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여흥 閔씨 가문 민영목의 가족사진

“조선후기는 영남과 호남, 기호지방 출신들은 배제된 채 서울지역에 거주하는 일부 명문가들에 의해 관직이 독점된 시대였다.”
安東(안동) 金(김)씨, 潘南(반남) 朴(박)씨, 大邱(대구) 徐(서)씨, 東萊(동래) 鄭(정)씨 등 조선후기 사회를 지배했던 양반가문(閥閱·벌열)들을 집중 해부한 연구서가 나와 화제다.

車長燮(차장섭.38)삼척산업대 교수는 최근 펴낸 ‘조선후기 閥閱연구’(일조각)를 통해 조선후기(인조∼고종연간) 堂上官(당상관·정3품 이상으로 국가권력을 집행하는 최고급 관료) 2천7백58명 가운데 70.2%인 1천9백36명이 조선후기에 번성한 57개의 벌열가문 출신임을 통계로 제시했다. 특히 세도 정치기로 알려진 순조에서부터 고종까지의 시기는 新(신)안동 김씨 生海系(생해계), 반남 박씨 紹系(소계)등 노론계가 중심이 된 10대 家門(가문)이 전체 당상관 8백53명중 51%에 해당하는 4백34명을 배출해냈음을 밝히고 있다. 10개 가문 중 6개 가문이 왕실과의 혼인으로 맺어진 외척 가문임도 흥미롭다.

車교수가 제시한 벌열은 신라의 眞骨(진골)귀족, 고려의 豪族(호족)·門閥(문벌)귀족·權門世家(권문세가), 조선의 勳舊派(훈구파)·士林派(사림파)처럼 조선후기를 지배한 집권세력을 지칭하는 용어다. 車교수가 벌열의 범주로 제시한 기준은 서울에 거주하며 3代(대)를 세대마다 당상관 한 사람 이상 배출한 가문. 조선후기 동족의식은 같은 行列字(항렬자)를 사용하는 派(파)를 중심으로 형성됐지만 벌열의식은 派를 더욱 세분한 특정가계 중심의 가문을 단위로 이뤄졌다는 것이 車교수의 주장이다.

車교수에 따르면 인조반정후 집권한 서인이 관직을 독점하기 위한 방법으로 反正(반정)이후 급격한 변괴가 자주 생겨서 불안하고 의심이 된다는 이유로 가문의 정치적 사회적 지위 곧 벌열을 기준으로 관인을 선발하면서 벌열의 정치적 독점은 가속화했다. 여기에다 왕실과의 혼인은 벌열들의 세력을 확고하게 만들어줬다. 벌열이 관직을 독점할 수 있었던 것은 조선후기에 들어와 문과시험이 그들에게 유리하게 운영됐기 때문이다. 지방 거주자들이 참여하는 정기시험인 식년과보다 부정기적으로 실시되는 특별시험인 증광시 정시 별시 알성시 춘당대시 등이 조선후기에 오면 크게 늘어나 전체 문과시험의 81.9%를 차지했다. 부정기시험은 급작스럽게 실시되기 때문에 서울과 멀리 떨어진 지방 유생들은 거의 응시하지 못했다. 이에따라 문과급제자들의 거주지는 대부분 서울이었다. 여기에다 문과에 급제하면 벌열출신들은 이른바 엘리트 코스인 史官(사관)등 淸要職(청요직)을 독점하면서 당상관으로 쉽게 진출할 수 있었다.

조선후기 정국을 국왕과 벌열, 벌열과 벌열간의 역학관계 속에서 파악한 車교수는 인조에서 경종까지의 시기를 서인과 남인세력의 공존에서 보듯 ‘벌열들간의 대립기’로, 영조에서 정조까지의 시기를 탕평책을 주도해 벌열들을 견제한 ‘국왕과 벌열간의 갈등기’로, 순조에서 고종까지의 시기를 신안동 김씨 등 소수의 노론계 외척가문이 정국을 완전 장악한 ‘벌열의 독점기’로 이해했다.

車교수의 연구는 경제·사회 등의 분야에서 근대적 맹아의 모습을 보여줬던 조선후기사회가 지배집단의 경우 고려시대 귀족 이상으로 폐쇄적이었다는 것을 밝혀주고 있어 흥미롭다.

<崔永昌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