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열렸던 ‘제3회 한국대중음악상’시상식 무대에 오른 록밴드 몽구스는 ‘아름다운 낭만의 도시 서울’에 대해 감사한다고 밝혔다. 지금 젊은 세대들에게 서울은 아름답기도 하고 낭만적이기도 한 모양이다. 사실 서울이 아름답다는 말, 낭만의 도시란 말은 지금의 서울을 건설한 주역이기도한 이 땅의 중년들에게는 다소 아연할 만큼 낯설다. 서울이 아름답다니? 거기다 낭만? ‘낭만’이라면 70년대 문화예술인들 사이에서 유명했던 서울 종로2가의 한 술집을 떠올릴 순 있어도, 회색빛 음울한 시멘트 빌딩으로 가득찬 이 메갈로폴리스에서 근대적 인식의 하나인 낭만을 떠올리긴 쉽지 않다. 그러나 적어도 사진작가 강운구(64)씨를 만나면 ‘낭만의 서울’이란 말도 어법상 가능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 강씨가 있어서 ‘서울이 낭만적’이란 말을 사용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물론 강씨가 낭만적이란 뜻은 아니다. 그러나 이 회색빛 도심의 한가운데에서 강씨를 만난다는 것은 적어도 자신의 주체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인식하고 있고 또 그 인식대로 살아가고자하는 ‘한 근대’를 만나는 것이기도 하다.

강씨는 30년 넘게 광화문에서 산다. 광화문의 한 빌딩에 있는 작업실을 30년 동안 지키고 있다. 점심 무렵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뒤편에 있는 빨간색을 칠한 찻집에 들르면, 검은 중절모를 쓰고 청바지에 검은 재킷을 걸친 강씨가 커피 마시고 있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는 특별한 일이 없으면 점심이 끝날 즈음, 유명한 이탈리아 커피전문점을 떠올리게 하는 ‘빨간 찻집’에 나타난다. 이른바 도시의 산책인이다. 사실 한국처럼 변화가 극심한 사회에서 한 건물에 30년 넘게 살기도, 한 지역에서 30년을 머물기도, 또 한 찻집에만 유독 그 시간에 등장하는 생활패턴을 갖기는 쉽지 않다. 무엇보다 한 건물이 30년 넘게 지탱하기 어려운 개발만능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지 않은가. 이런 생활패턴, 내가 좋아하는 것만 하겠다는 태도, 나의 행동과 생활방식이 곧 나의 정체성이요 나의 실존이란 인식, 개인의 습관과 추억 또 행동양식으로 당대의 삶을 대변하는 것…. 강씨야말로 전근대와 탈근대가 뒤죽박죽으로 나타나는 한국사회에서 드물게 발견할 수 있는 전형적인 근대인의 모습이다. 근대인 강운구…. 그는 오늘도 그 ‘빨간 찻집’에 나타났다. 그를 ‘빨간찻집’에서 22일 만나 사진과 인생, 그리고 광화문에 대해 ‘산책’했다.

―요즘도 자주 지방 출장을 갑니까.

“한달에 한두 번은 지방에 갑니다. 이젠 찍을 게 별로 안보입니다. 왜 찍을 게 없을까 생각해보니 이제 내가 경험이 축적돼서 어지간한 풍경에 대한 면역이 생기지 않았나 싶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나이가 드니 감정이 무뎌진 게 아닌가 싶습니다.”

―감정이 무뎌지는 것이 두려우세요?

“나이에서 오는 현상이라면 받아들여야겠지요.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새로운 경험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떤 때는 맨손으로 돌아올 때도 있어요. 옛날에는 억지로라도 찍었는데 요즘은 확실한 것이 아니면 아예 접근을 안하니까. 그땐 한번 출장 갔다오면 현상하는 데만 며칠씩 걸렸는데 요즘은 딱 한번에 끝나요. 어떨 때는 한번에도 다 할게 없어서 두번 간 걸 합쳐서 현상하기도 합니다. 이젠 동하지 않으면 마음이 움직이지 않습니다.”

―어떤 것이 마음을 움직입니까.

“우선 자연 자체가 마음에 들어야 돼요. 그 풍경에 사람을 움직이는 의미가 있어야 되지요. 형식적으로도 아름답고 내용도 풍부한 이중구조를 가진 장면이 만나면 확 동합니다. 나는 대상을 만들어서 찍는 스타일이 아니라 생각을 담을 수 있는 대상을 찍기 때문에 오래 기다려야 하고 많이 찾아다녀야 합니다.”

―광화문에 오래 머물고 있는 이유가 있습니까.

