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지난해 12월 24일 드라마 ‘겨울연가’의 촬영지 남이섬에서 열렸던 연인상 제막식에 참가한 일본인 관광객들. 연인상은 ‘겨울연가’의 두 주인공 배용준, 최지우를 닮은 동상이다.

일본 규슈 가고시마현에 속한 섬 야쿠시마(屋久島). 울릉도 면적의 3배 정도되는 이 섬은 한국으로 치면 땅끝 마을 해남에 해당하는 곳이다. 이 곳에 가면 아담한 삼나무 박물관이 있다. 그리고 전시물을 소개하는 여직원 나오코(33)도 만날 수 있다. 지난해 12월 한일정상회담이 열리기 며칠전 취재차 방문한 이 곳에서 실감한 건 놀랍게도 한류 열풍이었다. 나오코는 “그룹 ‘신화’와 탤런트 박용하에게 ‘미쳐 있다’”며 “그 사람들을 아느냐”고 물었다. 지도상으로도 찾기 힘든 이 작은 섬마을의 통통한 노처녀마저도 한국 연예인들에게 열광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쯤되면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 과연 일본에서 한류는 대세로 자리잡은 것인가. 그리고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

◈당분간 한류는 계속된다〓취재 과정에서 만난 대부분의 한류 관계자들은 “일본 내 한류가 지속될 것”이라는 긍정론을 편다. ‘한류가 대세’라는 것이다. 오는 4월 일본에서 한국연예 전문지를 창간할 예정인 권영신씨는 “그동안 여러 매스컴에서 한류의 장래에 대해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기도 했으나 이미 일본 연예산업 자본이 투입돼 흐르는 한 한류는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이에 대해서는 한국의 대중문화 콘텐츠를 일본에 소개하는 권우성 IMJ코리아 대표의 의견도 일치한다. 그는 “이미 일본 미디어들이 한국 드라마로 큰 재미를 본 이상 여기서 멈추지는 않을 것이며 오히려 붐 조성에 적극 기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특히 올해부터는 일본 방송사 등이 이미 만들어진 한국 드라마 등을 돈주고 사들이기 보다는 제작 단계에서부터 지분 참여를 할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지금까지 일본에서 방영된 한국 드라마는 20여편. 일본 방송사들이 한국 드라마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유는 간단하다. ‘돈이 되기 때문’이다. 그것도 아주 편한 방법으로 돈을 벌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는 방송사보다 연예기획사들의 힘이 우위에 있다. 드라마 한편에 80억~90억원의 돈을 쏟아붓지만 방송사에게 떨어지는 권리는 방영권 정도고 나머지는 다 기획사들의 몫이다. 골치 아프게 직접 드라마를 제작하느니 차라리 10억~20억원에 한국 드라마를 수입하는 것이 더 낫다.

◈이것 만큼은 짚고 넘어가자〓일본에서 방영되는 ‘겨울연가’를 시청하다보면 더빙된 소리들이 먹먹하게 들린다는 걸 알게 된다. 이는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배경음악들을 일본 방송사들이 지우다 보니 나머지 효과음마저 삭제되는 바람에 벌어지는 현상이다. 한국에서는 탤런트들이 연기하는 장면에서 외국의 음악을 예사롭게 배경으로 깔지만 일본에서는 그 음악의 저작권이 해결되지 않는 한 넣지 않는 것이 관례다. 저작권에 대한 양국의 관점 차이는 심각하다. 한국 드라마를 수입하는 돈보다 이를 편집하는 비용이 더 크다는 말이 나올만 하다. 한국 연예산업 시스템의 불투명성도 문제다.

한국의 연예기획사들은 ‘실권 사장’과 ‘홍보 사장’이 따로 있는 것이 대부분. 때문에 일본 연예산업 관계자들이 분명한 의사 소통 채널을 찾기가 어렵다. 또 한편의 드라마가 제작되면 TV 방영권, 비디오판권, 인터넷 방영권 등 각종 권리를 여러 업체들이 나눠갖기 때문에 단번에 계약하기가 힘들다는 게 일본측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이토록 복잡한 연예산업 구조는 한류를 문화수출산업으로 발전시키는 데 큰 장애요인이 된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한류 열풍이 불면서 한일 양국의 ‘보따리 장사’같은 브로커들이 활개를 치고 있는 것. 예를 들어 배용준을 일본에 초청할 수 있다고 떠드는 브로커만 해도 수백명에 이른다. 이들 브로커는 양국의 방송사, 연예기획사를 오가며 “일본에 진출시켜주겠다”“그 드라마 권리는 내게 있다”고 큰소리치며 돈을 요구한다.

일본 5대 연예기획사중 하나인 스타더스트 재팬의 최동휘씨는 “최근 너도 나도 일본에 가려고 하다보니 정상급 연예인들마저 일본에서는 별로 힘이 없는 기획사들과 덥석 손을 잡는 경우가 있다”면서 “눈앞의 이익에 급급하다보면 단명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승형기자 lsh@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