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시인 김춘수作

거울속의 천사

원로시인 김춘수(80)씨가 2년 전 세상을 떠난 아내에게 보내는 눈물겨운 사부곡(思婦曲)을 시집으로 묶어낸다. 이번 주중 출간될 시집 ‘거울 속의 천사’(민음사)가 그것이다.

‘조금 전까지 거기 있었는데/어디로 갔나，/밥상은 차려놓고 어디로 갔나，/넙치지지미 맴싸한 냄새가 코를 맴싸하게 하는데/어디로 갔나, /이 사람이 갑자기 왜 말이 없나, /내 목소리는 메아리가 되어/되돌아온다./내 목소리만 내 귀에 들린다./이 사람이 어디 가서 잠시 누웠나’(시 ‘강우(降雨)’중에서)

이처럼 노시인은 아내의 부재를 애통해 하고 있다.

‘꽃’의 시인으로 널리 알려진 김씨는 1940년 ‘해방1주년기념 사화집’에 시 ‘애가’를 실으며 등단, 그간 ‘구름과 장미’(48년), ‘꽃의 소묘’(59년) 등 10여권의 시집을 펴낸 바 있다. 경북대와 영남대 국문과 교수로 오랫동안 재직하며 많은 제자를 길러내기도 했다.

모두 89편의 시가 실려있는 이번 시집을 출간하면서 김씨는 “내 생애에 이렇게 단시일에 많은 시를 쓴 적이 없었다”고 밝혔다. “지난 5일이 아내의 기일인데, 아내가 떠난 후부터 2년 내내 이번 시집에 실릴 시를 썼다” 고 노시인은 전했다.

김씨는 시집의 후기에서도 ‘천사’가 된 아내가 이번 시집을 적게 했다고 적고 있다. ‘지난 2년 동안 아내는 나에게 소중한 것들을 알게 해줬다. 인연은 우연이 아니라는 것，헤어짐은 만남의 다른 모습이라는 것…. 나는 지금 세번째의 천사를 맞고 있다. 아내는 내 곁을 떠나자 천사가 됐다. 아내는 지금 나에게는 낯설고 신선하다. 아내는 지금 나를 흔들어 깨우고 있다. 아내는 그런 천사다.’

시 ‘대치동의 여름’은 55년을 해로한 부부가 죽음으로 서로 갈라져 살 때 얼마나 긴 하루가 시작되는지를 보여주는 시다. ‘내 귀에 들린다. 아직은/오지 말라는 소리，/언젠가 네가 새삼/내 눈에 부용꽃으로 피어날 때까지，/불도 끄고 쉰다섯 해를/우리가 이승에서/살과 살로 익히고 또 익힌/그것，/새삼 내 눈에 눈과 코를 달고/부용꽃으로 볼그스름 피어날 때까지, /하루 해가 너무 길다.’

또 김씨는 이번 시집에 실린 시 ‘시인’을 통해 자신의 대표작으로 평가받는 시 ‘꽃’이 실존 문제를 다루는 철학적 주제를 가지고 있다는 세간의 평가를 거부하는 발언을 하고 있어, 김춘수 시문학연구자들의 관심을 끌 것으로 보인다. 그는 ‘길을 가다가 살짝/가래침을 뱉는다. 누가 볼까 봐/예쁜 꽃을 살짝 꺾는다./내 시 ‘꽃’은 그렇게 씌어졌다’라고 다분히 역설적인 어조로 시 ‘꽃’을 쓰던 심정을 밝히고 있다.

나아가 그는 ‘철학도 믿지 않는다./후설을 믿어볼까 하다가/믿는다는 것이 믿기지 않아 그만뒀다./나를 예까지 오게 한 것은/어쩜 어머니가 어릴 때 가끔 들려준/무말랭이 같은 오이지 같은/그 속담 몇 쪽일는지도 모른다’라고 적으며 자신의 시에 객쩍은 평가를 내리는 것은 ‘차라리 우물 보고 숭늉 달라고 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김씨는 5월부터 한국현대시 100년을 대표하는 작품 30, 40편을 가려내 해설을 붙인 ‘김춘수가 뽑은 한국당대의 시’를 월간 ‘현대문학’에 연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배문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