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탄이 빗발처럼 쏟아지는 전선에 투입된 병사의 핏발선 두 눈에 내일이 보일 리 없다. 그에겐 오로지 죽이지 못하면 죽는다는 절체절명의 순간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살아남은 병사에게도 내일은 어김없이 찾아오는 법이다. 그는 전쟁이 끝나면 고향에서 다시 선량한 시민으로 살아가야 한다.

이제 언론사 세무조사 문제는 ‘언론개혁 전도사’로 불리는 민주당 노무현 상임고문의 말대로 정권과 일부 언론간 ‘전쟁’, 그것도 국지전이 아닌 전면전으로 치닫고 있다. ‘조세정의’와 ‘언론탄압’ 공방으로 시작한 이 전쟁은 양편에 여야 정치권, 다른 언론사, 시민단체에다 일부 문인·학자들까지 가세해 전선이 전방위로 확대되고 있다. 싸움이 워낙 살벌하고 과격하게 진행되다보니 마땅한 중재자도 나타나지 않고 있다. 자칫 잘못 중재에 나섰다가 양편으로부터 동시에 면박·배척을 당할까봐 몸을 사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 과정에서 심각한 문제는 우리 사회의 공공이익을 창출·유지·전파하는 역할을 맡은 이들이 온통 이 패싸움에 매몰돼 다가올 내일을 잊고 있는 게 아니냐는 점이다. 이들이 언론전쟁의 승패에만 촉각을 곤두세우며 모든 사안의 판단기준을 이 전쟁의 유·불리에 맞추는 사이 최근 속출한 각종 민생·경제현안과 남북관계, 외교·안보문제의 해법은 미궁에 빠져들고 있다.

언론사 세무조사에 정치적 의도가 있었느냐, 없었느냐에 대해선 여야의 주장이 첨예하게 엇갈리고 있지만 이 문제가 이제 정치적 사건이 됐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을 것 같다. 민주사회에서 정치적 사건은 사법적·행정적 처리와는 별개로 선거라는 민의의 최종 심판 절차를 거치는 게 자연스럽고도 당연한 수순이다. 김대중 대통령도 지난 12일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이 문제에 대해 검찰의 공정한 처리를 거듭 강조하면서 “국민과 역사의 심판을 각오하고 한점 의혹없이 해나가겠다”고 말했다.

따라서 상황이 정상적으로 흐른다면 내년 지방선거와 대선에서 이 문제가 민의의 선고를 받고 최소한 정치적으로는 매듭이 지어져야 한다. 그러나 최근 정치권에서 여론조사 결과를 아전인수로 해석하며 자신의 주장만이 국민의 호응을 받고 있다고 강변하는 것을 보면 여야 모두 민의의 판결을 겸허히 받아들일 생각이 없는 게 아니냐는 의심이 든다.

특히 색깔론 제기와 지역감정 부추기기, 특정인 인신공격 등 이전투구 양상은 선거를 앞두고 인위적으로 민의를 왜곡하려는 저의까지 엿보인다.

이번 전쟁의 목적이 양편이 대를 이어 불구대천의 원수로 지내자는 것은 아닐 것이다. 언젠가 전쟁이 끝나면 양편은 여전히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상호관계를 재정립해야 할 것이다.

전쟁이 끝난 뒤 우리 사회 전체가 고향에 돌아간 병사가 평화시대에 적응하지 못해 방황하는 ‘귀환병사 신드롬’에 빠지지 않으려면 지금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조용 정치부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