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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엔 온통 화려한 삶”…‘행복한 타인’에 쌓이는 박탈감

허민 기자 | 2021-07-07 10:08


■ 2030 MZ세대 보고서 ④ MZ의 행복론 - SNS 우울증

서열화·경쟁 속에서 성장해
SNS ‘과시용 게시물’ 보며
‘나는 뭐하고 있었지’ 우울감
평등 의식 높아 스트레스도

SNS서 박탈감도 느끼지만
익명의 공감에 위로 받기도


“SNS에는 사람들의 행복한 게시물들이 올라오잖아요. 볼 때마다 나는 왜 아직 여기에 머물고 있을까 생각이 들어서 우울감이 심했어요.”

직장인 송진영(여·38) 씨는 최근 활발하게 활동했던 SNS 계정을 모두 삭제하고 팔로 없이 ‘눈팅(온라인 커뮤니티·SNS에서 게시물을 보기만 하고 참여하지 않는 행위)’만 하는 인스타그램 계정을 새로 만들었다. SNS를 하다 보니 주변인들과 교류를 통해 얻는 즐거움보다 박탈감을 더 심하게 느꼈기 때문이다. 아직 결혼하지 않은 진영 씨는 “SNS상에서 친구들이 올리는 결혼 준비 글, 프러포즈 글 등 각종 게시물을 보면서 ‘왜 나는 아직 결혼을 못 하고 여기에 머물고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어 우울감이 심했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주변 사람들한테 ‘보란 듯이 잘 살고 있다’고 보여주고 싶었다. 진영 씨는 제주도에 가면 굳이 하고 싶지 않은 데도 제주도를 상징하는 돌하르방 앞에서 사진을 찍고, 꼭 가고 싶은 여행이 아닌 데도 여행지에 가서 ‘인증샷’ 게시물을 꼬박꼬박 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 공허함은 더 크게 다가왔다. “SNS에서 연예인들이 잘 먹고 잘 사는 건 내가 손을 뻗어도 잡을 수 없는 것들이지만 주변 사람들의 행복은 내가 도달할 수 있는 건데 그러지 못한 게 더 우울하더라고요.” 진영 씨는 “SNS를 지우고 아예 안 보니 지금은 우울감이 줄어들었다”며 “주변 사람들과 교류하는 SNS 활동은 앞으로도 하지 않을 생각”이라고 했다.

◇SNS 통해 가열되는 비교·경쟁 사회 =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인 MZ세대에게 SNS가 반드시 선한 영향만 미치는 것은 아니다. 소셜미디어를 잘 활용하며 타인과 24시간 소통하는 만큼 SNS상의 말 한마디, 게시글 하나로 희비가 엇갈리는 것이다. 특히 SNS상에는 ‘나는 행복하다’를 과시하는 게시물들이 대부분이다. 피드상에 흘러넘치는 이 같은 게시물들은 사람들에게 행복을 강박적으로 추구하기를 종용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일종의 박탈감과 불안감을 느끼는 식이다. SNS가 타인과의 비교 심리를 더욱 자극하는 통로가 되고 있는 것이다.

1990년대생이 바라보는 대한민국에 대해 서술한 책 ‘K를 생각한다’(사이드웨이)에 따르면 계층화에 대한 인식과 분노를 함께 갖고 있는 2030세대들은 SNS상에서 볼 수 있는 타인의 화려한 삶을 보며 자신의 처지를 더욱 비관한다.

최다운(여·32) 씨는 “누구나 인정욕구가 있고 어떤 부분은 더 잘났으면 좋겠는데 SNS로 사람들의 좋은 면만 보게 되면서 내가 나를 인정할 수 있는 기준이 높아진다”며 “나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 기준으로 맞춰버리니 계속 불안하고 인정받지 못한다고 생각해 우울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MZ세대는 남에게 질 수 없다는 듯이 자신의 일상을 화려하게 포장해 SNS에 전시하지만, 오히려 이런 활동으로 자아 간 괴리가 나타나고, 더 큰 불안과 좌절, 열패감에 젖어들게 된다는 것이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SNS와 온라인은 기본적으로 남과 남을 비교하고, 또 스스로 비교당하는 특징이 있다”며 “그러다 보니 맨날 비싼 것만 먹고 있는 척하다가, 수입은 없으니 빚이 쌓이면서 더 박탈감을 느끼게 된다”고 지적했다.

