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리처드 피커스길(1890~1900), 뇌물, 1857, 유화, 76.9×64.2cm, 영국 로얄 아카데미

다양한 주장·해석 가능해도
‘파렴치’까지 덮어줘선 안돼

미술동네에는 근거 없이 떠도는 소리가 참 많다. 너무나 황당해서 웃어넘기려 해도 이를 철석같이 믿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그래서 설명이라도 좀 해 보려 하면 그 ‘썰’을 ‘설’로 확신하고 있어 난감할 때가 많다. 원래 미술이란 작가와 작품도 중요하지만, ‘해석’은 관객 개개인 모두에게 부여된 자유이자 특권이기 때문에 그 작품에 대해 뭐라 이야기해도 상관없다. 그러나 작품의 객관적, 실체적 사실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자제하는 것이 좋다. 왜냐하면 그런 감성적이며 상상에 근거한 ‘썰’이 작품의 본질을 왜곡하고 오해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관객들이 위임받은 해석의 권리가 가끔 예술을 편집증적인 수준으로 왜곡시키는 기괴하고 이질적인 이론들을 양산해 내는데, 어떤 ‘썰’은 너무 믿기지 않아 웃어넘길 수 있지만, 때로는 그럴듯한 진리 같은 분위기로 사람들을 현혹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런 ‘썰’이 미술동네에 적을 둔 사람들의 상상력으로 발전돼 세상에 퍼져나가면서 ‘썰’이 ‘설’을 이기는 경우도 많다. 이렇게 쉽사리 ‘썰’이 ‘설’을 능가하는 것은, 많은 사람이 여전히 ‘보기’보다 ‘그리기’에 집중한 중·고등학교 시절 미술 시간 수준을 넘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 작품의 본질보다 작품에 얽힌 이런저런 가십 또는 야사 수준의 이야기를 두고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는 우리 미술 감상 수준과도 비례한다.

이미지 크게보기 정준모 큐레이터·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

특히 가십 수준의 ‘썰’을 “대상에 저의가 숨어 있다고 판단해 끊임없이 자기 중심적으로 해석”하는 ‘편집증’ 또는 ‘망상장애’ 수준의 해석은 매우 이질적인 이론들을 만들어낸다. 이런 ‘썰’의 대표적인 예로 매우 많은 사람이 믿는 것이 루브르에 전시하고 있는 ‘모나리자’는 가짜고 진짜는 지하 깊숙한 수장고에 보관돼 있다는 설이나, 레오나르도 다빈치(1452∼1519)의 ‘최후의 만찬’(1495∼1498)을 다룬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2003)가 성공한 후 더욱 설득력을 갖게 된 황당한 가설, 곧 예수 오른쪽에 앉은 사람이 요한이 아니라 막달라 마리아이고 당시 막달라는 예수의 아이를 잉태하고 있었으며 따라서 지금도 예수의 후손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설이다. 이런 황당한 이야기는 또 있다. 2013년부터 스위스의 모나리자 재단은 자신들이 소장한 모나리자가 루브르의 모나리자 이전에 다빈치에 의해 그려진 진작이라는 주장을 펼쳤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설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미술동네가 상상력을 기반으로 하고, 따라서 그 범위가 넓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만큼 자유스럽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따라서 미술동네의 학설이나 감상, 또는 떠도는 말은 듣는 사람이 제대로 새겨들어야 한다. 2007년 12월 한 미술잡지가 제기한 박수근의 ‘빨래터’ 진위 문제도 2년이나 걸려 대법원이 결국 진작이라고 결론을 내렸지만, 위작이라고 주장한 잡지사에는 언론으로서 그런 의혹을 제기할 수도 있다 해서 그 어떤 책임도 묻지 않았다.

이렇게 주장과 의견을 격의 없이, 조건 없이 주고받을 수 있는 곳이 미술동네고 예술판이며, 예술과 예술가의 자유다. 최근 한 기업의 문화마케팅 담당자가 리베이트가 문제 되자 ‘관행’이라고 주장, 빈축을 산 적이 있다. 자신의 잘못이나 치부를 변명하고 죄를 면하기 위해 미술동네에 없는 리베이트, 뒷돈 챙기는 일까지 관행이라고 주장한다면 이는 과한 변명이자 상상력이며 다른 이들을 욕 먹이는 일이다. 그래 좋다. 그런 주장도 허용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파렴치한 주장까지 서슴지 않는 사람이 한 일에 대해 합리적인 의심이나 주의, 주장을 펼치는 것 또한 당연한 일일 터. 리베이트가 관행이라는 망상장애를 가진 이에게 나라의 큰일을 맡겼는데, 그 사람이 한 작가 선정 등 이런저런 일에도 혹시 ‘리베이트가…? 또는 다른…?’ 이라는 의견이나 의심을 하는 건 당연한 일 아닐까. 리베이트가 관행인 곳에서 30년 경력에 ‘리베이트’를 구경도 못 한 필자를 팔불출이라 놀린다면 이는 명예훼손일까?

큐레이터·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