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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변화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문학 장르는 소설이다. 소설이 다루는 주제를 살펴보면, 소설이 단순한 창작물을 넘어 사회와 시대정신을 읽을 수 있는 매개임을 알 수 있다. 소설은 결국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는 사건이나 징후를 소재로 삼아 창작되기 때문이다. 2010년대는 대한민국에 그 어느 때보다 굵직한 이슈가 많았다. 문화일보는 지난 10년 사이에 문학계에 의미가 있었던 이슈 및 그와 관련한 중요한 한국소설 10개를 선정하고 의미를 살폈다. 선정에는 출판사 편집자 및 관계자, 출판·문학평론가 등 전문가 27명의 도움을 받았다. 조남주 작가의 ‘82년생 김지영’을 2010년대를 대표하는 한국소설로 꼽은 전문가들이 가장 많았으며 한강 작가의 연작소설 ‘채식주의자’, 정유정 작가의 장편소설 ‘7년의 밤’ 등이 그 뒤를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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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년생 김지영 (2016) : 한국의 여성 차별·불평등 고발

◇조남주 ‘82년생 김지영’(2016)-페미니즘 담론 본격화의 신호탄

조남주 작가의 장편소설 ‘82년생 김지영’은 2010년대 중반 국내에 페미니즘 담론이 본격화하던 시점과 맞물려 출간돼 큰 사회적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지난 2016년 10월에 출간된 이 작품은 경력단절여성인 주인공 ‘김지영’의 삶을 통해 한국 사회 여성들이 맞닥뜨린 차별과 불평등 문제를 고발했다. 이 작품은 출간 2년 1개월 만인 2018년 11월 27일 누적 판매 부수 100만 부를 돌파하는 진기록을 남겼다. 한국 소설로는 2009년 신경숙 작가의 장편소설 ‘엄마를 부탁해’ 이후 9년 만에 등장한 밀리언셀러다. 이 같은 인기에 힘입어 이 작품은 동명의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이 작품은 17개국 출간이 확정됐으며 이미 일본·중국·대만에서는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한편, 이 작품은 남성과 사회에 대한 부정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또한 평단에서는 이 작품에 소설의 기본인 서사가 결여됐다는 비판도 나왔다.


채식주의자 (2016 수상) : 세계 3大권위 맨부커賞 받아

◇한강 ‘채식주의자’(2007)-세계에서 보편성 인정받은 한국 문학

지난 10년간 한국 문학계가 거둔 최대 쾌거를 꼽으라면 2016년 한강 작가의 연작소설 ‘채식주의자’가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받은 사건일 것이다. 맨부커상은 노벨문학상, 공쿠르상과 더불어 세계 3대 문학상으로 꼽힌다. 신수정 문학평론가는 “‘채식주의자’는 한국 문학이 토속적인 요소를 넘어서 보편적인 문학으로 세계에 통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다”고, 최원식 문학평론가는 “독자들이 한강으로 회귀하는 현상을 통해 한국 문학의 또 다른 희망을 봤다”고 평가했다. 지난 2011년 신경숙 작가의 장편소설 ‘엄마를 부탁해’가 미국에 번역 출간돼 성공한 이후, 한국 문학을 바라보는 세계 시상의 시선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채식주의자’의 맨부커상 수상은 한국 문학이 양적·질적으로 변방을 넘어서기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신호였다. 이후 김언수 작가의 장편 ‘설계자들’이 미국 펭귄랜덤하우스의 자회사 더블데이에 억대 판권료로 팔리는 등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7년의 밤 (2011) : 스릴러 장르로 평단서도 호평

◇정유정 ‘7년의 밤’(2011)-평론의 영역으로 올라온 장르 소설

한국 문학계에서 소설의 주류는 단편이고, 이른바 순문학을 써야 인정받는 풍토가 조성돼 있다. 정유정 작가는 이 같은 풍토에서 벗어나 장편에 집중하며 비주류로 취급받는 스릴러 장르를 개척해왔다. 정 작가는 2011년 ‘7년의 밤’을 시작으로 2013년 ‘28’, 2016년 ‘종의 기원’까지 이른바 ‘악의 3부작’ 장편소설을 잇따라 내놓으며 ‘스릴러의 여왕’이란 별명을 얻었다. ‘7년의 밤’은 누적 판매 부수 55만 부를 기록했고 ‘종의 기원’과 ‘28’도 20만 부 이상 판매되며 독자의 사랑을 받았다. 정 작가의 작품은 영미권을 비롯해 프랑스, 독일, 일본 등 20개국에 번역·출간돼 문학 한류를 이끌고 있다. 정 작가의 작품이 평단과 독자의 호평을 동시에 얻은 이후, 순문학이 주류였던 문단에 장르문학이 하나의 줄기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각종 문학상에서 장르문학이 당선작으로 선정됐다는 소식이 들려오기 시작한 때도 정 작가의 작품이 성공한 이후다.


