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누가 차지할까 4·10 총선을 하루 앞둔 9일 300석(지역구 254석, 비례 46석)의 22대 국회 의석을 놓고 다수당을 차지하기 위한 각 정당의 치열한 득표전이 전개되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12월 21일 예산안 처리를 앞둔 국회 본회의장의 전경. 곽성호 기자

■ 송호근 교수 총선정국 진단

前권력 부정 경향 갈수록 세져
정치 각성시키는 건 시민의식

공론장 황폐화 SNS 돌아봐야
대학·언론 공적기능 회복 필요

정치, 이념서 한발짝 물러서길
국민삶 위해 수정할 수 있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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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이전 권력에 대한 청산과 복수의 정치가 점점 강해지고 있습니다. 이번 총선 투표를 통해 ‘청산의 정치’를 ‘청산’해야 합니다.”

송호근(68·사진) 한림대 석좌교수는 4·10 국회의원 총선거를 하루 앞둔 9일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정치인을 정신 차리게 하는 건 늪에 빠진 정치가 우리 현실을 망가뜨린다는 의식을 갖춘 교양 시민들”이라며 이같이 강조했다. 국내를 대표하는 사회학자인 송 교수는 좌우 진영에 구애받지 않는 유연한 통찰로 한국 사회가 준거로 삼아야 할 지향점을 제시해왔다.

지금도 날카로운 시평(時評)을 통해 독자와 만나고 있는 송 교수는 우리 정치권의 상황을 매우 비관적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2000년대 이후 한국 정치가 이전 권력을 부정하는 ‘경로 단절’의 경향을 나타내기 시작했는데 갈수록 그 강도는 세지고, 범위는 넓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송 교수는 “청산의 대상이었던 인물이 다음 대권에 등장하는 양상이 반복되면서 국민마저 ‘복수의 계곡’으로 끌려 들어오게 됐다”며 “청산이라는 이름으로 복수가 행해지는 ‘검투장’에선 누군가 피를 흘려야만 군중의 함성 소리가 들린다”고 개탄했다.

송 교수는 이처럼 우리 정치 현실이 아름답지 않기에 역설적으로 이번 총선이 갖는 의미가 막중하다고 설명했다. “근본적으로 정치는 민주주의라는 희망의 돌파구를 찾는 것”이며, “비관적 현실을 자각하는 교양 시민들이 탄생할 때 비로소 희망의 정치를 꿈꿀 수 있다”는 것이다. 그가 말하는 교양 시민이란, 그저 일상에 천착해 자기 이익만 바라보는 대신 공공선을 추구하는 사람이다. 송 교수는 “개인의 주권 확대에도 불구하고 숱한 공격적 언사로 공론장을 황폐화한 SNS의 부작용을 돌아보는 것 역시 교양 시민의 책무”라고 했다. 지난 주말 사전 투표를 했다는 송 교수는 “이런 교양 시민이 사회가 나아갈 길을 비추는 등대 역할을 하는 대학·언론의 공적 기능과 만날 때 한국 정치의 격이 높아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정치권을 향해선 ‘이념’으로부터 자유로워질 것을 당부했다. 그는 “오는 5월 개원하는 22대 국회에선 당신들이 갖고 있는 이념에서 한 발짝씩만 물러나 주길 바란다”며 “정당이 붙들고 있는 이념이 늘 옳은 게 아니라는 성찰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념에 얽매이지 않는 ‘초연함’은 기회주의도, 변절도 아닙니다. 국민의 삶을 최우선에 놓고 신봉하던 이념을 언제든 수정하는 것은 정치인의 용기이자 능력입니다.”

한편 19세기 강화도 조약 체결 과정에 대한 ‘강화도’와 6·25전쟁을 재조명한 ‘다시, 빛 속으로’ 등의 장편소설을 쓴 작가이기도 한 송 교수는 서울대와 포스텍에서 석좌교수를 지냈다. 근대 국가의 형성 과정을 탐색한 ‘인민의 탄생’ ‘시민의 탄생’ ‘국민의 탄생’을 썼고, 지난해엔 지식인의 역할에 대한 고민을 담은 ‘21세기 한국 지성의 몰락’을 출간했다.

나윤석 기자 nagija@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