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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호 논설위원

아첨과 듣고 싶은 말만 들으면
‘확증편향’도 심해지게 마련
文대통령도 예외이기 어려워

취임 2주년 기자회견 않으며
KBS와만 특별 대담한 배경도
自戒하고 더는 반복 말아야

5선 국회의원을 지내고 지난 1984년 타계한 유옥우 전 의원은 ‘광나루 부락민들’에게 들은 이야기라면서, 1956년 8월 1일 국회 본회의에서 이런 요지로 발언했다. “이익흥 내무장관이 경기도지사로 있을 적에 거기 가서 낚시하시던 대통령께서 속이 불편하셨는지는 모르지만 방귀를 뀌셨다고 한다. 그랬더니 옆에 앉아 있던 이 내무장관이, 그 기술 좋은 내무장관이 ‘각하, 속이 시원하시겠습니다’라고 했다는 이야기이다. 기막힌 일이라고 생각한다.” 낯뜨거울 아첨으로 당시 이승만 대통령의 총애를 받아 장관 자리에까지 올랐다는 취지지만, 이 전 장관은 1993년 별세하기 훨씬 전인 1966년 어느 인터뷰에서 “그때 유 의원이 내무장관 불신임안 통과를 위해 허위 사실을 퍼뜨린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각하, 시원하시겠습니다’는 아첨·아부의 상징 표현으로 굳어졌다. 유사 사례가 끊이지 않아 왔기 때문이다.

누구나 아첨·아부꾼에게 둘러싸이거나, 듣고 싶은 말만 골라서 들으면 현실을 모르게 된다. 자기 생각과 일치하는 정보와 의견에만 귀 기울이고, 일치하지 않으면 배척하는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도 더 심해진다. 국정 책임자라면, 정책도 갈수록 현실과 더 동떨어지게 된다. 문재인 대통령도 그런 것으로 보인다. 논리학에서 자기주장을 뒷받침할 증거와 자료만 선택적으로 제시하는 것을 일컫는 ‘불완전 증거의 오류’에 빠지지 않고는 보일 수 없는 행태가 적나라하다. ‘문(文)비어천가’에 홀려 있지 않다면, 불통(不通)과 독선(獨善)을 지속하며 국정 거의 전반에 걸쳐 ‘신(新)적폐’를 쌓을 리도 없다. 2017년 12월 충북 제천시 스포츠센터 화재의 희생자 합동분향소를 찾은 문 대통령 모습을 전한 청와대 대변인이 ‘시원하시겠습니다’ 유(類)라는 지탄을 받았던 것은 예외적인 일이 아니다. 당시 대변인은 페이스북에 ‘문 대통령 숨소리에 울음이 묻어 있었다. 유가족의 욕이라도 들어드리는 게 대통령이 지금 해야 할 일이라며 돌아오는 차 안에서 또 울먹이신다’ 운운했다.

문 대통령이 취임 2주년 기자회견을 마다하고, KBS와만 9일 오후 8시 30분부터 특집 방송 ‘대통령에게 묻는다’ 대담에 나선 배경도 그 연장선일 것이다. 까다롭거나 난감한 질문까지 다양한 시각에서 여러 기자가 묻는 것이 아니라, 특정 기자의 질문만 받고 말하고 싶은 내용만 말하는 식을 선택했다. 국가 기간방송을 ‘홍보 창구’로 여기는 독재적 발상에 해당한다. 문 대통령은 해외순방 중의 약식 회견에서 ‘듣기 싫은 국내 현안’은 질문부터 원천 차단한 채 업적으로 내세우고 싶은 일만 묻게 한 적도 있다.

그런 식이니 국가 안보까지 왜곡되고 흔들린다. 문 대통령은 지난 7일 독일 신문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FAZ) 기고에서 ‘한반도의 하늘과 바다, 땅에서 총성이 사라졌다. 한반도의 봄이 이렇게 성큼 다가왔다’고 했다. 전문가 다수가 러시아 단거리 탄도미사일인 이스칸데르의 북한판이라는 미사일을 북한이 4일 쏘기 전에 보낸 원고라곤 해도, 현실과는 거리가 너무 먼 인식이다. 그런 인식을 좇아, 조국 민정수석은 8일 “몇 번을 정독했다. 문 대통령의 마음과 뜻과 숨결과 맥박이 오롯이 느껴지는 글”이라고 칭송했다. 국방부와 합동참모본부가 ‘북한 미사일’ ‘북 도발’ 등의 표현을 기피한 배경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당일 오전 9시 6분 발사 18분 후인 9시 24분에 ‘미사일’로 발표했으나, 10시 5분엔 ‘발사체’라고 말을 바꾸고, 다음 날 북한이 포물선 궤적의 사진까지 공개하며 ‘신형 전술유도무기’라고 한 뒤에는 그대로 복창한 이유를 달리 찾기 어렵다. FAZ 기고에서 ‘평범한 사람들이 공정하게 좋은 일자리에서 일하고, 정의로운 국가의 책임과 보호 아래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는 나라’를 염원한 문 대통령의 ‘공정’ ‘정의’ 등도 현실과는 너무 달라, 보편적 아닌 ‘내 편’에 국한한 개념으로 보인다.

경제 정책의 참담한 실패도 인정은커녕 자화자찬까지 하며 엉뚱하게 홍보 부족을 탓한 것도, 부적절한 처신으로 국회 인사청문보고서 채택조차 무산된 헌법재판관 후보를 끝내 임명하며 “경력으로나 법원 내 평가로나 적임자”라고 강변한 것도 확증편향의 방증이다. 문 대통령은 남은 임기나마 쓴소리도 마음을 열고 경청하며 국정 현실을 냉철하게 직시해야 한다. 아첨·아부에 더는 도취하지 않게 자계(自戒)해야 할 것임은 물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