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아이버 헬레, 김포공항으로 귀환, 1953, 하드보드에 유화 78.5×122㎝. 호주 국립전쟁기록관 소장

전쟁기록관 전시물 인상적
비극의 상흔 기억하려 제작

내년이 70주년이라 하지만 ‘6·25’ 또는 ‘6·25전쟁’보다 외국인들이 1950년 한반도에서 발발한 6·25를 지칭하는, 남의 나라 전쟁 같은 느낌의 ‘한국전쟁’(KOREAN War)이란 말이 더 익숙한 세상이다. 10여 년 전, 6·25전쟁 60주년을 맞아 실시한 국민의식조사에서 응답자의 33%가 6·25전쟁 발발 연도를 잘못 알거나 모르고, 특히 청년층인 19~29세의 47.4%가 모른다고 답했다 한다. 하긴 우리 정부가 6·25전쟁을 공식적으로 어떻게 표기하는지도 모호한데 발발 연도를 모르는 것이 대수일까만. 아무튼 6·25가 현재 휴전 중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더욱 적을 터이다. 여기에 우리나라가 북한의 남침으로 위기에 처했을 때 군대를 파병했던 유엔 16개국과 의료 등을 지원했던 5개국을 포함한 21개국이 참전해 북한과 소련, 중국군을 무찔렀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더더욱 귀할 것이다.

하지만 미국, 영국, 호주 등 16개국은 혈기 넘치는 젊은 청년들을 한반도에 파병해 목숨 걸고 자유와 민주주의를 수호하라고 명했고 그들 중 많은 병사가 이국땅에서 벌어진 전장에서 전사 또는 부상하거나 실종됐다. 그리고 이들 국가는 여전히 이들을 기리고 있어 우리를 부끄럽게 한다.

얼마 전 호주 국립전쟁기록관(AWM·Australian National War Memorial)의 한국전쟁관(Hall of Korean War)을 들렀다가 깜짝 놀랐다. 이곳에서 생생하게 현장감이 느껴지는 6·25전쟁을 기록한 그림들을 봤기 때문이다. 호주는 6·25전쟁 당시 파병과 함께 종군화가 두 사람을 파견해 전쟁의 현장을 기록했다. 이때 한국 땅에 발을 디딘 화가가 아이버 헬레(Ivor Hele·1912~1993)와 프랭크 노턴(Frank Norton·1916~1983)이다. 물론 다른 작가들도 있지만 이들은 전장에서 잠시 틈이 났을 때 스케치를 한 정도이고 공식적으로 호주 정부가 파견한 종군화가는 이들 두 사람이었다. 헬레는 6·25전쟁의 현장을 박진감 넘치는 필체와 뛰어난 데생력을 바탕으로 그림을 그렸는데, 역동적인 표현주의적 그림이 압권이었다. 그리고 사이사이 세부적인 묘사를 놓치지 않고 있었다. 노턴의 수채화로 그린 맑고 투명한 색채 아래 얼핏얼핏 보이는 스케치의 단편들은 아름다움 사이로 전쟁의 상흔이 뚜렷하게 뚫고 올라온다는 느낌을 줬다. 사실 그림은 사진보다 더 생생하게 다가온다. 왜냐하면 그림 속 형상들은 화가들의 눈과 마음을 거쳐 손을 통해 표현되면서 강조와 생략, 묘사와 건너뛰기를 통해 보탤 것은 보태고 뺄 것은 빼기 때문이다.

이미지 크게보기 정준모 큐레이터·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

당사자면서도 변변한 6·25 기록화조차 없는 우리와 달리 호주 국립전쟁기록관은 1차 세계대전 중 영국이나 캐나다, 프랑스의 제도를 본떠 공식전쟁예술계획(Common War Art Scheme)을 시작해 2차 세계대전, 6·25전쟁, 베트남전쟁에서 시행했고, 1999년 동티모르 평화유지 활동 그리고 아프가니스탄과 중동전쟁, 솔로몬군도, 이라크에 배치된 호주군의 모습을 기록했다. 이때 기록관은 호주를 대표하는 구상적이며 표현력이 뛰어난 화가를 파견해 그 현장을 기록했다고 한다. 이들의 그림은 서면이나 다른 형태의 보고서와 달리 전쟁을 시각적·감각적으로 탐구하고 기록해 전쟁의 또 다른 면모를 보여준다. 우리나라도 6·25전쟁 당시 국방부 정훈국에서 종군화가단을, 1972년 베트남전쟁 때 파병용사들의 무공을 기록하고자 10명의 종군화가단(단장 이마동)을 베트남에 보낸 바 있다. 전쟁기록화의 목적은 전쟁을 미화하려는 것이 아니라 전쟁의 아픔과 고통을 보다 생생하게 기록해 전쟁의 참상을 일깨우기 위함이다. 설혹 일제강점을 용서한다 해도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것처럼 6·25전쟁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이제라도 영국이나 미국 등 참전국가의 기록화를 조사·연구해 6·25 전사를 완성해야 할 것이다. 오늘날 6·25전쟁을 잊고 남의 나라 전쟁처럼 생각하는 우리의 태도는 기록화가 없기 때문일까.

큐레이터·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