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성이라는 유령이 세계를 배회하고 있다’고 말하면 어떨까. 21세기는 ‘다양성의 시대’다. 다양성은 하나의 이데올로기, 하나의 패러다임이다. 분야를 막론하고 다양성·다원화가 필요하다는 것은 상식으로 굳어지고 있다. 현실에서는 어떤지 몰라도, 적어도 레토릭 차원에서 우리는 다양성의 시대를 살고 있다.

다양성은 서구에서 비교적 최근에 등장한 개념이고, 국내에서는 역사가 더욱 짧다.

획일성, 좀더 고상하게 부르자면 ‘주류’라는 개념이 여전히 우리 사회를 지배한다. 군대에 가지 않은 남성은 비정상인으로 치부되고 외국인 노동자는 비하의 대상일 뿐인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한국에서 마이너리티는 문자 그대로 ‘소수자’일 뿐, 다양성의 근원이 되는 긍정적인 힘으로 인식되고 있지 못하다.

미 보스턴대학 인류학과 교수라는 저자는 미국에서 다양성 개념이 확산된 역사를 살펴보고 이 개념이 얼마나 많은 오해를 낳고 있는지 따진다. 저자는 대학과 지역사회·기업 등에서 다양성이라는 말이 겉포장에 불과하거나, 문화적 우월감에 빠진 이들의 자기과시용으로 전락하거나, 하나의 상품으로 대량소비되는 경향까지 있다고 진단한다.

동시에 다양성이라는 개념은 계몽주의 이래의 유산이자 민주주의의 근간인 평등 개념과 근원적인 모순을 안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러므로 이제는 ‘다양성이라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날 때가 되었다’고 주장한다.

아직 다양성에 대한 고민이 레토릭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 우리 현실에서, 이 책은 어쩌면 너무 ‘앞서 나간’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미국에 국한된 저자의 분석틀을 조금만 넓히면 다양성의 본질에 대한 이해와 통찰을 키우는데에 이 책은 유효한 지침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흠이 있다면 다양성을 거부하고 유행을 따르는 이 책의 형태. 줄간격이 넓고 활자가 큰데, 하드커버에 책값은 비싸다. 김진석 옮김.

구정은기자 koj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