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이민에 이어 조기유학이란 말이 회자되고 있다. 교육에 대한 불만과 불신의 목소리가 높다. 한국에서 교육시키는데 어려움도 많고 결과도 별로 밝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조기유학을 시키거나 아니면 차라리 교육이민을 하겠다는 것이다. 큰 일이 아닐 수 없다. 다른 일도 아닌 국가 백년대계라는 교육에서 이런 현상이 일어나고 있으니 나라의 앞날이 걱정이다.

우리 나라는 세계 다른 어느 나라에 비해서도 교육열이 높고 교육에 대한 관심이 깊은 것으로 평가되어 왔다. 국민 모두 교육에 일가견을 갖고 있으며, 역대 정권들도 한결같이 대통령 직속으로 교육정책심의회니 교육개혁위원회를 두고, 거기서 내로라하는 교육학자 교육전문가 교육관련 시민단체 대표들로 하여금 교육문제를 진지하게 연구하고 논의하여 교육정책들을 입안토록 했는데, 그 결과가 교육불신으로 나타나고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여기서 우리는 다소 냉정한 머리로 그 현상을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 우선 교육이민이란 말에는 지나치게 현혹될 필요가 없을 것으로 본다. 정확한 통계수치를 갖고 있지는 않지만, 이민하는 사람의 절대다수는 이민해야 할 다른 까닭이 있을 것으로 안다.

다만 그 명분을 ‘자녀교육을 위해서’에서 찾고 있지 않나 생각된다. 물론 우리는 이민하는 사람이 없도록 살기 좋은 나라로 만들어야 하고, 소수의 사람이라도 교육 때문에 이민하는 사람이 생기지 않도록 우리의 교육을 바로잡아야 한다. 그러면 조기유학, 그중에서도 자녀교육 때문에 남편과 처자식이 한국과 미국으로 갈라져 사는 생이별 현상, 엄청난 경제적 부담과 정신적 고통이 수반되는 이 생이별 현상이 날로 증가되고 있는 까닭은 무엇인가.

물론 나는 한국의 교육에 문제가 없다거나,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도 이러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깊이 상고할 필요도 없이 유학은 이미 오래 전부터 있어 왔고, 유학이 출세의 길임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이다. 대학교수되는 일이 하늘의 별 따기보다 힘들다는 지금도, 외국박사는 교수가 되는데, 국내박사는 교수가 되지 못한다.

1950년대 그 가난한 시절, 보통 사람은 감히 외국유학은 엄두도 내지 못할 때 외국유학을 다녀 온 그 행운아들이 오늘 우리 사회에서 지도적 인물로 행세(?)하고 있지 않은가. 눈을 국내로 돌려, 1960년대 이전부터 살만한 집에서는 자녀들을 서울로 유학시켰고, 극성스런 어머니들은 서울에 방을 구해 아들 교육을 위해 어머니는 서울에서 뒷바라지 하고, 아버지는 고향에서 생업을 유지하고 있었다. 지금도 서울에 가정을 둔 사람이 지방도시로 전근하게 되면 아버지만 혼자 지방으로 내려가 소위 주말부부의 고통을 감내하고 있지 않은가.

여기서 우리가 소위 교육이민을 포함한 조기유학 현상을 그 오랜 한국적 교육열풍이 세계화의 바람을 타고 유학의 영역을 확대한 것이라고 하면 사태를 지나치게 단순화한 것으로 치부당할 것인지. 물론 우리는 이 사태를 그대로 방치할 수는 없다. 그러면 이 현상의 원인과 처방은 무엇인가. 그 원인은 한마디로 과열된 교육열이다. 지나친 교육열이 사회적 병리현상으로 나타난 것이다. 그리고 이 과열된 교육열은 우리 사회를 무겁게 지배하고 있는 학벌주의에 연유한다. 따라서 학벌주의에 대한 과감한 수술에서 이 문제의 해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우리 나라에는 하나의 대학만 있다고 한다. 그 대학 출신들이 우리 사회의 요직들을 독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학졸업 후의 그 긴 세월 동안에 생길 수 있는 인간 능력의 변화를 수용하려 하지 않는 사회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 대학에 들어가지 못할 바엔 ‘차라리 떠나자’는 심리가 생긴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 학벌주의라는 사회적 병리를 어떻게 치유할 것인가. 그것을 위해서는 가치를 다양화하고 사회를 다원화하면서, 서로 경쟁관계에 있는 열 개 정도의 명문대학을 만들어야 하고, 그 대학들을 세계적 수준의 경쟁력 있는 대학으로 육성해 나가야 한다.

1990년 이후 우리 사회에서 진행되고 있는 일련의 개혁조치들의 기본 철학은 우리 사회를 유연하고 횡적으로 다원화된 사회로 만들자는 것으로 안다. 그리고 현재 우리 사회는 그러한 방향으로 변화되어가고 있으며, 그러한 사회적 변화 속에서 우리의 교육적 병리 현상도 함께 치유될 것으로 기대한다.

<박영식 광운대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