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면서 늘 자객(刺客)을 꿈꾸었다. 코트의 깃을 세우고 걸으며 홀로 세상에 시비를 걸었다. 덤빌테면 덤벼봐. 내 허리춤에서 한번 섬광이 일면, 세상 모든 허세들은 추풍낙엽처럼 스러지리라. 그래, 칼을 갈듯 글을 갈았다. 정신의 숫돌에 언어의 날을 비비고 문질렀다.

그러나 기회는 찾아오지 않았다. 아니, 내가 기회를 찾아가지 않은 것이다. 나는 늘 칼만 갈았을 뿐, 칼을 꺼내 보일만큼 용감하지 못했다.

이제, 품 속 깊이 감춰둔 비수를 꺼낸다. 부끄럽다. 꼭 여자아이가 초경(初經)을 겪는 느낌이다. 늦은 나이에, 주책이다. 비린내가 가시지 않은 칼을 뽑아주신 심사위원들께 감사드린다. 무엇보다 서연호 선생님, 내 검술을 아껴주신 사부님께 작은 보답이 된 듯하여 기쁘다. 그리고 부모님, 고아처럼 떠돌던 아들을 잘 참고 보아주신 그들에게 가장 큰 빚을 졌다. 이 모든 빚을 갚기 위해서는 다시 언어의 날을 세워야 하리라. 병든 세상의 급소를 향해.

◈약력

▲1969년 대구 출생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동 대학원 박사과정 재학

▲고려대, 숭실대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