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불구속 상태로 재판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23일 오전 직권 보석 후 불구속 상태에서 첫 재판을 받기 위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청사로 향하며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김낙중 기자 sanjoong@

- 보석 뒤 첫 재판 출석

변호인 “증거인멸 우려없다면
누구까지 만나도 된다는 건지
추상·포괄적 조건 특정해달라”

재판부의 직권 보석 결정으로 풀려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석방 후 처음으로 23일 재판에 출석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부(부장 박남천)는 이날 오전 양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의 사법행정권 남용 혐의 속행 공판을 열었다. 양 전 원장은 감색 정장에 넥타이를 하지 않은 차림으로 이날 처음 불구속 상태에서 법정에 섰다. 양 전 원장은 재판 시작 전인 이날 오전 9시 37분쯤 일찌감치 서울 서초동 법원종합청사에 들어섰다. 옅은 미소로 걸어오던 양 전 대법원장은 취재진이 “직권 보석을 왜 받아들이셨냐”등 질문을 시작하자 굳은 표정으로 대답 없이 법정으로 향했다. 양 전 원장은 5분 뒤 법정에 들어선 고 전 대법관과 웃으며 악수를 나눈 뒤 한두 마디를 주고받고는 이내 고개를 돌려 변호인과 대화를 이어갔다. 박 전 대법관도 양 전 원장과 웃으며 악수를 나눈 뒤 그 옆에 착석했다.

전날 재판부는 양 전 원장에 대해 직권 보석 결정을 내렸다. 양 전 원장은 검찰 수사를 받다 구속된 이후 179일 만에 석방됐다. 재판부는 보증금 3억 원 조건과 함께 거주지를 현 주소로 제한하고, 사건 관련자들과 접촉하지 않도록 하는 등 조건을 달아 향후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는 데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했다. 양 전 원장 측은 향후 재판부에 일부 포괄·추상적인 보석 조건을 ‘특정’해줄 것을 신청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양 전 원장 측 이상원 변호사는 “사건 관련자들과 접촉하지 말라는 이유가 증거인멸의 우려 때문일 텐데, 증거인멸의 우려가 없다면 사건 관련자들을 누구까지 만나도 된다는 건지, 예를 들면 사법행정권 남용 사건을 취재하는 기자는 사건 관련자에 해당하는지 등 ‘특정’을 요청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법원이 양 전 원장의 1심 구속 기한(최장 6개월)이 다가오는데도 각종 조건을 붙인 보석을 직권으로 결정한 것에 대해 법조계의 비판이 잇따르고 있다. 판사 출신 이현곤 변호사는 “구속 기한 6개월 중 5개월을 채우고 가택연금 수준으로 보석을 해주면서 마치 베푸는 척하는 법원의 행태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면서 “사건 관련자들과 만나면 안 된다는 조건도 검찰은 만나도 되고 피고인은 만나면 안 되는 이유가 뭔지 궁금하고, 모든 피고인을 잠재적 증거인멸범으로 보는 법원의 시각이 불편하다”고 주장했다.

김리안 기자 knra@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