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계 반발

‘비서 성폭행’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안희정 전 충남지사에게 14일 무죄가 선고되자 여성계가 크게 반발하고 있다. 전날 홍익대 누드모델 불법촬영(몰래카메라) 사건의 가해자가 실형을 선고받은 것과 더불어 편파 판결 논란은 더욱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재판장이 무죄를 선고한 순간 서울서부지법 303호 형사대법정에서 방청하던 한 여성은 울먹이며 “진짜 너무하는 것 아니냐”고 소리쳤다. 피해자 측 변호인인 정혜선 변호사는 “이번 판결은 변호인으로서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며 “법원은 이 사건이 주는 사회적 무게감에 대한 고민 없이 판결했다”고 밝혔다. 정 변호사는 “재판부는 수많은 미투(Me Too) 피해자들과 사회의 절실한 요구에 전혀 부응하지 못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피해자는 ‘이번 판결로 주저앉지 않겠다’고 이야기했다”며 “우리도 끝까지 함께 가겠다”고 말했다.

재판이 끝난 직후인 오전 11시 20분쯤 안희정 성폭력사건 공동대책위원회는 법원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무죄판결은 성폭력 사건의 강력한 증거인 피해자의 진술 신빙성을 부정하고 여전히 업무상 위력에 대한 판단을 엄격하고 좁게 해석했다”며 “위력에 의한 성폭력을 제재하겠다는 입법 취지는 무색해지고, 위력 간음 추행 조항은 다시 사문화된 상태가 되려고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검찰은 즉각 항소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배복주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상임대표는 “업무상 위력에 의한 성폭력 혐의는 직장 내 성폭행 문제에 있어 핵심 쟁점이라는 점에서 이번 판결은 직장 내 성폭력 피해자들의 입을 막은 것과 다름없다”며 “앞으로 직장 내에서 성폭력을 당하는 피해자들이 문제를 제기하기 더 어려워졌다”고 비판했다.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소장은 “현저하게 저항이 어려운 폭행과 협박이 있지 않은 경우에도 권력이나 지위를 종합적으로 이용했다면 성폭력 피해를 인정한 최근 대법원 판례의 흐름조차 따라가지 못했다”며 “위력에 의한 성폭력을 제지하려는 사회적 흐름을 차단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윤명진·이희권 기자 jinieyoon@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