대도시의 사랑법 (2019) : 대중과의 접점 넓힌 퀴어 문학

◇박상영 ‘대도시의 사랑법’(2019)-대중과 접점을 넓힌 퀴어 서사의 탄생

최근 한국 문학의 주요 흐름 중 하나는 일상성에 기반을 둔 퀴어 서사의 증가다. 보통 사람들과 다르지 않은 일상을 보내고 감정을 느끼는 작품 속 성소수자의 모습은 평단뿐만 아니라 대중에게도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새로운 물결의 선두에 박상영 작가가 있다. 지난해 김봉곤 작가가 소설집 ‘여름, 스피드’로 입체적이면서도 살아 있는 퀴어 서사를 선보여 평단과 독자의 호평을 끌어냈다. 올해 출간된 이 작품은 더 나아가 이성애자 여성과 동성애자 남성의 독특한 동거와 우정,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어머니를 향한 애증, 떠나버린 사랑을 잊지 못하는 주인공의 후일담 등 다채로운 이야기를 통해 퀴어 서사와 대중의 접점을 넓혔다는 평가를 받았다. 허희 문학평론가는 “퀴어 서사의 버전업”이라고 평가했다. 조유나 동아시아 인문사회팀장은 “이 작품은 퀴어 서사가 문학의 가장자리에서 중심부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투명인간 (2014) : 고도성장 그늘 적나라한 고발

◇성석제 ‘투명인간’(2014)-고도성장의 그늘에 놓인 소시민을 바라보다

투명인간이란 단어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말 그대로 남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초능력자, 그리고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취급받는 소외된 자. 이 작품에 등장하는 주인공 ‘김만수’는 후자의 전형이다. 이 작품은 대한민국의 현대사에 드리운 고도성장의 그늘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주인공의 할아버지가 일제강점기 당시 독립운동 관련 서적을 소지했다는 혐의로 체포된 게 불행의 시작이었다. 이로 인해 가세가 기울자 주인공은 죽도록 일해 부모도 내팽개친 동생들의 대학 등록금을 책임지고 어린 조카를 거두지만, 누구도 주인공의 희생을 인정하지 않는다. 이후 주인공은 조카의 자살, 회사 부도 책임 전가와 같은 불행에 휩쓸려 투명인간이 된다. 이 작품은 과거의 역사가 현재에도 되풀이되고 있으며, 누구나 ‘투명인간’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신수정 문학평론가는 이 작품에 관해 “한국 자본주의를 되돌아보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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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빛의 속도로… (2019) : 아름답고 따뜻한 ‘우아한 SF’

◇김초엽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2019)-마니아 전유물서 대중으로 다가온 SF

과학소설(SF)은 우리나라에서 소수의 마니아를 중심으로 창작이 이뤄지고 읽혀왔다. 2000년대부터 배명훈·듀나·김보영 작가 등이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하며 장르문학의 터를 닦아 놓았지만, SF는 여전히 대중에게는 문턱이 높은 문학이었다. 이 작품은 SF가 일반 독자에게도 소구력이 있음을 보여줬다. 김 작가는 SF 하면 떠오르는 차갑고 딱딱한 이미지에서 벗어나 따뜻하면서도 아름다운 이야기를 선보여 ‘한국 SF의 우아한 계보’라는 찬사를 받았다. 이 작품은 대형 문학출판사에서 출간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문학 부문 베스트셀러에 오른 데 이어, 오늘의작가상을 수상하며 주류 문학계에서도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허희 문학평론가는 이 작품에 관해 “인문학적인 성찰과 결부된 지점이 많다”며 “설정은 SF적이지만, 그 아래에 기존 주류문단이 소중한 가치로 여겨온 내면성이 깔려 있다는 게 특징”이라고 분석했다.


정글만리 (2013) : 본격적으로 中묘사한 경제소설

◇조정래 ‘정글만리’(2013)-누구보다 먼저 중국에 주목한 문학

한국전쟁 이후 대한민국의 안보와 평화 유지는 미국의 패권 때문에 가능했다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다. 최근 중국이 급격히 성장해 새로운 패권국을 노림에 따라, 미국의 패권에 바탕을 둔 한반도의 안보와 평화 유지 전략이 흔들리고 있다. 그와 동시에 중국은 한국의 최대 수출국으로 한국과 경제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어 국익 면에서 중요한 나라다. 조정래 작가가 지난 2013년에 출간한 장편소설 ‘정글만리’(전 3권)는 멀리할 수도 경계만 할 수도 없는 중국의 비즈니스 현장을 실감 나게 묘사해 주목을 받았다. 조 작가는 중국 사회·문화의 부정적인 측면과 긍정적인 측면을 돌아보고 의미를 결합해 표층부터 심층까지 분석했다. 이 작품은 1·2·3권 합쳐 출간 다섯 달 만에 100만 권 이상 판매되며 중국을 향한 대중의 심도 있는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백원근 책과사회연구소 대표는 “중국 알기 붐을 일으킨 보기 드문 경제소설이자 조정래 문학산맥의 반전”이라고 평했다.


