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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석훈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미국의 워터게이트 불법 도청 사건은 재선을 노리던 리처드 닉슨 대통령과 보좌관 등 측근이 조직적으로 기획한 대표적 선거부정 사건이고, 사건 은폐를 위해 닉슨 대통령 측이 CIA에 수사 방해 공작까지 지시한 권력형 비리 사건이다. 당시 사건 수사를 맡은 아치볼드 콕스 특별검사가 대통령의 대화 내용이 녹음된 결정적 증거인 녹음 테이프의 제출을 요구하자, 닉슨은 법무장관을 통해 그 요구를 철회하도록 콕스 검사에게 압력을 행사했다. 그러나 콕스 검사는 닉슨의 요청을 거부했고, 법무장관과 법무차관도 콕스 검사의 해임을 요구하는 닉슨의 요구에 불응해 사임했다. 결국, 닉슨도 대법원의 결정에 따라 녹음 테이프를 제출한 다음 탄핵을 앞두고 대통령직을 사임했다.

일본 도쿄지검 특수부는 록히드사로부터 일본의 항공기 구입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대가로 5억 엔의 뇌물을 받은 다나카 가쿠에이 전 총리를 구속했다. 당시 집권 자민당의 집요한 압력이 있었지만, 검사들은 이에 위축되지 않고 불퇴전의 자세로 수사를 밀고 나가 검찰이 국민의 신뢰를 받게 된 계기가 됐다.

서울중앙지검은 지난 1월 송철호 울산시장, 한병도 전 청와대 정무수석, 백원우 전 민정비서관, 황운하 전 울산지방경찰청장 등 13명의 고위 정관계 인사를 1차로 기소하면서,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 이광철 민정비서관, 조국 전 민정수석 등 나머지 관련 인사들에 대해서도 총선 후 후속 조사를 마쳐 2차 기소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2018년 울산시장선거 당시 청와대 비서실 7개 부서가 조직적으로 역할 분담을 해 대통령의 30년 지기(知己) 송철호의 당선을 위해 여당 내 단독 공천 및 공약 개발 공작과, 경쟁자인 당시 울산시장에 대한 흠집내기 표적수사를 울산지방경찰청에 청탁했다는 혐의이다.

이러한 권력형 비리 사건에 관해 우리나라의 정치권력은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가? 법무부 장관은 지난 1월 이 사건을 수사하던 공공수사3부를 폐지하고 수사 부장검사는 부임한 지 불과 5개월밖에 안 됐음에도 울산지검으로 좌천시켰으며, 국회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위법하게 공소장 비공개 조치를 했다. 총선 후 거대 여당의 당대표·최고위원에 출마한 국회의원들은 최근 입을 모아 피고인인 송철호 울산시장을 두둔하고 공소를 제기한 검찰을 비난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서울중앙지검은 총선 후 4개월에 이르도록 아직 본격적인 추가 조사를 하지 않고 있다.

사건의 진실은 적어도 재판을 통해 가려질 때까지는 당사자가 아닌 이상 아무도 속단할 수 없다. 다만, 살아 있는 권력을 대상으로 하는 수사란 언제나 부당한 과잉 수사가 아니라 권력자를 위한 축소 수사가 문제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권력자로부터의 수사 독립성이 요구되지만, 아쉽게도 우리나라의 정치권력은 자신을 수사하는 검찰을 억압하고, 법무부 장관은 자신이 여당 대표 시절 벌어진 사건인데도 임기추상(臨己秋霜)이 아닌 임기춘풍(臨己春風)의 모습이다.

그러나 권력형 비리 사건은 정치권력이 수사의 독립성을 지켜주지 않더라도 진실과 정의를 향한 수사 검사의 결연한 의지가 있다면 국민의 지지도 받게 돼 얼마든지 수사에 성공할 수 있음을 외국의 사례가 보여준다. 검사는 어느 수사기관보다 신분이 보장된 단독제 관청이므로 권력형 비리의 수사야말로 검사가 해야 할 일이고 검찰의 존재 이유다. 다만, 검사 보직의 인사권이 대통령과 법무부 장관에게 있는 한 큰 출세만 포기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