 한 마디로 선수를 넣고 빼는데 저 역시 못한다고 바로 교체당했습니다.

원로회원들이 가입한 신입회원의 나이를 유난히 챙기기에 이유를 알아봤더니 축구팀끼리 하는 50세 이상의 리그가 있는데 가용인원이 부족해 합정동 팀에 진다는 겁니다. 뭐 몸풀기 전에 막걸리 마시고 취해서 그냥 집에 가시는 분도 있다네요. 결국 어려보이지만 49세라는 회원이 하나 들어와 그분들께 기쁨을 주었습니다. 저도 칠팔 년 후면 합류합니다. 그때까지 건강하게 그라운드를 지켜주시면 그 괘씸한 합정동 축구회는 잡을 수 있을 겁니다.

신수생활축구회 파이팅!(이렇게 점수 따서 잘리지 말아야지.) 선거일에도 주민등록증 들고 와서 투표한 뒤에 8시부터 공 찬답니다. 아무래도 스파이 말이 맞는 것 같아요.

poet9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