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굳게 닫힌 문 연극 연출가 이윤택 씨가 예술감독을 맡은 ‘연희단거리패’가 해체된 가운데 22일 폐쇄 수순을 밟고 있는 서울 종로구 명륜동 ‘연희단거리패 30스튜디오’가 카메라에 잡혔다. 김선규 기자 ufokim@

- 궁지 몰린 제2, 3의 권력

20년前 성폭력 피해 알리고
내부 고발까지 줄 잇는 건
性的차원 넘은 권력에의 경고

이윤택 등 반성 않는 모습에
젊은 예술인들 ‘위드유’ 가세

20년 전 성추행·성폭행을 고백하는 ‘미투’에서 며칠 전 당사자들의 대책회의 장면을 담은 ‘내부 고발’까지 보편화한 SNS를 통해 빗발치는 폭로·제보는 제2·3의 문화권력들을 숨을 데 없는 코너로 몰고 있다. 예술이란 미명하에 숨어 있던 적폐들이 하나씩 모습을 드러내면서 들끓고 있는 공연계는 물론 고은 시인 사태 이후 침묵하는 문학계, 미투 관련 의혹의 눈길을 받고 있는 대중문화계, 미투를 촉구하는 종교계 등이 온도 차 속에서도 저마다 불안한 행보를 계속하고 있다. 오랜 세월 제왕적 체제를 누려온 권력자들과 이들에 의해 자행됐던 도제식 시스템과 내면화된 조직 논리를 몰아내고 ‘세대교체’를 해야 한다는 요구가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SNS를 통해 쉴 새 없이 쏟아지고 있는 글들은 현재 실명이 폭로된 이윤택, 오태석뿐 아니라 또 다른 연극 연출가와 뮤지컬 제작자, 학교 교수 등 전 분야의 문화권력들을 겨냥하고 있다. 심지어 이들의 1차 가해 사실뿐 아니라 이를 은폐하려고 하는 가해자들의 대응 과정과 거짓 해명까지 노출되면서 사태는 일주일 넘도록 수그러들기는커녕 일파만파로 확산하고 있다. 이윤택 연출가가 몸담은 연희단거리패의 오동식 배우가 21일 이 씨의 ‘사과회견 리허설’을 폭로하고, 같은 날 홍선주 배우가 연희단거리패의 해명에 실명으로 반박 글을 올린 것이 대표적인 예다.

피해자들이 이번 사태가 단순히 성적 차원을 넘어 해묵은 권력들에 의해 자행돼 온 권력형 범죄이며 묵인과 방조가 일상화됐던 문화계 전반의 문제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구성원들과의 합의 없이 연출가 1인에게 의존해 작품을 무대에 올렸던 기존 제작 방식과 선배 혹은 연출가의 말이라면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도제식 훈련 방식, 집단주의 문화도 심판대에 올랐다. 이 같은 비판은 문화계 전반의 ‘분위기 쇄신 및 세대교체’가 필요하다는 결론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그런데도 비뚤어진 성 의식에 사로잡힌 권력들은 여전히 쉽게 반성하거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윤택은 피해자들의 눈물 섞인 폭로에도 “성관계는 했지만 성폭행은 아니었다”는 말로 오히려 역풍을 불렀고, 오태석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묵묵부답이다. 어떻게 보면 문화계 전반으로 번지고 있는 비교적 젊은 연출가들의 자성과 자정 노력은 그나마 다행이다.

극단 고래의 대표인 이해성 연출가, 김재엽 극작가 겸 연출가, 창작집단 LAS의 이기쁨 대표 등이 피해자들과 함께하겠다는 의미의 ‘위드유’를 표명했다. 이들을 비롯한 젊은 연극인들은 매주 극단 고래 연습실에서 피해자들에 대한 법률 조력 방법과 추후 대응 방식을 논의하기로 했다.

정진세 연출가는 페이스북에 “극단 내에 성평등 규약을 마련해 피해자는 보호하며 가해자와는 작업하지 않겠다”고도 했다. 미투 운동은 오랜 시간 성과 관련한 피해를 감수한 이후 “이제라도 바꿔야 한다”는 기존 구성원들에 의해 촉발됐지만, 이후 크고 작은 폭로를 이어가며 화력을 떠받치고 있는 것은 젊은 세대다.

인지현 기자 loveofall@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