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적으로 이뤄진 대학수학능력시험 부정은 우리 사회의 근간을 흔들고 있다. 어떻게 여기까지 왔을까. 어른들이 평준화니, 사학법 개정이니, 7∼8차 교육과정이 어떠니 하며 공론(空論)에 묻혀있는 사이, 아이들은 부정을 해서라도 대학에 가야 한다는 벼랑 끝에 몰려 있었다. 이 사건을 놓고 누구도 아직 입을 열지 못할 만큼 우리 사회 전체가 대안을 못찾은 채 충격에 싸여있다.

TV뉴스에 잠깐 나와 “앞으로 인성교육을 강화하고…”라고 말하는 교육관료를 보면 헛웃음이 나온다. 교육당국은 또 ‘정책’을 바꿔 ‘대책’을 마련할 것이다. 언론은 다시 현장의 교사들을 죄인 취급할 것이다. 그것으로 될까. 진정한 변화는 사회의 변화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 첫 단추는 교육의 두 주체인 교사와 부모가 먼저 꿰야할지 모른다. 마침 교사와 학부모를 향해 변화를 호소하는 두권의 책이 나왔다. ‘교수법(敎授法)’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가진 미국 미시간공대 조벽 교수와 오랫동안 고교에서 직접 학생상담을 통해 학부모들의 문제를 파악한 경성고 신규진 교사의 책이 그것이다.

나는 대한민국의 교사다 / 조벽 지음/해냄

저자(48)는 미국에서 학부와 석·박사 과정을 마친 공학박사로 ‘교육학’과는 거리가 있다. 그런데 1988년 미시간공대 기계공학과 교수로 부임한 뒤 학생을 위한 혁신센터와 학습센터 소장을 지냈고, 현재 학생성공센터 소장과 학내 옴브즈맨을 맡는 등 교육과 인연을 맺었다. 미시간대 역사상 유일하게 최우수 교수상을 2회나 수상했고, 지난 10여년간 미국은 물론, 국내 80개 대학에서만 200회가 넘는 교수법 강의를 할 정도로 ‘교수를 가르치는 교수’로 이름이 나있다.

공학박사가 교수법의 대가가 된 것은 ‘살기 위해서’였다고 그는 고백한다. 미시간대에서 강의를 시작한 첫 해, 그는 30분짜리 강의를 준비해놓고 1시간으로 늘리는 자신을 바라보며‘사기꾼’이라는 자괴감과 심한 우울증에 시달렸다. 바로 그 절망의 밑바닥에서 돌파구를 찾기 위해 교수법 공부를 시작했다는 점은 시사하는 게 많다. 스스로 변화를 찾은 것이다. 그가 얘기하는 요체 역시 교사의 자기혁명이며, 그래야 교사가 행복해질 수 있고, 거기에 교육의 미래가 달려있다는 것이다.

한국의 교육과 교실은 붕괴했는가. 저자는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 교육만 심각한가? 사람들은 마치 서구교육에 견주어 대한민국 교육만 엉망인 것처럼 난리를 떨지만, 저자는 “그나마 우리 교육은 아직 회복할 희망이 있다”고 강조한다.

한국교육의 붕괴를 피해 미국이민을 간다고 한다. 그러나 “한국의 학교는 ‘땡땡땡’종을 치지만, 미국 학교는 ‘탕탕탕’총을 쏜다.” 미국 중고생 절반 이상이 성경험이 있고, 30%가 마약을 상용하며, 17%가 정신과 치료를 받는다. 청소년 임신과 폭력은 흔해빠졌다. 우리 교사들이 교실에서 머리를 염색했거나 수업에 무관심한 학생을 보고 ‘절대 열받지 말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 정도는 ‘귀여운’ 거니까.

이미 미국은 50년대부터, 일본은 80년대부터 교실의 붕괴가 왔고, 우리는 이제 시작이다. 하지만 근래 가파른 이혼율 증가에 따른 가정의 파탄은 앞으로 상상하기 어려운 교실의 붕괴를 가져올 것이라고 저자는 전망한다.

