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축제 아름다운 자연은 내 마음과 소통하며 보이는 현상과 보이지 않는 현상이 하나 돼 축제를 펼친다. 나무들도 친구로 날 반겨주네. 2021년 작. 김영화 골프전문화가

봄이 무르익어 여름의 초입으로 향하고 있다. 산천초목이 푸르러 코스는 형형색색 꽃들로 가득하다. 관심 없이 지나치는 골퍼의 옆 해저드가에 늘어진 수양버들은 잔디보다도 더 짙푸르다. 이렇듯 자연은 시선 한 번 주지 않아도 때가 되면 꽃을 피우고, 저 푸른 하늘 사이로 잎을 밀어낸다. 이 자연의 아름다움과 소중함을 골프장에 와서 왜 느끼지 못하는 것일까.

세상에 죽지 않고 생겨나는 것은 없다. 내가 죽고 흙에 섞여, 거름이 되고 그 자양분으로 봄이 찾아온다. 봄이 겨울 없이 온 적이 있던가. 순서 없이 무질서하게 온 적이 있던가.

겨우내 말라비틀어진 혈관으로 겨우 버티고, 양분을 힘겹게 끌어올려 봄에 꽃을 피워 낸 것이다. 연하디연한 연둣빛 꿈을 밀어내기 위해 근근하게 호흡으로 버틴 것이다. 그렇게 자연은 다시 시작되고 세상은 이어진다. 그런데 왜 많은 골퍼가 이 4월의 화창한 봄은 안보고 볼만 쫓을까.

자연은 순리이고 질서다. 삶에도 질서가 있고 순리가 있다. 그런데 이를 거스르는 사람들은 항상 있다. 삶에 있어 아주 잠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골프장이 호황을 누렸다. 누군가는 영원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오판이다. 이 오르막은 곧 내리막으로 바뀔 것이다. 급경사가 있으면 반드시 급내리막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욕심의 끝은 어디일까.

골프장은 불과 얼마 전만 하더라도 골프 단체팀 유치를 위해 회장과 총무의 그린피까지 면제해줬다. 이제 임원 그린피 면제는 없다고 한다. 지역주민 혜택까지도 없다며 귀찮아한단다. 소탐대실이다. 언제는 골프가 인간의 일상에 행복과 힐링을 주고, 함께할 것이라고 했다. 골퍼가 있어 골프장이 있다며 고객을 최우선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했다. 지금 보니 그저 욕구만 채우려는 골프장의 그 끝을 보고 있는 듯하다.

세상은 아주 잠시의 달콤한 유혹에 잘 빠진다. 불경에 이런 내용이 있다. 길을 걷다가 발을 헛디뎌 절벽으로 떨어지는 순간 겨우 소나무 가지를 잡았다. 다행이다 싶은 순간 소나무 잎을 쥐가 갉아먹고 있고 바닥엔 독사가 우글거린다. 사면초가인 그때 절벽 위 벌집에서 꿀이 떨어진다. 그 잠시의 달콤함에 젖어 곧 닥칠 상황을 잊는다. 이것이 인간이다. 인간의 우매함을 꼬집고 있다. 언제까지 꿀맛에 젖어있을 것인가. 곧 나무는 부러질 테고 밑에는 독사가 기다리고 있다. 달콤함의 유혹은 독배다. 세상엔 순리가 있고 질서가 있다. 봄을 사랑할 수 있는 것은 겨울에 감사해야 한다.

골프장에 골퍼가 없었다면 호황이라는 단어가 있었을까. 코로나19 이전의 순리로 돌아가야 한다. 뒤돌아본다는 것은 추억을 곱씹는 것이 아니라 잘 걸어 왔는지에 대한 반성이다. 봄이 계속 반복된다고 지루해 본 적이 있는가. 그것은 욕심내지 않고 매년 똑같은 모습으로 피고 지기 때문이다. 이 찬란한 봄에 우린 무엇으로 채워야 할까.

이종현 시인(레저신문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