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정용진 SSG 구단주가 5일 최주환에게 보낸 ‘용진이형 상’. 최주환 SNS

■ 프로야구 응원가·등장곡

한달 작업끝에 만든 秋 등장곡
“2000년 동대문구장 이후 처음
마치 미국서 PO 치르는 기분”

2016년 저작권 침해 논란후
개사 응원곡 대신 창작곡으로

개막전 승리주역 최주환·최정에
정용진 구단주 상장·한우 보내

국내 프로야구엔 팀은 물론 선수 개개인의 응원가가 있다. 특히 타자가 타석에 들어설 때 맞춤형 응원가, 즉 등장곡이 울려 퍼진다. 국내 프로야구가 갖춘 색다른 묘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탓에 지난해부터 관중이 ‘합창’하는 응원은 금지됐다. 하지만 응원가, 등장곡은 스피커를 통해 여전히 경기장을 달군다.

지난 4일 인천SSG랜더스필드에서 열린 2021 신한은행 쏠(SOL) KBO리그 개막전. 국내 프로야구에 ‘데뷔’한 SSG의 추신수(39·사진)는 어리둥절, 쑥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한국프로야구 특유의 응원 방식 때문이다.

1회 말 추신수가 정규리그 데뷔 타석에 등장할 때, 기차 기적(汽笛)이 울렸다. ‘뿌우∼, 칙칙폭폭’은 추신수의 별명 ‘추추 트레인’을 상징한다. 기적이 울린 다음 “오, 랜더스의 승리 위해 추신수, 오오 홈런 추신수”라는 가사가 붙은 응원가가 경기장을 메웠다. 추신수가 난생처음 들은, 앞으로 계속 듣고 힘을 얻을 등장곡이다.

이미지 크게보기 SSG의 추신수가 지난 4일 인천SSG랜더스필드에서 열린 2021 신한은행 쏠(SOL) KBO리그 개막전에서 자신의 등장곡이 울려 퍼지자 쑥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SSG 제공

추신수는 “2000년 동대문구장에서 열린 고교야구대회 결승전에서 교우들의 응원을 받은 뒤 (개인적인 응원은) 처음인 듯하다”면서 “타석에 들어설 때마다 응원가가 나와 마치 메이저리그 플레이오프를 치르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추신수는 “메이저리그에선 플레이오프가 아니면 공 하나하나에 관중, 팬들이 환호하지 않는다”면서 “(제 개인 응원가는) 응원단장에게 ‘잘 만들어 주시라’라고 말하고 모든 것을 맡겼다”고 덧붙였다.

추신수는 부산고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하다 올 시즌을 앞두고 SSG 유니폼을 입었다. 메이저리그 정규리그에선 응원전이 따로 펼쳐지지 않는다. 간간이 전자오르간 ‘단색’ 선율에 따라 응원 구호를 외칠 뿐이다.

국내 10개 구단은 시즌에 앞서 심혈을 기울여 등장곡을 마련한다. 전력 구성만큼 중요한 업무. 추신수가 선수 등장곡 제작을 맡긴 정영석 SSG 응원단장은 10년간 알고 지내는 언더밴드 ‘악퉁’의 보컬 추승엽을 찾아가 추신수 응원가를 부탁했다. 그리고 작업에 한 달 이상이 걸렸다. 정 단장은 “추신수 선수는 특별한 존재이고, 한국야구를 대표하는 타자로 미국에서 활약했다”면서 “그의 개인 응원가는 그의 별명과 연결하고, 히어로가 등장하는 느낌을 주는데 포인트를 맞췄다”고 설명했다.

응원가, 등장곡은 과거 대중가요 중 일부를 발췌한 뒤 선수의 특징에 따라 ‘맞춤형’으로 바꿔 제작했다. 삼성 포수 강민호의 롯데 시절 등장곡, ‘넌 내게 반했어(강!민!호!). 화려한 조명 속에 빛나고 있는 넌 내게 반했어 (강!민!호!)”가 대표적인 예. 강민호의 개인 응원가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자 다른 구단들도 선수별 등장곡, 응원가가 유행처럼 번졌다.

그러나 2016년부터 ‘저작인격권’ 침해 논란이 제기됐고 이로 인해 기존 노래를 변형, 개사한 등장곡과 응원가는 사라졌다. 이젠 구단이 등장곡과 응원가를 ‘창작’한다.

한화는 팬 공모로 외국인 선수 라이온 힐리의 등장곡을 선택했다. 그의 등장곡엔 ‘오오오오 오오∼, 홈런타자 라이온 힐리’라는 노랫말이 담겼고, 웅장한 인상을 풍긴다. 힐리는 팬들이 응모한 등장곡을 직접 모두 들었으며, 이 응원가에 꽂혔다.

개막전에서 멀티 홈런을 날린 SSG의 이적생 최주환의 등장곡은 아직 준비되지 못했다. 최주환의 두산 시절 등장곡을 쓰려고 했으나, 여러 이해관계가 맞물려 불발됐다. SSG 관계자는 “최주환 선수가 개막전에서 2개의 홈런을 날렸는데, 개인 응원가가 없어 타석에 들어설 때마다 공식응원가로 대체했다”면서 “최주환의 등장곡을 빨리 제작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최주환은 SSG 구단주인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으로부터 기분 좋은 상과 선물을 받았다. 정 부회장은 5일 개막전을 승리로 이끈 최주환과 최정의 집으로 상장과 한우를 보냈다. 상장에는 “위 선수는 2021년 개막전에서 눈부신 활약으로 SSG 랜더스 창단 첫 승리를 견인하였기에 ‘용진이형 상’을 수여하고 매우 매우 칭찬합니다”라는 설명을 넣었다.

정 부회장은 야구단에 애정을 쏟고 있으며 개막전이 열린 경기장에서 9회 초까지 선수단을 응원했다. 최주환은 “‘용진이형 상’이라는 문구를 보고 누가 장난친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혹시나 해 구단 홍보팀에 문의했더니 진짜라고 하더라”며 “최정 선배와 한 살 차이지만 우리는 생일이 같고, 함께 상까지 받았으니 최 씨 집안의 영광인 듯하다”고 말하며 웃었다.

정세영 기자 niners@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