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를 유지하기 위해서 사람들은 규칙을 만든다. 중독성이 강한 약물이나 도박 같은 위험한 것은 금지하기도 한다. 이게 다 건전한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서이다. 그렇다면 마찬가지로 축구도 금지해야 한다. 축구는 위험하다.

앞에서 예로 든 것들보다 훨씬 더 위험하다. 몇 명의 선수들과 동그란 공 하나만 있으면 멀쩡했던 사람들이 미친다. 자기가 직접 차든 남이 차는 것을 보든 사람들의 가슴은 위험하게 뛰기 시작한다. 제 능력을 벗어나 뛰고 뒹굴고 소리 지르고 탄식하고…. 도대체 다른 어떤 약물이 이런 위험한 결과를 만들 수 있단 말인가.

저 하나 먹고 살기도 어려운 시절이다. 불경기에 실업률은 치솟고 빈곤층이 늘어난다고 아우성이다. 유가는 끝 간 데 모르고 치솟고 환율은 바닥을 기는데 지금 사람들은 온통 축구 얘기뿐이다.

몇 년 만에 한 번 치르는 선거도 코 앞인데 아무리 우리 정치가 수준 이하라고는 하지만 시장후보로 나온 사람이 사실은 사람이 아니라 사이보그가 변장한 것이라 해도 사람들은 그저 오늘 박지성이가 부상에서 회복돼 훈련을 받았는지가 더 궁금하다. 이래서야 어떻게 이 나라가 온전하게 굴러가겠는가.

축구는 위험하다. 한국전 다음날이 예비군 훈련일이라고 날짜를 바꾸고 벌써부터 경기가 있는 날은 어디에서 밤을 새울 것인지가 떨어지는 주가지수보다 더 고민스러운 자들이 이 세상에 가득하다. 무슨 유럽처럼 저소득층의 훌리건들이나 그렇다면 걱정도 안 하겠다. 이건 그래도 교육 좀 받고 지성인이라는 문인들마저도 그렇다. 문인들 중에서도 가장 고상한 척하는 시인들이 더 그렇다.

그저 밤마다 꼬박 새우며 원고지 앞에서 창백한 얼굴로 고민하고 있어야 할 시인들이 국가대표 경기라도 있으면 표를 예매해놓고 돈 뺏고 사람을 강제로 끌고 가지를 않나, 고상한 예술론이 주를 이루어야 할 술자리에서 국가대표 인선이 잘못됐느니 잘됐느니 갑론을박하다가 급기야는 자리를 박차고 나가지를 않나, 간신히 잠이 든 다음 날 새벽에 전화해서 그래도 독일을 잘 아는 차두리는 넣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소리를 지르지 않나.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나의 안면(安眠)을 위해 누가 열대 과일 이름 닮은 국가대표 감독 전화번호를 좀 가르쳐 주기 바란다.

월드컵을 보게 해달라고 태국인가 어디 외국의 교도소에서 폭동을 일으켰다는 뉴스를 봤을 때도 ‘정말 세상엔 별 일이 다 있어’하고 웃어 넘겼었다. 자살골을 먹은 축구선수가 살해당한 것도 먼 나라의 일이었다. 그런데 지금 주변을 돌아보라. 멀쩡히 눈을 뜨고 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눈동자에 축구공만 보이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하긴 지난 월드컵 때 온통 붉은 옷을 입고 길거리로 뛰쳐나온 사람들이 백만을 넘긴다는 시절이 되고 말았다. 축구에 미치는 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다. 세상의 어떤 바이러스보다 무서운 전염병이다. 이젠 연속극을 열심히 보던 감성적인 아내마저도 ‘지단이 아직도 선수야?’ 하고 물어본다. 감염이 의심스러운 상황이다. 우리 집 역시 안전지대는 아닌 것이다.

분명히 말하지만 축구는 위험하다. 별로 만족스러운 건 아니지만 그나마 내가 몸담고 있는 이 사회가 온전히 유지되려면 축구는 금지해야 한다. 돌아보면 이 시대는 얼마나 빈약한 토대 위에 서 있는가. 우리는 광대처럼 위태로운 줄타기를 하면서 하루하루를 견디고 있을 뿐이다. 그러니 그런 우리에게 공 하나를 놓고 뛰는 게임에 열광하는 것은 얼마나 사치스러운 일일 것인가.

당장 살판이라도 난 양 모여서 소리 지르고 국기를 흔들면서 자동차가 다니는 길을 막고 운명에 시위하듯이 가두 행진하는 것이 어디 가당키나 하단 말인가. 그러므로 축구는 위험하다. 축구는 이 엄숙한 사회의 법과 질서를 위협한다. 숨죽이며 얌전히 살아가야 할 구성원들을 필요 이상으로 흥분시킨다. 마치 자기가 골을 넣은 양 하늘을 바라보며 달려가는 저들의 모습은 얼마나 위험해 보이는가. 그렇다 결론은 하나다. 식민지 백성에게 조선어를 금지했듯이 과부에게 재가를 금했듯이 밤 열두 시 이후에 통행을 금지했듯이 축구는 금지해야 한다.

poet91@hanmail.net

＜이번주부터 시인 축구단 ‘글발’의 열성멤버인 전윤호시인의 축구 이야기를 연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