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양평군 용문면 마룡리에 살던 김모(여·39)씨는 2000년 12월 끔찍한 경험을 했다. 한밤중에 문신투성이 남자들이 찾아와 “남편 도박빚 7000만원을 갚으라”고 행패를 부렸다.무시무시한 협박도 이어졌다. 김씨는 자식들이 해코지를 당할까 두려워 아파트를 팔아 빚을 갚은 뒤 양평을 떴다.

양평 출신으로 중고자동차 매매업을 하는 박모(20)씨도 지난해 6월 고향을 찾았다 곤욕을 치렀다. 험악한 얼굴을 들이대는 동네 선배에게 800만원짜리 승용차를 넘겨주고 와야했다. 박씨는 2개월 뒤쯤 또다시 승용차를 빼앗겼지만 신고할 엄두도 못냈다. 고향에 있는 가족들에게 해가 갈까 두려웠던 까닭이다.

최근 양평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4년전 양평에서 ‘남한강파’라는 폭력조직이 결성된후부터 이 지역에서 평화는 사라졌다. “타 지역 폭력배들로부터 고향을 사수한다”는 ‘엉뚱한’명분을 내걸고 뭉친 15명의 20∼30대 ‘어깨’들이 고향을 갈취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들은 주민들을 상대로 높은 이자의 사채놀이를 하고 도박장을 개설했다. 폭력은 일상적이었다. 동네 후배들이 지역을 ‘욕 먹인다’며 승용차로 납치, 야구방망이로 전신을 구타하기도 했다.

주민 한모(37·상업)씨는 “한다리 건너면 다 아는 사이일만큼 좁은 동네인 이곳에서 암적인 존재였다”고 털어놓았다.

‘남한강파’가 4년 가까이 양평을 주무를 수 있었던 것은 이들과 피해자들이 대부분 학연과 지연으로 얽혀있기 때문이었다. 동네 선후배 사이로 언제든 마주칠 수 있어 아무도 신고하지 못했던 것이다. 양평읍내 유일한 파출소인 양근파출소 관계자가 “일부 조직원에 대해 경찰이 감시하고는 있었지만 최근 1년간 이들과 관련해 신고가 들어온 것은 하나도 없었다”고 말할 정도였다.

서울경찰청 조직폭력수사대는 11일 ‘남한강파’ 두목 김모(30)씨등 일당을 검거, 구속했다. 그러나 경찰은 피해자 진술을 거부하는 주민들 때문에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대부분의 피해자들은 “무서워서 뭐라 말할 수 없다. 피해보상 같은 건 필요없고 앞으로 다시는 얼굴을 안 봤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입을 다물었다.

/양평〓오남석기자 greentea@munhw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