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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봉협상 시즌… 4色 대응전략

프로야구에 12월은 ‘협상의 계절’이다. 다음 시즌 연봉 협상이 비활동 기간인 12월에 집중적으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프로야구단은 12월 연봉협상을 시작하고, 다음 해 1월 중순 마무리를 목표로 삼는다. 프로야구 10개 구단은 잡음 방지, 합리적인 연봉 협상을 위해 깐깐한 연봉 고과 시스템을 적용하고 있다.

프로선수의 가치는 연봉으로 환산된다. 연봉은 프로선수의 자존심이자 존재감의 바로미터. 그래서 연봉협상에서는 밀고 당기기, 즉 ‘밀당’이 펼쳐지기 일쑤다. 실제로 연봉 협상은 매년 “더 달라”는 선수와 “더 깎자”는 구단의 의견이 팽팽하게 맞선다. 그런데 합리적인 선에서 절충하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국내 프로야구 선수들의 연봉 협상 유형을 들여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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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꼼·분석형 = 해설위원으로 활동 중인 A는 현역시절, 동료 선수들로부터 ‘협상의 달인’으로 불렸다. A는 구단 연봉 고과 산정 방식을 매년 미리 입수, 자신이 경기에 나선 날 기록을 꼼꼼하게 정리했다. 정리한 데이터는 큰 무기가 됐다.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아 구단이 매긴 고과 점수와 자신이 매긴 점수를 비교했다. 틀린 데이터가 나오면, 곧바로 어필했다는 후문. A가 활약했던 해당 구단 관계자는 “동료들에게도 과거 채점 방식을 알려준다. 매년 말 연봉 협상을 앞두고 A 해설위원과 협상법을 미리 상의하는 선수도 꽤 있었다”고 귀띔했다. 현역 선수 시절 리그를 대표하는 불펜 투수로 활약했던 지방구단 B 코치는 소속 구단의 연봉 고과 시스템을 바꿨다. 평소 가계부를 직접 작성하는 등 꼼꼼한 성격의 B 코치는 불펜 투수들이 선발 투수들보다 승수와 이닝 등 데이터 부분에서 손해를 보는 구체적인 자료를 찾아 구단에 건의했고, 당시 소속 구단은 B 코치의 의견을 받아들여 연봉 고과 산정 시스템을 수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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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한위임형 = 최근엔 연봉 협상에서 에이전트가 대신 나서는 경우가 많아졌다. 협상에 전문가를 투입, 더 나은 결과물을 받기 위해서다. 협상력과 법적 지식을 갖춘 에이전트를 선임한 선수들은 미리 모의 협상을 해보고, 과거 해당 구단에서 자신과 비슷한 성적을 올린 선수의 인상 폭을 참고 자료로 활용한다. 서울의 한 구단 관계자는 “최근 에이전트를 많이 선임하면서 꼼꼼히 따져 묻는 일이 많다”고 말했다. 물론 에이전트를 두지만, 실제 협상은 본인이 직접 하는 경우도 꽤 있다. ‘구단에 찍힐 수 있다’는 걱정에서다. 국내 공인 에이전트로 활동 중인 한 야구인은 “일각에선 에이전트를 선임하면 ‘구단에 눈치가 보인다’고도 하소연하는데, 하지만 최근엔 그런 분위기가 사라져 가는 모습”이라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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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전속결형 = 연봉 5000만 원 이하 혹은 데뷔 5년 차 이내 선수들은 선택지가 매우 적다. 이들은 구단이 제시한 연봉을 그대로 수락하기에, 속전속결로 연봉 협상이 이뤄진다. 실제 12월 초 첫 만남에서 대부분 구단이 내민 계약서에 사인한다. 이런 유형의 선수들은 “객관적인 고과 채점 기준에 따라 제시된다. 여간해서는 올리기가 쉽지 않아 바로 사인한다”고 입을 모은다. 지방구단 C 선수는 매년 1억 원 이상의 연봉을 받지만, 속전속결 방식을 선호한다. 연봉협상을 일찍 마치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새 시즌을 준비하기 위해서다. 2군 선수들의 경우, 연봉 협상이 사실상 없다. 대부분 구단의 연봉 고과가 1군 성적에 따라 책정되기 때문. 통보 방식으로 새 시즌 연봉이 전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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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티기형 = 연봉 협상에서는 버티기, 연장전에 돌입하는 예도 있다. 특히 매년 봄 스프링캠프를 앞두고 연봉 협상이 완료되지 않아 전지훈련지에 가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지난 2020년 삼성 외야수 구자욱이 좋은 예. 구자욱은 구단의 연봉 삭감안에 도장을 찍지 않아 캠프에 합류하지 못했다. 구자욱은 2월 중순에야 연봉 계약서에 사인했다. 서울 연고 구단에서 뛰는 D는 매년 겨울 협상 때마다 구단과 마찰을 빚는다. D는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하기 위해 언론에 공개적으로 연봉 협상에 불만을 드러내기도 한다.

구단들도 다양한 협상 전략을 들고나온다. 프로야구에서 연봉 협상은 구단의 연봉 고과 담당자가 담당하는데, 때에 따라 운영팀장과 단장이 나오기도 한다. 단장이 나서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 2군은 육성팀 직원이 담당한다.

연봉협상 실무자들은 ‘악역’을 피할 수 없다. 때로는 윽박지르거나, 회유로 선수의 마음을 잡는다. 과거엔 은퇴를 앞둔 선수에겐 “코치직을 줄 테니 옷을 벗자”고 유혹하는 사례도 있었다. 1990년대만 해도 구단에서 연봉 협상을 차일피일 미루다 은퇴시킨 경우도 종종 나왔다. 최근엔 일부 구단이 소위 ‘본보기 계약’을 활용한다. 비슷한 성적을 올린 2명의 선수가 팀 내에 있다면, 먼저 한 선수와 계약을 해서 나머지 선수에게 ‘우리는 이 정도밖에 줄 수 없다’며 상대에 압박감을 안기는 전략이다.

정세영 기자 niners@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