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선 문명과 선진 기술에 대한 동경, 그리고 세계화에 따른 영어의 중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부각되고 있다. 우리나라 교육에 대한 회의적인 태도에 더하여 요즈음 그 어느 때보다도 조기유학의 바람이 거세게 일고 있다. 조기유학의 장점은 많이 알려져 있지만 단점 또한 고려하지 않고서는 조기유학을 시킬 것인지를 결정할 수 없다.

사람이 어느 정도의 교육을 받고 나면 한 사람과 또 다른 사람의 역량의 차이를 가져오는 것이 ‘나됨’, 즉 자아정체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자아정체감의 형성이 한창 활발히 이루어지는 시기가 바로 청소년기인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정체성은 자신과 타인에 대한 믿음·자율성·근면성, 그리고 삶에 대한 열의 등으로 구성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성향은 한 개인의 타고난 기질적 성향·가족환경·삶의 경험, 그리고 나아가서 한 개인이 속해 있는 사회나 국가를 바탕으로 하여 형성되는 것이다. 따라서 아이가 어려서부터 안정적인 부모자녀관계를 형성하고 성격이 원만하게 성장해 학교에 들어가면서 요구되는 학습능력과 학습태도도 좋고, 사회성이 좋아서 대인관계가 원만한 아이라고 하더라도 청소년이 되면서는 자신의 모든 것을 되돌아 보고 다시 평가하며 친구들과 비교하게 된다. 부모의 가치관까지도 사회의 기준과 비교하여 자신만의 독립된 가치관을 나름대로 형성해가는 시기인 것이다.

이 과정에서 청소년들은 이제껏 살아왔던 방식에 회의를 품고 부모와 사회에 도전장을 내기도하며 부모와는 다른 자신만의 고유한 삶의 방식을 실험해보려고 하기도 한다. 따라서 건강한 자아정체감을 확립하기 위해서는 부모가 제공하는 안정 속에서 부모의 지지를 받으면서 자신만의 의견을 갖는 것을 격려하고 허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렇게 무수한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실수가 아이의 삶에 큰 짐이 되지 않을 수 있게 하는 환경조성이 가정과 부모인 것이다. 결과적으로 아이가 부모와 다른 삶을 살게 된다고 하여도 어려서부터 형성된 부모 자녀사이의 믿음이 미래의 아이의 삶의 가장 기본적인 기초가 되기 때문이다.

유학을 가서 새로운 문화나 환경에 적응하는데 영향을 미치는 요소로는 우선 아이의 나이를 들 수 있다. 나이에 따라서 아이 자신의 적응능력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인이 되기 전까지는 한 살이라도 늦게 유학을 가는 것이 정서적으로 도움이 된다고 볼 수 있다. 또한 과잉보호를 받은 아이보다 어려서부터 자신의 일을 독립적으로 처리하도록 훈련된 아이가 환경 변화에 더 잘 적응한다. 기질적으로는 긍정적이고 덜 예민하며 집중력이 좋고 원만한 아이가 부정적이고 예민하여 다루기 힘든 아이나 반응과 행동이 느린 아이보다 적응력이 좋다. 또한 어린시절 힘든 경험을 하여 정서적·신경적인 취약성이 없는 편이 낫다.

새로운 언어와 문화, 낯선 거처와 학교에 적응을 돕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지속적인 부모의 보살핌인데 부모가 멀리 떨어져 있다면 아이의 적응을 위해 가장 필요한 도움을 줄 수가 없다. 더구나 버릇이 없고 과잉보호를 받으며 자란 아이들은 큰 환경의 변화 없이도 적응장애를 일으키기도 하는데 부모와 멀리 떨어져 낯선 환경에서 적응하는 것은 더욱 어려움이 많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조기유학을 결정하는 데에는 아이의 나이와 기질, 정서적·육체적 성숙도, 자립심, 그리고 학습능력과 학습에 대한 열의를 고려하여 결정해야 한다.

자녀를 어떤 환경에서 키우게 되더라도 자신의 뜻을 펼치기 위한 기술과 방법론을 배우고 난 후에 한 사람을 다른 사람보다 돋보이게 하는 것은 한 개인의 자아정체감이다. 이것은 자신을 구성하는 요소를 철저히 이해하고 자신의 자아정체감을 장점으로 부각시킬 때 가능하다고 본다. 자녀를 만족스러운 환경에서 부족함없이 아이를 키울 수 없다고 할 때에도 아이의 삶의 과정 중에서 청소년기에 해야할 가장 중요한 일은 자아정체감 확립이라는 것을 부모는 잊지 말아야 한다.

<김은혜 소아정신과 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