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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창수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日 ‘이익線’ 한국 배제 움직임
부산적기論→로스트 코리아
남·북한 등거리 이간策도 가능

아베의 속내까지 정확히 알고
비공개 대화하되 성과는 공개
외교상황 홍보 급급해선 안 돼

지난 2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정부는 한국을 화이트리스트 국가에서 제외하는 안을 각의에서 통과시켰다. 예상됐었지만, 한국 정부는 이를 강하게 성토하면서 ‘눈에는 눈’ 전략으로 맞대응을 강화하고 있다. 한·일 양국이 협력해 미래로 나아가자는 말은 벌써 흘러간 유행가가 됐다. 일본이 한국을 우호국으로조차 인정하지 않으려 하면서 양국의 갈등은 헤어날 수 없는 악순환의 고리에 빠지게 됐다. 이러한 책임은 전적으로 일본이 져야 한다. 큰 국익 손실을 눈앞에 두고도 한·일 양국이 회복 불가능한 파탄 관계로 나가는 것은 위험수위를 넘었다.

이번 일본의 조치를 일본 국민의 혐한(嫌韓) 감정을 이용한 국내정치로만 봐서는 안 된다. 아베 정권의 대한(對韓) 강경책은 더 치밀하고 근본적인 외교 전략과 관련돼 있다. 최근 아베 정부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에서 한국을 제외했다. 지금까지 자주 사용하던 ‘한국은 중요한 전략적 동반자’라는 표현도 일본 정부의 발언에서 점차 사라졌다. 이 맥락에서 보면 이번 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 제외는 아베 정부의 불신이 한국 배제 정책으로 현실화한 것이다. 즉, 아베의 한국에 대한 강경전략은 한국을 배제한 채 동북아 전략을 짜는 전략적 흐름과 무관치 않다는 것이다.

메이지(明治)유신 이후 일본의 외교 전략은 주권을 지키기 위한 이익선을 어떻게 확보하느냐에 최대의 관심을 두었다. 메이지 유신의 지도자들은 한반도를 손에 넣고, 중국을 분할하는 것이 일본의 이익을 지키는 최소한의 선이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한반도를 강제병합한 다음 만주를 침공하고 중국의 점령을 시도한 것이다. 냉전 시기에는 자민당의 보수파들이 ‘부산 적기론’(釜山赤旗論·부산이 공산화하면 안 된다)을 주장하면서 일본은 한국을 지원해야 한다는 외교 기조가 유지됐다. 이는 한·미·일 3국 공조를 통해 공산권의 침략을 막는 것이 일본의 이익이라고 본 것이다. 탈냉전 이후에도 일본은 한·일 협력을 바탕으로 동북아시아에서 일본의 역할을 확대하려고 했다. 이는 미국의 동북아 전략과 맞물리면서 한·일 우호협력시대가 꽃을 피울 수 있게 했다.

그러나 아베 시대에 들어선 이후 한·일 관계가 경색되면서 일본은 한국을 배제한 채로 동북아시아 전략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최근 일본에서 ‘로스트 코리아’(잃어버린 한국)라는 말이 외교 관계자들 사이에서 조금씩 흘러나오는 것도 이러한 맥락이다. 즉, ‘신뢰할 수 없는 한국’을 배제하면서 동북아시아에서 일본의 역할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이 아베 정권에서 확연히 강해진 것이다. 게다가 일본 국민 사이에서 혐한 분위기가 확산되고 일본 내 친한파가 사라지면서 아베에 대한 견제 장치는 약해졌다.

현재 아베 정권은 미국을 설득해 중국에 대항하기 위한 인도·태평양전략에 열심이다. 여기에 한국을 포함시키는 데는 소극적이다. 그러면서도 중국과의 관계 회복에는 적극적이다. 중·일 관계의 개선은 미·일 관계 악화에 대한 보험 성격에다 한국을 견제하는 카드로 고려한 것이다. 특히, 북한과의 ‘조건 없는 정상회담’ 제시는 전통적인 투 코리아(Two Korea·남북을 이간질하면서 이익을 취함) 정책의 전환을 암시한다.

이번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제외에 대한 한국의 대응은 경제적 측면에 치우치는 경향이 있다. 외교적 차원에서도 일본의 부당성을 국제사회에 알리고 미국에 중재를 요청하는 데 적극적이지만, 그 성과는 아직 알 수가 없다. 일본도 마찬가지로 외교전을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노력이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아베의 속내와 전략을 정확히 분석하는 작업이 우선돼야 한다.

일본의 전략에 대한 정확한 분석을 토대로 강온전략과 양면전략을 적절하게 구사해야 일본과 현명한 싸움을 할 수 있다. 우선, 수면 아래에서 일본과의 대화는 계속돼야 한다. 외교적 상황을 국민에게 알리는 것에 급급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수면 아래의 대화는 철저히 비공개로 진행하되, 그 성과는 투명하게 공개하는 지혜를 가져야 한다. 또한, 한국의 친구 만들기는 국제사회를 포함해 일본 국민에게도 적극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 일본 국민이 한국의 입장을 지지할 수 있어야 한국의 피해는 최소화될 수 있다. 이제부터 한국 정부가 물밑에서 상황을 관리하는 철저한 전략적 노력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