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 의하면 인류 최초의 인간은 아담과 이브다. 그러나 이브보다 먼저 릴리스가 있었다. 독일의 정신과의사 한스 마츠박사가 쓴 ‘릴리스컴플렉스’는 아담의 첫번째 부인이자 신화적 인물인‘릴리스’를 빌려 전세계적으로 퍼져있는 비정상적이고 잘못된 모성애를 문화, 역사적으로 설명한다.

1990년 통일된 독일에서 동독출신들이 겪는 심리상태를 예리하게 파헤친 ‘감정의 정체상태’(교통체증처럼 해결되지 못한 감정의 퇴적물이 다양한 질병과 성격장애를 가져오는 원인이 된다는 이론)로 명성을 얻은 그는 지난 해 출간된 이 책으로 또 다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를 기록하며 화제를 일으켰다.

유대교에 따르면 신이 인간을 창조할 때 최초의 인간 남녀, 아담과 릴리스를 똑같은 방법으로 동등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릴리스는 아담에게 복종하기를 거부하고 ‘여성상위’를 주장했으며 아담이 이를 거부하자 신을 모독하고 에덴동산에서 도망가 버렸다.

릴리스는 그 벌로 ‘음탕한 여자’의 상징이 되어 아이들을 훔쳐가거나 죽이는 ‘악녀’의 원조가 되었으며 이후 신은 외롭다고 불평하는 아담을 위해 그의 갈비뼈로 수동적인 두번째 여자 ‘이브’를 만들었다. 그 이래로 기독교문화는 ‘이브’의 모성을 토대로 가부장제사회를 존속시켜왔다.

릴리스는 여성의 무의식 가운데 본질적인 부분을 상징한다. 무엇보다 권력과 성을 추구하고 아이들을 싫어하는 여성이자 시대를 불문하고 가부장적인 사회가 금기시하던 여성상이다.

저자는 릴리스를 인정하지 않는 개인이나 사회 모두 여러가지 병적인 증상을 보이며 남녀 모두 성장기에 겪은 ‘모성장애’로 인해 사회 전반에 갈등이 일어나게 되고 릴리스를 억압하는 이러한 복합적인 심리현상을 ‘릴리스컴플렉스’라 명명한 것이다.

그러나 저자에 따르면 어떤 남자도 ‘이브’이기만 한 여자와 살면서 진정한 남자가 될 수 없으며 어떤 여자도 ‘아담’이기만 한 남자와 살면서 성숙한 여자가 될 수 없다.

따라서 이러한 ‘아담’과 ‘이브’가 부모가 되면 자신의 아이가 지나치게 감정이나 쾌락을 표출하지 않는지 감시하게 되고 자식을 교육의 대상으로 보게된다. 또한 이들은 릴리스컴플렉스를 극복하지 못한 삶을 재생산해내고 상대에게 끝없이 실망함으로써 공동의 삶을 위협하고 아이들에게 고통을 더해준다는 것이다.

20세기 인류를 지배한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은 릴리스컴플렉스를 인지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오이디푸스컴플렉스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마츠박사는 오이디푸스컴플렉스를 전면부정한다.

성장기 유아가 성적 욕망의 발달단계로 이성부모에게는 성적인 관심을, 동성부모에게는 질투를 느낀다는 오이디푸스컴플렉스는 오히려 유아기에 모성장애를 겪은 인간에게 나타나는 병리현상이며 남녀모두에게 모성과 관련된 릴리스컴플렉스가 문제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수천년간 여성의 동등권을 부인한 것에서부터 시작해 한편으로는 여성을 잔인하게 억압하고 무시하고 핍박하는 태도, 다른 한편으로 어머니를 존경하려는 의도에서 행해지는 ‘동정녀 마리아’에 대한 숭배는 불행한 방식으로 인류문화에 영향을 주었던 갈등상황을 뚜렷하게 보여준다는 것이다.

릴리스컴플렉스는 무엇보다 남녀의 미성숙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릴리스를 부인하고 ‘이브’로 살아가는 여자는 여성의 본성가운데 어느 일면만 고집함으로써 결국 아이에게 손상을 입힌다.

또한 ‘릴리스’를 부인하고 ‘아담’으로 살아가는 남자는 여자의 유혹의 힘에 두려움을 느끼고 그 갈망과 도전을 수용하지 못해 아내를 자신의 ‘어머니’로 삼고 아이와 경쟁자가 된다.

물론 그의 결론은 남녀 모두 ‘릴리스’와 ‘이브’의 대통합을 이루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베스트셀러는 한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다. 수천년동안 악녀의 원조로 금기시되어왔던 ‘릴리스’를 불러내 21세기의 모성을 제시하는 이 책으로 ‘아담’의 두 여자 ‘이브’와 ‘릴리스’의 화해가 이루어질까? 이미옥 옮김.

유숙렬기자 slyu@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