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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춘, 육영수 여사 저격범 자백받아…황교안, 별명이 ‘미스터 국가보안법’

김리안 기자 | 2019-08-14 10:10

대표적인 공안검사는…

검찰에서는 한때 “잘나가려면 공안부에 가야 한다”고 할 정도로 공안통 검사의 위상이 대단했다.

공안부는 각종 시국사건을 전담하며 김영삼 정부 때까지 특수부와 함께 검찰의 양 날개로 꼽혔다.

대검에 공안부가 탄생한 것은 1973년이다. 초대 부장은 설동훈 전 검사가 맡았다. 다만 법조계에서는 1961년 발족한 중앙수사국을 사실상 공안부의 전신으로 보고 있다. 중앙수사국이 공안 분야 업무까지 처리했기 때문이다.

박정희 정권까지 주로 대공 사건을 처리하던 검찰 공안은 전두환 정권이 들어선 1980년대 이후엔 시국사건이 급증하며 선거·노동·학원·집회·시위 사건까지 모두 맡게 됐다. 특히 시국 사건이 몰리는 서울지검에서 공안부장을 지낸 공안통들이 ‘검찰의 별’인 검사장에 오르는 것이 당연했다. 최환·이건개·김경한·임휘윤·이범관·정진규 등 고검장도 여러 명 배출했다.

공안통 검사의 대표 주자는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다. 지금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중심에 섰던 인물로 알려졌지만, 검찰 내부에서는 대표적인 공안통 검사 출신으로 손꼽힌다. 김 전 실장은 중앙정보부 대공수사부장·서울지검 공안부장 등 공안통 요직을 모두 거친 뒤 검찰총장과 법무부 장관까지 지냈다. 1974년 공안검사로 재직할 때는 육영수 여사를 총격한 문세광의 자백을 받아낸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이후 유신헌법 제정 과정에도 참여했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도 공안통 검사 명단에서 빠질 수 없는 인물이다. 대검찰청 공안3과장과 1과장을 거쳐 서울지검 공안2부장과 서울중앙지검 2차장을 역임했다. 국가보안법과 집회·시위법 해설서를 집필한 그를 법조계에선 ‘미스터 국가보안법’으로 부르기도 한다.

공안통 검사의 시초를 꼽으라면 고 오제도 변호사가 거론된다. 그는 6·25전쟁 직전인 1950년 4월 여간첩 김수임 사건을 처리해 공안 수사의 대표로 자리매김했다. 해방 이후에는 간첩 색출에 힘써온 오 변호사는 당시 북한의 저격 대상 1호였던 것으로 알려진다. 1998년엔 북에서 망명한 황장엽(2010년 사망) 전 노동당 비서와 의형제를 맺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1998년 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 공안검사의 위상은 쇠락하기 시작했다. 국가보안법 존폐 논란이 일었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부가 들어선 이후엔 공안검사들에게 더욱 세찬 한풍이 몰아쳤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취임 직후 “국가보안법을 박물관에 보내야 한다”며 사실상 공안부의 무장해제를 선언했다. 결국 2004년 말 대검 공안부의 공안3과가 없어지고, 서울중앙지검과 울산지검을 제외한 전국 15개 검찰청의 공안과가 폐지되는 등 공안부에 대한 대대적인 개혁이 시행됐다.

당시 공안의 대명사였던 김원치·장윤석 검사장이 고검장 승진에서 누락되자 검찰을 떠났고, 신건수·이상형 검사 등도 한직을 전전하다 옷을 벗었다. 2004년에는 서울중앙지검 오세헌 공안1부장이 사표를 냈다. 현직 공안부장이 사표를 낸 것은 40년 만의 일이었다고 한다.

김리안 기자 knra@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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