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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체제의 위장된 ‘惡 본성’

이제교 기자 | 2018-06-14 11:43

이제교 국제부장

‘선과 악을 저마다 다른 육체에 깃들게 할 수만 있다면 인생은 모든 고뇌에서 해방되리라 생각했다. 사악한 성격은 그 쌍둥이 형제인 올바른 성격, 즉 이상이나 뉘우침에 방해받지 않고 마음껏 행동할 수 있을 것이다.’(로버트 L 스티븐스, ‘지킬 박사와 하이드’ 중에서)

역사적 만남으로 불렸던 미·북 정상회담이 12일 싱가포르에서 폐막됐다. 센토사 섬 카펠라 호텔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합의문에 서명했다.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는 잃은 것이 없다고 잘못 생각할 수 있다.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고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CVID) 문구가 합의문에서 실종됐더라도 북핵 위협을 일단 멈춰 세웠다. 2, 3차 후속 회담을 통해 평화 무드를 조성하면 재선에서도 밑지는 장사가 아니다. 얘기가 잘 되면 핵무기 몇 기를 미국으로 가져와 폐기하는 리얼리티 쇼도 기대된다. 독재자를 정상국가 지도자로 데뷔시켰다는 비판이야 있겠지만 언론들은 원래 아군이 아니지 않은가.

한·미 연합훈련 중단 선언 역시 마찬가지다. 그의 생각엔 비용도 많이 들어가고, 무엇보다 동맹국 문재인 정부가 내심 원했던 사항이다. 잦은 돌출 발언에도 문 대통령이 해고하지 못하는 문정인 통일외교안보 특보는 맥스선더 훈련을 앞둔 지난 5월 “송영무 국방장관이 빈센트 브룩스 한미연합사령관을 만나 B-52 전략폭격기를 한반도에 전개하지 못하도록 요청했다”고 바람까지 잡아줬다. 한국 보수 진영의 반발은 문 대통령 지지율 72%를 감안하면 ‘드롭 인 더 버킷’, 양동이에 떨어진 물 한 방울 정도다. 미국 국가부채가 21조 달러로 나라가 망해가는데 한국에 언제까지 미군을 주둔시켜야 하는지도 의문이다.

생뚱맞을 수 있어도 ‘지킬 박사와 하이드’ 구절을 들춘 것은 한반도 정세가 북한의 통일 전략대로 흘러갈 수 있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평화 국면에 찬물을 끼얹는 구태적 사고라고 비난할지 몰라도 짚고 넘어갈 부분이 있다. 황장엽 노동당 비서는 생전에 ‘갓끈 전술’을 자주 언급했다. 한·미 연합훈련 중단→ 한미상호방위조약 폐기→ 미·북 평화조약 체결을 이뤄내면 남한은 끈 떨어진 갓에 불과해 자멸한다는 논리였다. 김 위원장은 4·27 남북정상회담의 판문점 도보다리 대화에서 선의 소유자로 연출됐다. 하지만 북한은 강제수용소를 운영하고, 폭압적 인권 탄압을 자행하는 악의 축, 헨리 지킬 박사에게 감춰진 에드워드 하이드의 본성을 갖고 있다. 선과 악이 하나의 장작 다발에 묶여 있지만, 그 본성은 핵이라는 무기를 통해 발현될 수 있다.

뉴욕타임스는 2004년 5월 26일 자 사설에 처절한 자기반성을 담았다. 9·11테러 이후 조지 W 부시 정부에서 흘린 왜곡된 정보를 제대로 검증하지 않고 이라크 공격의 정당성에 동조하는 기사를 게재했다고 스스로를 비판했다. 지금 한국정부는 평화와 화해, 협력을 외치고 있다. 북한이 정말로 비핵화를 한다면 수년 뒤 ‘우리는 김정은 정권이 폭압적 독재체제이며, 주한미군이 한반도 평화를 유지하고 있었다는 식의 굴절된 시각을 가지고 글을 썼다’고 반성하는 참회문을 쓰고 싶다. 하이드는 어떻게 됐을까. 도와줄 이가 없었던 하이드는 내재된 악의 분출로 지킬 박사의 서재에서 싸늘한 시체로 발견된다.

jk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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