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안인터뷰 - 첫 국산전투기 ‘KF-21’개발 주역 차재병 KAI 수석 엔지니어

이미지 크게보기 국산 전투기 KF-21 보라매 개발 주역들이 경남 사천 한국항공우주산업(KAI) 격납고의 보라매 시제1호기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남신 KF-21 사업관리팀장, 김종문 임무시스템실장, 차재병 수석엔지니어(상무), 송정헌 항공기계통 2실장, 정년수 항공기계통 1실장(상무). 사천=김선규 기자

6년前 개발초기 ‘인력부족’ 난관
조선·해양 분야 할 것 없이 영입
1000명넘는 엔지니어 조기확보

1년간 全사원 ‘중량 절감’캠페인
1500여건 아이디어 쏟아져 나와

시험비행 성공했지만 걸음마단계
점차 무장 적합성까지 검증할 것

세계 수출시장서 충분한 경쟁력
양산 이후 경제효과 30조원+α

사천=정충신 선임기자

첫 국산 전투기 KF-21 보라매의 비행시험은 경남 사천 공군 제3훈련비행단 활주로에서 첫 시험비행 성공 이후에도 계속되고 있다. 24일 한국항공우주산업(KAI)에 따르면 현재 사천에서는 오는 2026년 실전배치를 위해 비행성능시험이 거의 매일 이뤄지고 있다. KF-21 보라매가 하늘을 날려면 2026년까지 무려 2000번이 넘는 시험비행을 거쳐야 한다. 계획대로 순항하면 2026년에 KF-21은 우리 하늘을 지키게 된다. KAI는 2028년까지 40대, 2032년까지 모두 120대를 실전배치할 계획이다.
지난 7월 29일 방문한 당시 제3훈련비행단 활주로에서는 KF-21 랜딩기어를 반복적으로 접었다 폈다 하면서 2차 시험비행이 진행되고 있었다. 고정익사업부문 소속 KF-21 개발 주역 중 1명인 KF-21개발팀 수석엔지니어 차재병(55) 상무는 “첫 시험비행 성공까지 1000명 이상의 신규 개발인력 확보와 설계 단계에서 700㎏ 이상의 중량 감소가 가장 큰 난관이었다”며 “무수한 토론을 통해 극복했고 폭우 등 기상악화에도 불구, 최근 3차 시험비행까지 성공했다”고 밝혔다. 차 상무는 “코로나19 복병으로 인한 해외업체 휴업 등으로 발생한 탑재장비 납품 지연으로 ‘엔진기체 적합성 시험’ 등 일정에 차질이 빚어졌지만 KF-X 체계개발 계약 시 설정한 2022년 7월 최초비행 목표일정 약속을 팀워크로 지켰다”며 “국내 기술로 구축한 지상시험을 통해 KAI뿐 아니라 국내 항공업체들의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성과를 이뤘다”고 평가했다.

―개발 초기 전문 인력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었다고 들었다.

“가장 근본적인 난관은 1000명이 넘는 개발인력을 조기에 확보하는 일이었다. 개발 착수 당시 KAI가 보유한 개발 경험 인력은 200명 남짓이었다. 1000명 이상의 신규 인력과 함께 개발을 수행하면서 최초비행을 성공적으로 해낸 것은 기적에 가깝다는 게 미국 록히드마틴 등 항공기 전문가들의 평가다.”

―인력 부족을 해결한 묘수는.

“국내에 항공기를 개발한 경험이 있는 인력은 KAI를 제외하고는 극히 제한적이어서 자동차나 조선과 같은 유사 분야 인력을 채용해 개발을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마침 조선 산업의 극심한 불황으로 수백 명의 조선·해양 엔지니어를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로선 천만다행이었다. 배와 비행기를 개발하는 것은 유사성이 많기 때문에 인력난 해결에 큰 도움이 됐다. 신규 인력 조기 전력화를 위한 교육 과정만 70여 개로 교육과 멘토링에 투자를 많이 했다. 개발 착수 6년이 지나면서 성장한 엔지니어가 이제 1200명이 넘는다. KF-21 체계개발을 통해 잘 훈련된 엔지니어들은 비단 KAI뿐 아니라 한국 항공분야 발전을 이끌 핵심 인적자원이 될 것이다.”