교육붕괴는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라 인류사의 흐름 속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현재 세계는 산업시대에 맞는 교육체계가 지식기반시대에 맞는 교육체계로 변화하는 과정에 있으며, 지금의 혼란은 과도기적 현상이다. 다양화, 특성화, 자율화가 특징인 지식기반사회의 교육틀을 세우기 위해서는 산업화가 필요로 했던 획일적, 일방적, 수직적 교육의 틀은 ‘반드시’붕괴돼야 한다. 그래서 먼저 선생님들이 변해야 한다. 한국의 교육문제를 ‘한국병’이니, 교사들의 탓이니 하는 좁은 시야와 무기력에서 벗어나야 한다. 저자는 한국 교육의 힘을 빼고 교사를 괴롭히는 다섯가지 병으로 ▲절망하는 교사 ▲타성적 무기력에 빠진 교사 ▲맹목적 신봉에 허탈해하는 교사 ▲불신하는 교사 ▲책임회피에 급급한 교사를 꼽는다.

교사의 절망과 무기력은 아이들에게 곧바로 전염된다. 교사는 희망을 키우는 직업이다. 적어도 절망을 준다면 그는 교사로서 자격이 없으며 무엇보다 자신부터 병들어 간다. 밝게 뛰노는 학생들을 보며 사랑과 보람에 눈물이 고이는 교사의 정서…, 그것을 회복할 때 교사도 살고 교실도 산다.

저자는 이를 위해 다섯가지 병에 대한 다섯가지 방법을 제시한다. 첫째는 시대의 흐름을 먼저 읽을 것. 절망을 극복하기 위해선 비전이 필요하다. 둘째, 스스로 리더가 돼야 한다. 나부터 바뀌어야 한다. 셋째, 타성적 무기력을 벗기 위해 바로 지금 시작해야 한다. 넷째, 우리(교육자, 학생, 사회)의 장점을 찾는 습관을 지녀야 한다. 우리는 단점만 들춰 너무 많은 상처를 서로에게 줬다. 마지막으로 교육자의 지혜를 갖춰야 맹목적 신봉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선 시대와 사회가 요구하는 새로운 교수법을 배워야 한다.

저자의 한국교육에 대한 진단과 처방이 저자 자신이 미국에서 공부한 탓에 우리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고 느낄 수 있다. 또 교육을 도구적으로 접근하는 한계도 있다. 그러나 교사에게 다시 힘을 주고자 하는 저자의 의도는 우리에게 지금 중요한 부분임에 틀림없다.

엄주엽기자 ejyeob@munhwa.com


가난하다고 실망하는 아이는 없다 / 신규진 지음 / 푸른나무

수능부정을 보도하는 TV화면에서 고개를 푹 숙인 채 경찰조사를 받는 아이들을 보면서 지금 어른들의 모습과 너무나 닮았다는 생각을 하는 부모들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성적’이라면 눈에 불을 켜고 놀이터가 아닌 학원으로 아이들을 내몰았던 것을 반성하는 부모라면 그래도 희망은 있다.

어쨌든 곪았던 상처는 터졌다. 이제 그 상처를 치유하는 것이 우선이다. 모든 문제의 해결점은 그 원인에서 시작하듯, 극명하게 노정된 삐뚤어진 아이들의 인성(人性)을 건사하는 방법찾기는 그 씨앗을 뿌린 부모에서 출발하는 것이 당연할지 모른다.

그 점에서 이 책은 절묘하게 시각을 맞춰 발간된 부모교육서다. 오랫동안 고교에서 상담교사로 재직해온 저자(사진)는 지난해 서울·경기지역 중·고교 학생 2500여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와 인터뷰에서 증언된 학생들의 목소리를 책으로 엮었다. 정확한 근거를 갖고 경험을 통해 전하는 이야기여서 신뢰가 가는 책이다.

