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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참사는 왜 끊이지 않을까

기사입력 | 2020-06-26 11:34

김학수 DGIST 석좌교수·커뮤니케이션학

큰 재난사고 벌어질 때마다
사후에 책임 묻기에만 치중

더 중요한 건 사전 예방인데
안전 위한 공동 스텝엔 소홀

직접적 원인 깨닫지 못하면
앞으로도 참극 또 일어날 것


25년 전 이맘때, 연중 찬란한 태양으로 번득이는 세계적인 해변 골드코스트를 끼고 있는 호주 동중부의 도시 브리즈번에서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었다. 남반구는 우리와 정반대의 계절을 갖고 있다는 것도 그때 처음 경험했다. 이미 겨울에 접어든 그곳에서는 남향집이 아니라 북향집이 높은 가치를 지닌다는 사실도 그때 알았다. 그날 오후 늦게 세미나가 파할 무렵, 누군가가 헐레벌떡 뛰어오더니 빨리 호텔 방으로 가서 미국 CNN 방송의 뉴스를 보라고 했다.

브리즈번에 자리한 그리피스대(Griffith University) 문화연구소 책임자는 내가 당시 한국인의 문화 향유 실태를 조사했다는 사실을 어딘가에서 들었던 모양이었다. 참석 비용 일체를 자기네가 부담한다는 조건의 국제회의 초청장을 보내왔다. 한국이 오늘처럼 문화 강국(K-Culture)으로 비상하리란 걸 그들은 예감했었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해서 세계적 문화 연구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각국의 문화 육성을 논의하던 참이었다. 그러나 호텔 방의 텔레비전에서는 502명의 생명을 앗아간, 1995년 6월 29일의 삼풍백화점 붕괴 현장이 생중계되고 있었다.

이탈리아 수도 로마에서 북동쪽으로 130㎞ 정도 가면 거대한 산악으로 이뤄진 그란사소(Gran Sasso) 국립공원이 자리 잡고 있다. 그 공원의 초입에 위치한 라퀼라(L’Aquila)는 많은 중세 문화유산을 간직하고 있는 인구 7만여 명의 고즈넉한 고대 도시다. 11년 전, 연초부터 잦은 진동으로 시민들은 지진에 대한 불안을 크게 느끼고 있었다. 이 사실을 전해 들은 국가재난위원회는 6명의 저명한 지진 관련 과학자를 파견해 점검하도록 조치했다.

지역방송 기자는 점검 결과를 발표하는 기자회견장에 들어가는 재난위원회 관리와 마주쳤고, 이제 시민들이 소파에 누워서 ‘와인을 즐겨도’ 될 만큼 안심해도 되는지 물었다. 관리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이 소식을 들은, 잠시 라퀼라를 떠나 대피하고 있던 일부 시민은 곧바로 되돌아와 일상을 즐기기 시작했다. 그러나 회견이 있은 지 불과 일주일 되던, 온 시민이 깊이 잠든 2009년 4월 6일 오전 3시쯤에 규모 6.3의 지진이 도시를 덮쳤다. 수많은 건물이 무참하게 무너졌고, 309명의 시민이 일시에 목숨을 잃었다.

국제회의 마지막 날 저녁, 주최 측은 브리즈번강(江)의 유람선에서 작별 파티를 열어주었다. 휘영청 밝은 달은 강물에도 떠 있었고, 유람선은 흥겨운 음악과 맞부딪치는 술잔 소리, 재잘거리는 담론으로 가득했다. 그러나 내게 다가오는 누구든 “아임 소리 투 히어(I am sorry to hear)”로 시작하는 그 뉴스 거리를 놓치고 지나지 않았다. 이국(異國)에서 맞는 슬픈 저녁이었다. 국제적으로 한창 떠오르는 용(龍)으로 칭송받던, 압축 성장의 대명사인 한국의 치부, 민낯이 본격적으로 드러나고 있었다.

이런 재난이 일어나면 누군가에게 책임을 묻지 않고 지날 수는 없다. 부실 설계, 시공, 감리, 관리·감독 등을 책임졌던 사람들을 기소하고, 형을 살게 하는 것은 당연한 순서다. 그것은 희생자의 한(恨)을 푸는 데 그치지 않고, 향후 그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예방하는 기도(企圖) 내지 기원(祈願)이기도 하다. 삼풍백화점 참사와 관련해서 소유주와 관리자는 물론 관련 공무원들까지 기소되고, 처벌받았다.

라퀼라 재난의 경우, 아내와 딸을 잃은 지역 의사는 수박 겉핥기 점검을 한 과학자들에게 가장 큰 책임이 있다며 주민을 대표해 그들을 고발했다. 이것은 제2의 갈릴레오 재판으로 불릴 만큼, 과학자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범위를 놓고 전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5년여의 재판 끝에 과학자들은 초급법원에서 6년의 감옥형을, 그러나 대법원 판결에서는 무죄를 선고받았다. 재난의 주된 책임은 그때까지 내진 설계와 시공을 강화하지 않고 있던 도시 건설정책에 돌아갔다. 이탈리아는 지난해 10주년 추모 행사를 통해 이 비극을 반드시 기억하리라 다짐했다.

어떤 사태든 ‘사후의’ 책임 묻기만큼 쉬운 일이 없다. 일종의 희생양을 찾는 과정이고, 제물을 바쳐야 울분이 가라앉는 법이다. 그러나 어떤 일이든 특정 개인(들)만이 책임질 일인가. 그 일이 발생하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이 ‘함께’ 관여하고, 묵고(默考)하고, 회피하고, 때로는 하소연하고, 싸우고 했을 것이다. 이 함께 엮어가기의 동적(動的) 연결고리인 공동 스텝(step) ‘자체’를 무시한 채 어떻게 특정인에게 온전히 책임을 지운단 말인가. 그 독립적인 공동 스텝 과정의 흠을 파악하지 않는 한 그 결과물인 사태의 개선이나 변화를 도모할 수가 없다.

불행히도 인류는 주로 ‘책임 묻기’의 시스템을 개발하는 데 치중해 왔다. 리더십과 매니지먼트는 어디까지나 관리·감독의 통제 메커니즘 관점에서 탐구되고 개발돼 왔다. 어떻게 팀워크를 활성화하고 공동 스텝을 창의적으로 운영하느냐에 소홀했다. 그 결과 팀의 능력 키우기보다 개인의 책임 지우기 중심의 시스템을 만들고, 스포츠팀 감독처럼 여차하면 인물을 교체하는 것으로 돌파구를 찾고 있다. 팀워크의 능력을 발전시키지 못하는 불행을 이어가고 있는 셈이다.

‘앞으로가 중요하지!’

재난을 겪고 난 뒤에 흔히 내뱉는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사후에(after the fact) 책임 묻기만큼 사전에(before the fact) 공동 스텝을 탄탄하게 디자인하는 데 능숙하지 않다. 그 결과 세월호 참사나 이천 물류창고 화재처럼, 6·25전쟁 이래 가장 큰 인적(人的) 피해였다는 25년 전의 삼풍백화점 참극이 현재도 진행 중인 이유가 바로 그 점에 있음을 깨달으면 좋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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