―국내 기술진만으로 처음 전투기 설계를 하면서 어려움이 많았을 텐데.

“설계 단계에서 부딪힌 가장 큰 난관은 역시 ‘중량절감’ 문제였다. 록히드마틴의 F-35는 중량목표 달성을 위해 개발 일정이 18개월 지연됐고 조 단위의 추가비용이 발생하기도 했다. 기본설계를 마무리하고 본격적으로 제작용 도면을 만드는 상세설계 단계에서 전체 중량을 예측해보니 600㎏이나 초과됐다. 중량이 초과되면 요구성능(ROC)을 맞출 수 없기에 설계를 수정하면서 정해진 일정 안에 도면을 만드는 과정이 고통스러웠다. 1년 넘게 강력한 ‘중량절감 캠페인’을 수행하는 등 사원 전체가 집단지성을 발휘해야 하는 엄청난 스트레스였다. 눈물겨운 노력으로 1500여 건, 2500㎏의 중량절감 아이디어가 나왔다. 이 중 700㎏ 이상을 설계에 반영한 덕분에 지금은 충분한 여유를 확보해 앞으로 확장성에 대비할 수 있게 됐다.”

―코로나19 복병과의 싸움이 만만찮았을 텐데.

“개발은 시간과의 싸움이다. 코로나19라는 복병을 만나면서 장비를 적기 개발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엔지니어들과 구매 담당자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해외 각지로 출장 가서 현장에서 업체들과 기술 현안을 해결해야 하는 힘든 상황이었다. 나라마다 입출국 기준이 달라 백신을 접종했는데도 현지 기준에 따라 예상치 못하게 격리조치를 당한 적도 있었고, 시시각각 변하는 현지 개발상황에 대응하느라 2주 일정으로 출장 갔다가 반년 만에 귀국하는 상황까지 발생해 속이 새까맣게 타들어 가기도 했다.”

―2015년 약속한 지상시험과 최초 비행 목표 일정을 달성했나.

“계약 시 최초비행 일정은 2022년 7월이었다. 비행시험 단계 일정 리스크를 대비하기 위해 내부적으로는 최초비행 목표일을 2022년 5월로 관리해왔다. 코로나19 등으로 해외 탑재 장비 일부가 납품이 지연되면서 결과적으로 원래 계획을 더 단축하지는 못했다.”

―지상시험 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임무는.

“지상시험 중 가장 중요한 이벤트는 엔진을 작동하면서 항공기 전체 시스템 기능과 성능을 최종 점검하는 ‘엔진기체적합성시험’이었다. 엔진을 작동하기 위한 일부 탑재 장비의 납품이 지연되는 바람에 당초 지난해 11월 말 계획한 엔진 시동 일정이 무려 5개월이나 늦어져 올해 4월 말이 돼서야 시동시험에 착수할 수 있었다. KF-21보다 시스템 복잡도가 훨씬 더 단순하고 엔진도 하나인 T-50 고등훈련기 개발의 경우 최초 엔진 시동시험 후 7개월이 돼서야 최초비행을 실시했다. 휴일도 반납하고 2∼3교대로 시험을 수행했다. 다행스럽게도 엔진작동 이후 시험 단계에서 설계를 수정해야 하는 문제가 거의 발생하지 않아 3개월 만에 최초비행을 할 수 있었다.”

―5개월 지연 일정 단축 비결은.

“다양한 ‘리그(Rig)시험’을 통해 설계 문제점들을 조기에 발견해 개선했기에 중간 설계 수정 없이 시간 단축이 가능했다. 리그시험이란, 최종 조립된 항공기에서 지상시험 착수 전에 계통별 모사 시험체를 만들어 사전에 다양한 검증을 수행함으로써 지상시험 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최소화하는 시험이다. 특히 항공기의 모든 것을 지상에서 재현하는, ‘철새’라 불리는 ‘아이언 버드’를 독자 개발하는 등 고난도의 복잡한 리그시험을 국내 기술로 구축해 수행한 덕을 봤다. 리그시험을 통해 KAI뿐 아니라 국내 항공업체의 비약적 기술 발전을 이뤄냈다고 자부한다.”