서문에서 저자는 “단순한 자녀 교육의 방법론이 아니라 부모-자녀 관계의 현주소에 대한 문제인식에 무게를 두었다”고 밝힌다. 진정한 교육의 완성은 흔히 세속의 ‘성공’이 아니라 부모와 자녀간의 돈독한 인간관계에 있다고 그는 호소한다.

대부분의 부모는 그저 돈 많이 벌어 다른 아이들보다 많은 것을 가르치는 것이 책임을 다하는 것이라고 믿고 있다. 부모 자신은 ‘하숙생’처럼 집과 직장 사이를 오간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지점은 2500여명의 학생 중 ‘가난한’ 부모를 원망한 학생은 단 1명도 없었다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집이 가난한 것이 왜 실망스럽지 않았을까. 다만 가난보다 아이들이 실망을 넘어 좌절과 분노를 느끼도록 하는 부모의 잘못된 행위가 허다하게 많다는 것이 저자의 분석이다. 우선 아이들에게 가장 큰 충격은 부모의 싸움이다.

“초등학교때 부부싸움이 대판 벌어지더니 아빠가 나에게 물었다. ‘너 아빠랑 살래, 엄마랑 살래?’ 황당, 충격이었다.”(K고 1학년)

“엄마는 술에 잔뜩 취해 들어와 ‘이혼하자, 같이 죽자’하며 운다. 이런 가정에서 살아야 되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D고 1학년)

부모의 싸움을 목격한 아이들은 안전의 위협을 느끼며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 때문에 아이들은 인터뷰와 설문조사중 “엄마·아빠를 죽이고 싶다”, “증오스럽다”, “두번 다시 보고 싶지 않다”는 등 강한 부정적 단어를 사용해 적개심을 드러낸다.

또 이들은 분노, 집중력 손상, 자신감 결여, 얼빠짐 등 심리적 반응을 보이고 지속적으로 스트레스를 받아 불안장애, 교실일탈, 흡연이나 음주 등 행동반응으로 발전하게 된다.

아이들에게 가장 충격적인 스트레스가 부모의 싸움이라면, 가장 잦은 스트레스를 주는 것은 부모의 통제와 강요다. 지나친 통제나 강요는 아이들의 거짓말-폭력-탈선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함정에 빠지게 만든다.

“문·이과를 결정할 때 이과에 가고 싶었는데 부모님이 문과선택을 강요하셔서 이과를 포기했다. 그때 아버지의 말씀은 ‘인생을 어렵게 살려고 하지마’였다.”(M여고 2학년)

“진로문제 때문에 부모님과 크게 충돌했다. 부모는 내 꿈을 무시했고(…)그때 이후로 난 부모를 부모라 생각하지 않았다.”(S여고 3학년)

이처럼 합리적이고 절제된 꾸지람이 아니라 부모들의 일방적인 강요나 통제는 아이들의 의사결정권을 박탈하고 이는 가치관의 왜곡과 심리적인 저항을 불러와 결국 아이들을 시드는 꽃으로 만들 뿐이다. 따라서 저자는 통제나 강요보다는 믿음, 비난보다는 칭찬이 아이들의 교육에 절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이 책에서 무슨 새로운 이론을 얘기하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 부모로서 아이들에게 마음을 여는 법을 말하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이들을 정확히 보아야 한다. 그것이 출발점이다. 이 책은 그 점에서 실제적인 도움을 준다.

저자는 “병자가 자신의 병을 부정하고 치료를 원치 않을 때 아무리 훌륭한 의술도 소용없는 것처럼, 부모-자녀관계에 대한 문제인식이 없다면 아무리 좋은 육아지침도 쓸모가 없다”고 말한다. 부모 자신이 스스로와 아이들을 객관적으로 보는 데서 해답을 찾을 것을 주문한다.

윤두현기자 ydh117@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