◇행복한 타인 vs 불행한 ‘나’= MZ세대는 경쟁과 서열화로 점철된 사회에서 자랐다. 학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이들은 자신이 몇 등급에 해당하는지, 반에서 몇 등인지, 내 뒤에 있는 친구는 누구이며 내 앞에 몇 명이 있는지를 늘 확인해왔다. 그 때문에 이들에게 익숙하면서도 피할 수 없는 것이 ‘타인과의 비교’다. 김민하(여·29) 씨는 MZ세대가 끊임없이 비교 대상을 찾으며 우울감에 빠져든다고 설명했다. “친구가 그러더라고요. 지금까지 이룬 것도 사실 대단한 일인데 막상 목표로 했던 일을 하고 나니 또 다른 게 보이고, 여기까지 온 나를 잘했다고 칭찬하고 만족하는 마인드를 가져본 적이 없다고요.” 회사를 그만두고 해외유학을 준비 중인 민하 씨는 “1년 만에 다시 박사과정을 준비하고 있는 이유도 비슷한 시기에 함께 대학원에 다녔던 친구를 보면서였다”며 “나는 잠시 공부를 접었지만 공부를 계속하는 친구와 비교하면서 오는 불행함이 너무 커서 다시 도전하게 됐다”고 말했다.

평등에 대한 의식이 높은 MZ세대의 특성이 스트레스의 한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기성세대 때보다 상대적으로 차별이 적고 평등한 환경에서 자라온 탓에 격차를 허용하지 않는 분위기라는 것이다. 구 교수는 “(세대적 분위기상) ‘쟤는 왜 저렇게 잘 나가는 것 같지, 쟤는 비트코인으로 얼마를 벌었고 부모가 어떻고’ 이런 차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정서가 있다”며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금융위기를 거치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며 신자유주의가 강화되고 격차가 심해졌지만 사회적 분위기상 차이를 용납 못 하는 문화가 있다 보니 정서적으로 행복할 수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찡찡대는 방’·랜선 고민상담…주변인보다 익명으로부터 더 큰 위로 받아 =SNS로부터 받는 박탈감이 크지만 위로와 공감을 얻는 통로로 또다시 SNS를 활용하기도 한다. 특히 최근에는 코로나19 유행으로 대면 소통이 더욱 어려워지자 SNS를 통해 익명으로 고민을 털어놓거나 위로를 받고자 하는 채팅방과 온라인 게시판 등이 인기를 끌고 있다. 카카오톡에는 ‘#감정 쓰레기통’ ‘#찡찡대는 방’ ‘#2030 마음의 힐링캠프’와 같은 이름의 오픈채팅방을 통해 수십∼수백 명의 사람이 모여 ‘직장 생활 중인데 붙임성이 없어 고민이다’ ‘불안하고 답답한 마음 때문에 돌아버릴 것 같다’ 등 자신의 고민이나 우울한 감정 등을 여과 없이 토로한다.

‘시원하게 찡얼대시면 됩니다. 맞장구 안 쳐줘도 찡얼대셔요’ ‘다만 욕설은 자제해주세요. 혐오표현도 자제해주세요’ ‘혼잣말은 반말, 서로 간은 존댓말을 써주세요’ 등 몇 가지 규칙만 지키면 누구나 어떤 주제에 대해서든 마음 놓고 자신의 힘든 일에 대해 속 시원하게 털어놓을 수 있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만든 온라인상의 대나무숲이 일상에 지친 서로를 향해 공감과 위로를 전하는 한편 일종의 감정 쓰레기통 역할까지 해주고 있는 것이다. 나이, 사는 지역, 증상 등만 프로필로 공개한 채 철저히 익명으로 했기 때문에 친구나 가족에게도 말하지 못할만한 민감한 이야깃거리도 얼마든지 털어놓을 수 있다.

채팅방 이용자 A 씨는 “어차피 내가 누군지 모르는 사람에게 이미지 같은 것을 생각하지 않고 이야기할 수 있어 오히려 더 편하다”며 “채팅에 참여하는 사람들도 쓴소리나 랜선 회초리보다 공감하고 조언하는 답을 해주곤 한다”고 말했다.

특별기획팀 = 허민 전임기자, 박준희·나주예 기자, 안수교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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