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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목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대통령 탄핵 뒤 들어선 文정권
온갖 의혹에도 법무장관 임명
前정권 낙마 사유는 조족지혈

1776년 ‘상식’은 미국 만든 토대
文대통령의 공정·정의는 거짓
평범한 진리 외면 땐 末路 불행

1776년 발간된 ‘상식(Common Sense)’은 미국의 독립혁명에 불을 댕긴 팸플릿이다. 처음 익명으로 출판된 이 소책자는 아메리카 식민지의 인구가 250만 명에 불과하던 당시에 발간 3개월 만에 12만 부가 팔리는 공전의 히트작이었다. 미국 역사상 최고의 베스트셀러로 기록된 이 책에서 저자 토머스 페인은 아메리카 식민지가 영국 국왕의 지배에서 벗어나 독립해야 하는 이유를 열정적으로 설파했다. 영국과 국왕에 대한 불만은 높았지만, 독립까지 생각하기는 힘들었던 당시 식민지 사람들에게 페인은 독립이 상식이라고 주장했던 것이다.

2016년 광화문광장 촛불집회에 모인 사람들이 내건 구호는 ‘이게 나라냐?’였다. 언론이 연일 홍수처럼 쏟아내는 최순실의 국정농단 보도를 보고 국민은 이게 제대로 된 나라냐고 되묻지 않을 수 없었다. 수백 명 꽃다운 생명이 바닷속에 스러지는 순간에도 홀로 내실에 칩거한 대통령과 연락이 되지 않는 나라. 아무런 공적 지위도 없는 일개 사인이 대통령의 처소를 수시로 드나들며 국가 중대사에 간여하는 나라. 잘난 부모를 만난 덕에 불법적으로 명문대에 진학하고 수업을 제대로 듣지도 않았는데 A학점을 받는 나라. 대통령 측근의 부탁이라고 굴지의 대기업들이 전화 한 통화에 기꺼이 수십억 원을 내놓는 나라. 이건 일반 국민이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나라가 분명히 아니었다.

그 결과는 대한민국 헌정사 초유의 대통령 탄핵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문재인 정부가 들어섰다. 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이렇게 약속했다. “거듭 말씀드립니다. 문재인과 더불어민주당 정부에서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평등하고 공정하고 정의로운 나라를 만들어 달라. 이것이 촛불 혁명 덕분에 당선된 대통령에게 국민이 주문한 상식이었고, 문 대통령은 거기에 화답했다. 그리고 국민은 그 약속을 믿고 감동했다.

2019년 9월,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을 놓고 열린 대학가 촛불집회에선 익숙하지만 조금 다른 구호가 나왔다. “이건 나라냐?” 고등학생이 별다른 역할 없이 의학 논문의 제1저자가 되는 나라. 부모의 능력으로 만들어진 가짜 스펙으로 모두가 갈망하는 명문 대학과 의학전문대학원에 입학할 수 있는 나라. 남들은 한 번도 받기 힘든 장학금이 신청도 하지 않았는데 척척 나오는 나라. 누구보다 청렴해야 할 청와대 민정수석의 가족이 일반인은 듣도 보도 못한 수상쩍은 사모 펀드를 통해 사익을 취하는 나라. 이 모든 혐의에도 법과 정의를 다루는 법무부 장관에 임명될 수 있는 나라. 과연 이건 나라냐?

지난 보수 정권에서 어느 국무총리 후보자는 대법관 퇴임 후 받은 변호사 수임료가 많다고 해서 야당의 반대로 사퇴했다. 또, 어느 장관 후보자는 부인이 재개발지역에 투자했다고 해서 ‘쪽방촌 투기’로 몰려 낙마했다. 모두가 문 대통령의 민주당이 야당이던 시절 앞장서 반대했던 일이다. 조 장관의 혐의에 비하면 이런 사례는 그야말로 조족지혈(鳥足之血)이다. 그러니 국민의 입에서 ‘이건 나라냐’는 말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고 한 대통령의 약속은 이제 완전 빈말이 되고 말았다. 촛불 혁명 후에도 대한민국은 여전히 상식이 통하지 않는 나라다. 이런 와중에 집권 여당 대표는 창당 기념식에서 “무엇보다 내년 총선 승리가 아주 시급한 과제”라며 “정권을 빼앗겨서는 절대 안 된다”고 각오를 다졌다. 국민의 상식보다는 정권의 연장이 더 소중한 것이다.

상식이 무엇인가? 사전적 의미에서 상식이란 일반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건전한 판단과 생각이다. 상식이 통하는 나라가 곧 선진국이다. 이 말 역시 상식에 해당한다. 부정과 불의(不義)가 만연한 나라는 상식이 통하지 않는 나라이며 그런 나라가 선진국이 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정치지도자들의 목표는 대한민국을 상식이 통하는 나라로 만드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지난 보수 정권은 국민의 기대를 저버렸고, 현 진보 정권도 같은 길을 가고 있다. 국민의 상식에 부응하라는 평범한 진리를 외면한 것이다. 243년 전 페인이 ‘상식’을 집필하며 처음 생각했던 팸플릿 제목은 ‘평범한 진리(Plain Truth)’였다. 사실, 상식이 곧 평범한 진리이니 제목을 바꾼 것에 하등 잘못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