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이면에 주목하며 소외층의 일상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는 김성복 교수의 미국사 연구는 미국은 물론 유럽 역사학계에서도 평가받고 있다. 독립전쟁 당시 뉴욕 허드슨강변의 농촌사회와 소외받는 농민들의 삶에 주목한 ‘뉴욕 식민지의 지주와 소작인’(1978)은 미국 초기역사연구회로부터 최고의 책으로 선정됐고, 영국·독일·프랑스·이탈리아 등 유럽의 학계와 각종 저널에서도 주목을 받았다. 그는 이 책에서 영미 지식인과 역사가들이 자영농민에 대한 숭배와 소작인과 지주체제에 대한 반감 때문에 뉴욕 식민지 사회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다는 것을 지적했는데, 그 학설은 미국사가들에 의해 갈수록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또한 1993년 겨울 미국역사학보에 실린 논문 ‘미국 독립전쟁의 정치화의 한계’는 전쟁의 이면을 다뤄 역사의 비극과 소외층에는 관심을 두지 않던 미국 역사학계에 큰 충격을 주었다. 논문에서 그는 전쟁의 잔혹한 측면을 조명하는 동시에 일반 시민의 고민과 고충을 해부했다. 그는 “일반 미국사가들은 아직도 미국혁명을 ‘자유의 행진’이란 관점에서만 보는 경향이 강하다”고 지적한다. 대체로 낙천적인 미국인은 비극적 역사에 둔감한 편이라는 것.

그러나 6·25를 겪으며 17세 나이에 학도병으로 참전해 전쟁의 참상을 직접 보고 느꼈던 그는 미국 독립전쟁 이면에도 감춰진 고충이 있을 거라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던 것이다. 기존 연구와 그의 연구가 확연히 다른 것은 바로 이러한 이방인으로서의 이력 때문이다. 그는 “역사의 전모를 파악하려면 비극과 패배자, 그늘 속에 숨어 있는 이들에 대해서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의 연구는 지방사, 미국사에 머물지 않고 거시사, 세계사로 비약하고 있다. 미국 혁명이 세계사에 미친 영향과 의미를 진단한 논문도 써냈고, 한국 현대사 집필 작업도 준비중이다.

/정희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