댓글부대 (2015) : 재미·작품성 갖춘 현실적 서사

◇장강명 ‘댓글부대’(2015)-관념에서 벗어나 현실과 밀착한 서사

한국 소설의 주된 특징은 문장력을 중시하고, 내면적 성찰이나 관념적 상상력의 비중이 크다는 점이다. 이 같은 특징은 한국 소설 특유의 미학을 형성하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당대성과 재미의 부족으로 대중성 확보라는 면에서는 의문을 남겼다. 장강명 작가는 이 같은 한국 문학의 경향에서 벗어나 직접 취재하고 조사한 지식을 바탕으로 ‘표백’ ‘한국이 싫어서’ ‘산자들’ 등 현실감 넘치는 작품을 잇달아 내놓으며 스타 작가 반열에 올랐다. 특정인을 공격해 혐오를 조장하고 거짓 정보를 흘려 비난 여론을 확산하는 이야기를 담은 이 작품은 실제로 벌어진 댓글 조작 사건들과 맞물려 화제를 모았다. 이 작품은 제주4·3평화문학상과 오늘의작가상을 동시에 거머쥐며 작품성까지 인정받았다. 장 작가의 성공 이후 결혼, 아르바이트, 회사 생활 등 일상에서 찾을 수 있는 소재를 끌어온 작품을 쓰는 신인 작가와 젊은 작가가 눈에 띄게 늘기 시작했다.


두근두근 내 인생 (2011) : 고통 속에 빛나는 일상의 긍정

◇김애란 ‘두근두근 내 인생’(2011)-연민 대신 긍정으로 희망을 엿보다

한국 문단의 차세대를 대표하는 작가를 꼽으라면 김애란 작가가 첫손에 꼽힐 것이다. 김 작가는 첫 소설집 ‘달려라, 아비’부터 최근작 ‘바깥은 여름’에 이르기까지 청년세대의 감수성을 잘 드러내면서도 사회 문제를 놓치지 않는 작품을 부지런히 선보여왔다. 김 작가의 첫 장편소설인 이 작품은 가장 어린 부모와 가장 늙은 자식의 이야기를 통해 삶과 사랑에 대한 통찰력을 보여줬다. 인생에서 힘든 시기를 지나고 있을지라도, 그 속에 인생을 두근두근하게 만드는 순간이 있음을 보여준 이 작품은 평단과 독자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일상을 긍정하는 명랑함, 기발한 상상력, 경쾌하고 따뜻한 문장이 돋보인 작품이었다. 이 작품은 2014년 강동원, 송혜교 주연의 동명 영화로도 만들어져 화제를 모았다. 그사이에 김 작가는 김유정문학상, 이상문학상, 동인문학상 등 국내 주요 문학상을 차례로 거머쥐며 차세대 작가를 넘어 한국 문단의 중요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살인자의 기억법 (2013) : 논란 낳은 대표적 미디어셀러

◇김영하 ‘살인자의 기억법’(2013)-시장에 돌풍 일으킨 미디어셀러

최근 출판 시장에서 눈에 띄는 현상 중 하나는 영화·드라마·방송 등을 통해 소개된 책인 미디어셀러의 강세다. 한국 문학계에서 미디어셀러 작가를 꼽으라면 단연 김영하 작가다. 한국 문학계에서 김 작가가 누려온 위상과 별개로, 문학에 관심 없는 독자에게 그는 낯선 존재였다. 김 작가가 대중에게 이름을 알려진 계기는 tvN 예능 프로그램 ‘알쓸신잡(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에 출연한 이후부터다. 그 후 ‘살인자의 기억법’을 비롯한 김 작가의 대표작들은 역주행해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미디어셀러는 불황에 빠진 문학계에 활기를 불어넣었다는 긍정적인 평가와 인기 작가의 작품만 팔리는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해졌다는 부정적인 평가를 동시에 받고 있다. 시청률 압박이 큰 미디어의 특성상 인기 작가에게 출연 기회가 몰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미디어셀러는 문학계가 건강한 생태계를 유지할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인지에 관해 숙제를 남겼다.


■ 선정에 도움 주신 분

곽효환 대산문화재단 상무, 김상진 문학수첩 편집부장, 김성신 출판평론가, 김영준 열린책들 편집이사, 김영훈 안나푸르나 대표, 김요안 북레시피 대표, 김종숙 열림원 편집장, 김현지 현대문학 단행본 팀장, 백다흠 악스트 편집장, 백원근 책과사회연구소 대표, 서효인 민음사 한국문학편집부 문학팀장, 신수정 문학평론가, 염현숙 문학동네 대표, 이근혜 문학과지성사 주간, 이민희 문학과지성사 편집1부 팀장, 이상술 문학동네 국내문학1팀 팀장, 이진숙 해냄출판사 주간, 이진희 은행나무출판사 이사, 장동석 출판평론가, 장은수 이감문해력 대표, 전성이 창비 한국문학팀장, 정은숙 마음산책 대표, 조유나 동아시아 인문사회팀장, 주일우 이음출판사 대표, 최원식 문학평론가, 허희 문학평론가, 황예인 스위밍꿀 대표.

정진영 기자 news119@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