“내가 30여년 동안 같은 건물에서 작업실을 가지고 있는 걸 보면서 어떤 사람은 평생 같은 자리를 유지하고 있으니 농부라고 말해요. 또 어떤 사람은 지방을 떠돌아다니면서 일하니까 유목민라고도 합니다. 내가 광화문에 살고 있는 것은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는 아닙니다. 광화문은 전통적 가치를 찾아내는 나의 작업을 시작하는 근거지일 뿐이지 광화문 자체에 대한 관심은 없습니다. 내가 관심을 가지는 건 여러 지방 지역들입니다. 광화문은 그곳으로 출발하는 지점일 뿐이지요..”

―광화문은 스타일이군요.

“나는 싫어하는 것은 안합니다. 그걸 사람들은 고집이 세다고 말하는데 좋아하는 것만 하는 것은 당연한 거 아닙니까. 어떤 것을 강요받는 것은 체질적으로 가장 싫어합니다.”

―그래도 살아오면서 타협하기도 했을 텐데요.

“저널리스트로 일할 때는 시간과 조건과 타협해야지요. 그러나 절대적으로 내 작품을 할 때는 타협불가입니다.”

―사진의 가장 큰 매력은 뭡니까.

“본 것을 내 느낌대로 가장 가깝게 재현할 수 있다는 겁니다.”

―결국은 자기 표현, 자기 드러내기군요.

“그렇지요. 젊었을 때는 찍은 대상을 드러내는 비중이 더 컸는데, 지금은 내 마음을 드러내는 비중이 더 커진 것이 다르다면 다를까. 어쨌든 드러내 보이는 거지요. 사진은 대상에 내 감정과 느낌을 이입해서 찍는 겁니다.”

―그냥 저기 서 있을 뿐인 대상에 어떻게 내 감정과 느낌을 이입할 수 있습니까.

“대상은 누구에게나 감정이 드나들 수 있는 통로를 열고 있습니다. 그걸 찾아내는 것이 경험과 지식입니다. 뭐든지 보이는 것 이상을 나타내야 합니다. 저기 컵이 있는 데 컵만 찍으면 광고사진이겠지요. 보이는 컵 이상을 나타내는 것이 작품입니다.”

―광화문에서 하루를 다 보낼 때도 있겠군요.

“친구들 만나고 놀기에는 광화문이 딱입니다. 광화문이기 때문에 거의 매일 친구들이 찾아오고 같이 차 마실 수 있지요. 또 광화문의 좋은 점은 교보문고가 있다는 거 아닙니까. 거기서 책 구경, CD구경하고 슬슬 산책하기 좋은 곳이지요.”

―지금 작업하고 있는 것은 뭡니까.

“지금 가장 갈등하고 있는 것은 지금까지 해왔던 작업을 정리하는 것이 나은지 더 찍는 것이 나은지 알 수 없다는 겁니다. 사실 그간 작업해왔던 것을 정리해야 됩니다. 한편으로는 새로운 사진을 계속 찍고 싶기도 하고…. 둘 다 할 시간은 없고….”

―요즘은 사진작업이 디지털화 되면서 많은 일반인들도 사진 찍기에 관심을 가집니다. 디지털 작업에 대해선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신지.

“디지털화되면서 사진 찍는 방법은 너무나 쉬워졌습니다. 내가 60년대 처음 사진 찍을 때는 그 기술이 무지하게 어려웠지요. 지금은 이 디지털이란 끔찍한 테크놀로지가 나오면서 모든 사람에게 찍는 자유를 줬지요. 그 자유가 사진의 내용도 변하게 할 거란 생각을 합니다. 나도 디지털 작업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까지 디지털로 작업할 생각은 없습니다. 프린트해서 보면 디지털은 너무 경박하고 깊이가 없는 것이 보입니다. 젤라틴실버프린트의 흑백인화가 가진 저 고전적 깊이를 포기할 생각은 아직까지 없습니다.”

―어쩌면 예술이란 것이 아날로그적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 음악도 LP로 듣겠군요.

“음악은 CD LP 둘 다 듣습니다. 나처럼 몇십년 동안 음악을 듣다보면 모든 음악이 다 좋아집니다. 물론 나이에 따라서 이 사람 저 사람 좋아하게 되지만 결국에는 음악 전체를 다 좋아하게 됩니다.”

―계획은.

“그 동안 찍어 놓은 것 정리하다보면 몇가지 기획거리가 나올 것으로 보입니다. 그 다음에야 똑같지요. 출장, 커피, 산책, 음악듣기….”

문화부장 msba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