―시험비행을 2차례 끝낸 지금 개발 단계는.

“아기가 걸음마를 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서고, 걷고, 달리기하듯 KF-21도 이제 걸음마를 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선 단계다. 향후 초기 비행 건전성을 확인한 뒤 점차 비행영역을 확장해 속도·고도·기동을 한계 수준까지 검증하고 무장발사 시험 등을 통해 무장 적합성을 검증할 것이다.”

이미지 크게보기 차재병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수석엔지니어가 경남 사천 사무실에서 KF-21 개발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김선규 기자

―랜딩기어를 동체에 넣은 채 비행하는 2차시험도 성공했는데 앞으로 어떤 시험을 하게 되나.

“앞으로 ‘고받음각 시험’ ‘공중급유시험’ ‘무장분리·발사시험’ 등을 하게 된다. 고받음각 시험은 저속 비행 고받음각 상태에서 기체를 뜨게 하는 양력이 감소 또는 소실돼 조종력 상실상태에 빠지는 우발상황에서 항공기를 정상 회복해야 하는 위험한 시험이다. 기본적으로 KF-21은 실속을 방지하는 디지털 비행제어 기술을 채택하고 있지만, 실속에 빠지게 되는 상황을 인위적으로 만들어서 시험을 수행한다. 공중급유시험은 대형기인 급유기 엔진에서 분사되는 후류(Jet wash)에 의한 불안정한 상황에서도 항공기 자세를 안정되게 유지하는 비행제어기술이 관건이다. 무장분리·발사시험은 항공기에서 무장이 안전하게 분리 및 발사되는지 확인하는 시험이다. 공대공 미사일 발사시험은 드론 표적을 대상으로 발사하고 미사일의 오작동 등 비상상황을 대비해 자폭장치를 장착한 채 시험을 수행하게 된다.”

―KF-21은 ‘베이비 랩터’로 불린다. F-22 랩터처럼 5세대 전투기를 지향하도록 설계됐는가.

“미국은 전투기 기술을 선도하는 국가다. 랩터 역시 5세대 전투기 시대를 개척한 기종으로, KF-21뿐 아니라 유럽, 인도, 튀르키예(터키) 및 일본의 차세대 전투기도 유사한 개념을 제시한다. F-22는 오랜 기간의 개념 연구를 통해 공기역학 및 저피탐 성능에 최적화돼 있어 유사한 성능 목표를 추구하는 다른 전투기도 비슷한 형상을 가졌다고 할 수 있다. KF-21은 4.5세대 전투기로 미래 발전 가능성을 고려한 형상이다.”

―항공무장도 중요한데 미국·유럽·국산 등 다양한 배합과 함께 체계통합 일정 등이 빠듯할 것으로 예상된다.

“KF-21은 무장 확장성을 고려해 유럽·미국 무장 운용이 가능하도록 설계됐다. KF-21에 탑재되는 유럽의 무장들 역시 미국 항공기에도 운용될 수 있도록 개발돼 사용에 문제가 없다. 현재 KF-21 체계통합 설계가 완료된 상태이며, 내년 최초 발사 비행시험을 위해 항공전자 통합시험을 수행 중이다. 단계적으로 무장 능력을 확장해 나가는 계획을 수립해 일정 차질 없이 개발할 수 있을 것이다.”

―장거리공대지 순항미사일(ALCM) 무장 탑재는 2단계(블록 2)에서 국방과학연구소(ADD)가 개발해 탑재하도록 돼 있다. 자칫 개발 시기가 늦어지면 KF-21 생산 초기 시장성 확보에 어려움이 예상된다.

“KF-21은 블록 1단계에서부터 ALCM 등 향후 추가될 무장 통합을 고려해 개발이 진행되고 있다. 신규 무장 추가 시에도 항공기 영향성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개발 초기부터 설계에 반영했다.”

―개발 완료 후 미국의 F-35와 유럽의 라팔, 유로파이터 타이푼, 그리펜 전투기와 수출시장에서 경쟁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대비책은.

