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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

세계가 글로벌 통화전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미·중 경제분쟁과 미국·이란과의 전쟁 가능성 그리고 최근 사우디아라비아 유전에 대한 폭격으로 글로벌 경기는 수요와 공급 모두에서 침체가 심해지는 복합불황에 들어가고 있다. 그리고 미국, 중국, 일본, 유로존은 수출을 늘리기 위해 확대통화정책으로 대응하면서 글로벌 통화전쟁이 가열되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는 19일 기준 금리를 0.25% 내렸고, 중국은 이미 지급준비율을 인하했으며, 일본은 추가 양적완화를 추진하고 있다. 유럽중앙은행(ECB)은 마이너스 금리를 확대하고 있다. 저금리로 통화량을 늘려서 환율을 높여 수출 증대로 경기침체를 극복하려는 통화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이러한 통화전쟁은 1930년대 세계 대공황 때도 나타나 각국은 자국 통화를 경쟁적으로 평가절하시켜 수출을 늘려 경기를 살리려 했다.

글로벌 통화전쟁으로 우리 경제에 큰 충격이 우려된다. 수출의존도가 높은 경제의 성장률이 크게 둔해지고 기업의 영업이익도 줄어들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그러잖아도 근로시간 단축으로 기업 투자가 위축되고 조기 퇴근으로 소비가 줄어들면서 내수가 침체되는 지금 수출까지 큰 폭으로 줄어들 경우 올해와 내년 경기는 경착륙할 가능성이 크며 성장률 또한 크게 낮아질 우려가 있다.

정책 당국은 일본이나 유로존처럼 금리 인하를 통한 확대통화정책으로 대응한다. 그러나 우리는 선진국과 다른 여건 때문에 통화정책으로 대응하는 데 한계가 있다. 먼저, 원화는 국제통화가 아니기 때문이다. 국제통화를 가지고 있는 일본과 유로존은 양적완화나 확대통화정책으로 국제 외환시장에서 환율을 높여 수출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 하지만 국제통화를 가지지 못한 우리는 확대통화정책으로 내수경기는 살릴 수 있을지 모르나, 환율을 높여 수출을 늘리긴 쉽지 않다. 또 다른 문제는, 금리를 낮추면 부동산 버블이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집값과 부동산 가격은 이미 높아져 있다. 추가 금리 인하는 부동산 거품을 키울 수 있다. 확대통화정책이 경기를 살리지 못하면서 부작용만 키울 위험이 있는 것이다.

글로벌 통화전쟁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경제의 불확실성을 줄여야 한다. 최근 고조되고 있는 정치적 갈등과 북핵 문제를 비롯한 안보 문제는 기업과 소비자들의 불안감을 높이는 주요인이다. 정부와 정치권은 이러한 불확실성을 줄여 기업 투자와 소비가 늘어나도록 해서 경기경착륙을 막아야 한다. 통화정책을 사용할 수 있는 여력을 늘리기 위해서는 부동산정책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불합리한 부동산 관련 세제를 개선하고 수도권 교통망을 확충하는 등 도심권 주택 수요를 줄일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해 부동산 가격을 안정시켜야 한다. 또한, 일본 엔화나 중국 위안화에 비해 우리 원화 가치가 고평가되지 않도록 환율을 적정수준에서 관리해 수출경쟁력이 약해지지 않도록 할 필요도 있다.

자본시장이 개방되고 국제통화를 가지지 않은 신흥 시장국은 국제통화를 가진 선진국과의 통화전쟁에서 패할 가능성이 크다. 확대통화정책으로 환율을 높여 수출을 늘리기 어려울 뿐 아니라 자본 유출로 금융위기와 외환위기의 위험에 노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경기침체가 심해지면서 통화전쟁 확대가 전망되는 지금, 경기 경착륙을 막고 선진국과의 통화전쟁에서 패하지 않도록 정책 당국의 적극적인 대책 수립이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