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정부에서 청와대 복지노동수석과 보건복지부장관을 지낸 이태복씨는 민주화 운동가 출신이다. 유신정부 시절 반독재민주화 운동으로 대학에서 제적됐고, 1981년에는 노동운동을 하다 8년간의 옥고를 치렀다. 하지만 장관까지 지냈음에도 이씨에게서 사라지지 않는 운동가로서의 이미지 탓일까. ‘대한민국은 침몰하는가’란 제목의 책은 얼핏 그와 어울리지 않는 듯하다. 핵심 내용을 정리한, 책 표지의 다음과 같은 문구에 이르면 생소함은 더해진다.

“중국산 제품의 범람 속도와 내용이 눈부시게 빠르다. 기술격차도 2~3년밖에 안된다. 일본과의 격차는 더 벌어져 지난해 대일무역적자가 190억달러나 된다. 반면에 한국은 전략부재와 내부갈등으로 비틀거리고 있다. 풍전등화의 위기다.”

‘한국은 남미형 국가다’, ‘박정희 모델의 후속타가 없다’, ‘목소리 큰 쪽이 이긴다’ 따위의 이야기도 이른바 ‘수구 기득권자’가 늘 주장해온 내용과 유사하다. 적어도 책의 외형에서 민주화와 노동자의 권익을 외쳐온 운동가 이씨의 모습은 찾을 수 없다. 그가 책까지 써가며 한국 위기론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머리말에서 책을 출간하게 된 저간의 사정부터 살피자.

“2004년 중반의 한국사회가 부딪친 위기는…재생산의 무너져 내리는 위기이자 전환기적 위기요, 파국으로 빠져가는 총체적 위기다. 자칫하면 우리 세대 역시 시간을 놓쳐 (일본에 나라를 빼앗긴 선조처럼) 원망과 탄식의 대상이 될지 모른다.” 이런 문제 의식으로 그는 한국이 당면한 위기상황을 진단했고, 책에다 자신이 분석한 위기의 내용과 대책을 담았다는 것이다.

이씨가 세계화, 국제화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 운운하거나, 무조건 시장제일을 외치는 신자유주의자와 구별되는 내용은 책의 본문을 읽어야 알 수 있다. 책의 처음에서 그는 듣고 싶은 이야기 외에는 귀를 막아버리는 노동과 시민단체등을 꼬집지만, 전략도 없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입 권고를 넙죽 받아들였다거나, 국제통화기금(IMF)구제금융 당시 한국을 집어삼킨 초고금리정책과 그 뒤의 신자유주의 숭배에 대해서 더욱 날카로운 비판의 칼날을 들이댄다. 천신만고 끝에 국민소득 1만달러 시대로 다시 돌아왔지만, 한국사회에 충만했던 미래에 대한 희망과 자신감은 사라졌다는 것이다. 여기에다 우리가 대외적으로 처한 상황은 참으로 엄혹해서, 한국은 중국에 먹히고 있으면서도, 일본과는 점차 멀어지고 있다.

침몰을 예방하고, 나아가 위기를 극복할 대안은 무엇인가. ‘자신감 회복이 급선무’라고 시작하는 예방책에서 그는 일본 따라잡기를 최우선으로 국가전략 목표를 분명히 하자거나, 자동차 부품 산업 등에 선택과 집중을 확실히 하자는 대책등을 제시한다. 우리가 익히 들어온 신규 투자 기업에 모든 제한을 풀자, 중소기업을 대통령이 직접 챙겨야 한다, 사회 안전망을 튼튼히 하자는 이야기도 있지만, 지방분권보다는 행정개혁이 먼저다, 경쟁력 강화와 ‘삶의 질 위원회’를 만들자는 주장은 비교적 생소하다.

주목할 만한 것은, 더러는 익숙하고 또 더러는 생소한 이들 주장에서 그가 운동가가 된 동기와 장관을 지낸 이의 경륜이 동시에 읽힌다는 점이다. 제목만 보면 ‘공자 말씀’으로 여겨지는 이야기들이 살펴보면 치열한 고민 끝에 나온 자신의 이야기인 점도, 그런 주장을 경험과 각종 표와 그래프로 뒷받침하는 점도 눈에 띈다. 책이, 재야로 물러난 정치인이 흔히 쓰는 유의 책과 다르게 설득력을 가지는 이유다.

김종락기자 jr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