“F-35는 미국의 매우 민감한 최첨단 기술이 포함된 항공기로 일부 제한된 국가에 판매되고 있다. 시간당 운용 비용 또한 4∼4.5세대 전투기 대비 2배에 이르기에 운용 가능한 국가 역시 제한된다. 유럽 전투기들은 2000년대 초반에 실전 배치돼 2030년 시점에는 30년이 경과한 항공기다. KF-21은 유럽 전투기 대비 최신 기술을 적용해 충분한 경쟁력을 가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시험비행 테스트 추진 일정은.

“2000여 회 시험비행을 통해 기능·성능을 검증한다. 완벽한 설계는 있을 수 없기에 시험을 통해 설계를 보완하고 비행성능을 최적으로 튜닝해야 한다. 최첨단 임무통제실(MCR)에서 엔지니어들이 실시간으로 데이터를 모니터링하고 조종사와 통신하면서 단계별 비행 조작을 수행한다. 비행기에서 실시간으로 송출하는 데이터는 5000여 개다.”

―KF-21 개발 성공이 국내 항공산업에 끼칠 파급효과는.

“보라매 사업이 최소한 30조 원 이상의 경제 효과를 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무기체계연구원의 2017년 분석에 따르면 약 24조4000억 원의 생산 유발 효과와 약 5조9000억 원의 부가가치 유발효과가 기대된다. 이는 우리 공군이 구매하기로 한 120대와 인도네시아가 사업지분 파트너로 참여하면서 구매하기로 한 60대 등 총 180대 양산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여기에 더해 추가 수출 가능성이 있어 실제 경제 효과는 30조 원+알파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무기체계연구원은 약 49조5000억 원의 기술 파급효과와 약 11만 명의 취업 유발효과도 예상했다. KAI, ADD, 1차 협력업체 고용실적 분석결과 2016∼2020년 고용창출 1만1000명 이상을 달성했다. 사업착수 시 국산화율은 65%였으며 현재 국산화 품목을 추가로 식별해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차 수석 엔지니어는
T-50고등훈련기 개발부터 운영·수출 全사이클 참여

2021년부터 국산 전투기 KF-21 개발 수석 엔지니어를 맡아온 차재병(55)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상무는 “항공기 개발 엔지니어로서 T-50 고등훈련기 태동기부터 개발 및 운영, 파생형 개발, 수출단계까지 전체 사이클을 경험한 것이 큰 자산이 됐다”며 “KF-21 개발 CE 역할을 감당하는 원천이 됐다”고 24일 말했다.

차 상무는 KF-21 개발 의의를 “가장 복잡한 시스템 중 하나인 체계공학의 꽃이 활짝 핀 것”이라며 “시스템이 복잡한 만큼 모든 성능과 기능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도록 각 구성요소를 통합할 수 있는 체계종합능력이 있어야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T-50과 비교되는 KF-21 보라매 개발 기술력의 가장 큰 차이점을 묻자 “독자적인 체계종합 역량 확보와 최신 디지털 엔지니어링 기술 적용, 국내 기반 기술의 고도화로 핵심장비 국산화가 가능해졌고, 세계적인 생산 기술을 갖춘 게 차이점”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젊은 엔지니어들이 어려움을 헤치고 나날이 성장하는 것을 보면서 우리나라 항공 산업의 앞날이 밝다고 확신한다”며 “KF-21의 성공적인 개발로 이들이 더욱 성장해 세계 항공산업을 선도하는 미래를 펼쳐나가는 터를 닦겠다”고 말했다.

차 상무는 미군 고등훈련기(T-X) 사업을 위해 록히드마틴과 공동으로 미국 수출용 T-50 개량형을 개발하며 5세대 전투기 훈련에 적합한 조종석 디스플레이 개조 및 공중급유장치를 적용하는 개발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T-X 개발을 마무리하고 기본설계 후반부에 KF-21 사업에 수석 엔지니어로 합류했다. △한양대 기계공학과 석사 △1993년 삼성항공(현 KAI) 입사. T-50 개발 항공기 동력계통 리드 엔지니어 근무 △국방과학연구소(ADD) 주관 재미황매팀. 록히드마틴과 미국 포트워스에서 T-50 탐색개발 참여 △T-50체계종합팀장 △훈련기체계실장 △KFX(KF-21 사업 초기 명칭)체계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