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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휘락 국민대 정치대학원 교수·정치학

평양 정상회담의 ‘군사 분야 합의서’ 내용만 보면 기대 이상으로 평가될 수도 있다. 모든 공간에서의 적대행위 전면중지, 비무장지대의 평화지대화, 북방한계선 일대의 해상 평화수역 조성 등의 구현을 위한 세부적이면서 실질적인 이행 방안까지 합의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군사분계선으로부터 남북 5㎞ 내 포병 사격훈련 및 연대급 야외 기동훈련 금지, 동·서해 80∼135㎞에 이르는 완충지역 설치, 10∼40㎞ 이르는 기종별 비행금지구역 설정, ‘남북군사공동위’의 설치와 가동 등은 제대로 이행될 경우 한반도의 긴장 완화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

그러나 국가 안보는 언제나 최악의 상황까지 고려해야 하고, 북한은 1950년 평화 공세 후 기습공격을 해온 적이 있으므로 현 합의 중 위험 요소를 식별해 대책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필자가 ‘악마의 변호인’을 자청해 북한이 6·25전쟁과 같은 기습공격을 가하려고 할 경우 현 합의가 지니고 있는 위험 요소를 지적하려는 이유다. 다수의 북한 연구자들이 북한의 ‘7일 전쟁계획’을 언급하고 있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2017년 8월 26일 훈련 참관 후 북한군에 “서울을 단숨에 타고 앉으며 남반부를 평정할 생각을 해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첫째, 한강 하구 공동 이용을 위한 군사적 보장 대책에 대한 염려다. 한강 하구에 대한 남북한 공동 수로 조사 및 민간 선박의 한강 하구 수역 이용을 보장하려면 해당 지역에 설치돼 있는 각종 장애물과 경계초소를 제거하고, 군부대의 배치도 조정하는 등 경계태세를 낮춰야 한다. 그렇게 되면 민간 활동으로 복잡해진 상황을 활용해 북한군 부대가 기습적으로 도하할 경우 김포반도를 거쳐 남방에서 서울을 일거에 포위할 수 있다. 이 지역은 평야지대여서 축차 방어진지를 구축하기 어렵고, 그래서 오래전부터 전략가들은 ‘한국의 아르덴’이라면서 우려해온 것이다.

둘째, 철원지역 공동 유해발굴 사업의 경우도 북한의 기습공격을 조장할 소지가 없지 않다. 남북은 올해 말까지 발굴 지역 내 지뢰와 폭발물을 제거하고, 12m 폭의 도로를 설치한다고 합의했는데, 그렇게 되면 한국의 중부전선 요충에 현대적 통로가 설치되는 결과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북한군이 철원평야를 통해 한국의 중부지역을 관통할 경우 6·25전쟁과 같은 끔찍한 패배도 가능할 수 있다. 지뢰 제거나 도로 설치와 함께 예상되는 위험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셋째, 비무장지대(DMZ) 내 감시초소(GP)의 시범적 철수는 그렇다 해도 전면 철수는 더욱 신중해야 한다. 한국은 북침을 하지 않을 것이라서 북한에는 GP가 중요하지 않지만, 방어를 하는 한국에는 GP가 없을 경우 비무장지대까지의 비밀 접근을 탐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비행금지구역에 의해 군사분계선 40㎞ 이내 정찰기 운용이 불가한 상황이어서 기습공격에 대한 위험성은 더욱 커진 상태다.

전쟁의 발발 원인을 연구한 존 스퇴싱어는 공격자의 ‘오인식(誤認識, misperception)’을 가장 경계하고 있다. 또, 아서 슈타인 UCLA 교수는 현실 타파를 노리는 국가는 상대방이 단호하지 않다고 판단할 때 공격을 감행한다고 분석했다. 선의에 의한 한국의 양보가 북한의 오판으로 연결되지 않도록 가능한 모든 상황을 상정하고, 필요한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안보는 도박할 수 없다는 점에서 군사 분야의 제반 조치는 당연히 철저한 상호주의와 검증을 바탕으로 신중하면서도 점진적으로 추진돼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