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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투병 끝 갑자기 떠난 아버지… 마지막 식사 모습 선해

기사입력 | 2020-10-27 11:46

신경복 (1930~2008)

아버지는 외딴 시골에서 5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나셨다. 일제의 만주침략으로 수탈이 가혹해 초근목피로 연명하던 시기에 어린 시절을 보내셨다. 마을에서 20리 떨어진 국민학교를 졸업하시고, 1943년 마을에 생긴 학교에서 급사로 일하던 중 해방을 맞이하셨다. 이후 중졸 검정고시를 거쳐 경남 교원양성소를 졸업, 19세에 기장국민학교 교사가 되셨다. 곧이어 6·25전쟁이 일어나 참전하셨는데, 전쟁 중 부대가 거의 전멸되다시피 하는 고초를 겪으셨다. 이후 군에 복무하면서 조선대 경제학과를 졸업하셨다.

포천 8사단에서 제대해 서울에서 직장을 잡으라는 친구들의 권유도 있었으나, 가난한 집안 장남으로서의 책임감 때문에 고향으로 돌아오셨다. 입대 전에 임시교원 신분이었던 터라 복직하지 못하고, 부산에서 직장을 구하려 했으나 전후 실업이 만연하던 때라 여의치 않았다. 그래서 경남 지방공무원이 돼 고향 면사무소에서 근무하셨다. 이때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삼촌, 고모 등 모든 식구가 함께 연탄·고무신 장사도 하고, 기와·벽돌을 만드는 공장도 운영하고, 농사도 지었다. 다행히 모두가 건강해 집안에 우환은 없었다. 그러다 보니 차차 살림이 일어 논도 사고, 동생들 결혼도 시키고, 다섯 자식 모두 대학까지 마칠 수 있었다.

아버지께서는 쇠락한 양반집 장손으로 태어나 형언하기 어려운 가난을 겪으셨다. 이로 인해 근검절약이 몸에 배어서 늘 “열을 벌면 아홉을 쓰고, 다섯을 벌면 넷을 써야 앞날이 있다.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쓰기를 더 잘해야 한다”고 말씀하시곤 했다.

농협 조합장을 마지막으로 공직을 떠나 큰 탈 없이 지내시다가, 2007년 위암 수술을 받으시고 그 후유증으로 2008년 5월 4일 갑자기 돌아가셨다. 돌아가시기 며칠 전 서울대병원에서 진료를 마치고, 아버지·어머니·큰고모부님을 모시고 서울 삼청각에서 점심을 함께 먹었다. 이것이 마지막 식사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맛있게 식사하시던 모습이 눈에 선한데 그때 식사 대접한 것을 천만다행으로 여기고 있다.

다음은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셨을 당시 내가 쓴 글이다.

‘만약 그렇게 할 수 있다면/누가 과연 할 수 있을까?/누가 대신/저승사자 따라갈 수 있을까?/어머니 아버지만 그리할 수 있을 것이다.

손가락 베어서 피를 먹이고/제 살을 떼어 먹인 효자 있지만/부모 대신 죽을 아들 세상에 없다/결단코 부모가 아니 허락하실 것이다.

저승사자도 막아주시더니/화들짝 우산 날아가/엉겁결에 맨몸으로 폭풍우 맞닥뜨린 듯/아버지의 갑작스러운 귀천이라니

놀라서 말랐는지/곡소리 구슬퍼도 눈물은 없다/관 위에 꽃 뿌리며 터진 눈물은/삼우재 49재 엉엉 소리 멈추질 않아

아버지 여의고 난 뒤에야/아들은 진정한 아비가 된다./아들 낳고 아비 된 양 여긴 것은/순전히 순전히 착각이었네(하략).

큰아들 신정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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