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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려 깊은 말이 나랏일도 잘되게”… 백성과 신하들에 ‘대화 교육’

기사입력 | 2019-05-15 10:58


“우리나라 인심은 간교(奸巧)한 것을 서로 숭상한다(奸巧相尙).”

1446년 10월에 세종이 지적한 조선인의 특성이다. 마치 지금 우리의 모습을 보는 듯해서, 기시감(旣視感)마저 드는 이 말은 유생(儒生)들의 위장전입 논란 때 나왔다. 과거시험 응시자들이 호적(戶籍)을 속여 비교적 경쟁률이 낮은 다른 고을에 등록하려다가 발각됐는데, 세종에 따르면 “이 무리뿐만 아니라 세속에서 숭상하는 바가 다” 그러했다. 세종실록에 언급된 조선인의 특성은 이외에도 많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매사 빨리하려고 해서 정밀하지 못하다(凡事欲速 未能精緻)” “국가에서 시작하는 일들이 처음에는 준행되는 것 같으나, 곧 해이해진다(始若遵行 旋復怠弛)” “우리나라 사람들은 성품이 가벼워서(輕躁) 모든 일에 떠들고 비밀을 지키지 아니한다(喧화不秘)” 등이 그 예다.

이런 언급들을 보면 ‘한국인의 나쁜 근성’ 내지 ‘민족성’을 떠올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민족성이라기보다는 그 당시 사람들이 진단한 세태라고 봐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막스 베버(M. Weber)의 책을 보면 100여 년 전 독일 국민의 지질한 모습들이 적나라하게 열거된다. ‘대중의 지지를 끌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무책임한 선동정치가들’ ‘인간 성찰의 밭을 깊게 가는 쟁기의 날이 아니라 적을 공격하기 위한 칼날을 가는 지식인들’ ‘그저 정부의 시혜만을 기다리는 무기력한 국민’ 그리고 ‘정부와 군대, 외교는 물론이고 정당 조직까지도 장악해 자기들에게 불리한 정책을 물밑에서 차단하는 거대한 국가 관료들’의 모습이 그렇다.

한마디로 20세기 초의 독일 사람들은 신뢰 부재와 책임 실종의 나라에서 살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러한 모습 때문에 ‘독일 민족은 비루하다’고 규정짓지 않는다. 어느 시대든지 사람들의 비루함과 위대함은 동시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대체로 민족성 운운하는 사람들은 ‘조상탓주의자’거나 국수(國粹)주의자일 가능성이 크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그 비루함을 줄이고 위대함을 강화할 것인지 방책을 찾아내는 것이다.

그 점에서 세종의 뒷말, 사람들이 간교함을 숭상하는 이유는 “그들이 어릴 적에 마음을 바루고 뜻을 성실히 하는 힘을 못 키웠기 때문”이라는 언급은 괄목할 만하다. 어린 시절에 정심성의(正心誠意)하는 공부, 즉 인성 공부를 제대로 못 시킨 것이 간교함을 숭상하는 문화를 만들었다고 본 세종은 몇 가지 방책을 추진했다. 그 첫째는 100여 가지 가언(嘉言)과 선행(善行)을 백성에게 들려줘 그들의 마음을 감발(感發)시키는 ‘삼강행실도 프로젝트’다. 말의 소재를 변화시켜 사람들의 생각 방향을 바꾸려는 이 방책은 조선 후기까지 지속됐다. 정조 때 편찬된 ‘오륜행실도’가 그것이다.

둘째로 세종은 “위에 있는 사람”들의 대화 수준을 향상시키려 노력했다. 토론 능력보다는 대화를 잘하는 게 중요하다고 본 세종은 신하들에게 말하고 대화하는 방법을 다르게 할 것을 권장했다. 다각적인 대화를 위해서 그는 하나의 대안이 아니라 상·중·하의 계책을 마련해서 보고하게 했다. “신하가 임금에게 말할 때는 반드시 자세히 듣고 익히 살핀(詳聞熟察) 다음에 와서 간(諫)해야 하며, 근거 없는 말로 끌어 붙여서 강청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말처럼 세종은 억측(臆測)으로 말하는 것을 반대했다. 대신 경험적으로 확인할 수 있거나 고전(古典)에 있는 사려 깊은 말을 적극 사용하도록 권장했다.

마지막으로 세종은 왕과 왕비를 지칭하는 용어나, 왕의 명령을 지칭하는 말, 그리고 관직 이름을 개정하도록 했다. 이름(名)이 바로 되지 않으면 그것을 기초로 하는 말(言)이 순조로울 수가 없으며, 말이 순조롭지 못하면 일(事)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고 봤기 때문이다. 지금 시도되는 각종 개혁이 성과를 거두려면 적정한 이름 찾기부터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지도층의 언어 정화와 이름을 바로잡는 일이 지금처럼 절실한 때가 있었나 싶다.

여주대 세종리더십연구소장

박현모 여주대 세종리더십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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