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구청에 신고 잇따라
“쥐 잡으려 했을뿐” 핑계
범인 대부분 무혐의 처분

동물 혐오자들이 길고양이를 죽이겠다고 쥐약을 놓거나 고의로 독극물 섞인 먹이를 준다는 신고가 서울 곳곳에서 잇따르고 있다.

서울 여러 구청 관계자들은 24일 “길고양이들을 돌보려고 동네에 놓아둔 먹이에 누군가가 쥐약으로 추정되는 액체 등을 뿌려놨다”는 신고가 심심찮게 접수된다고 전했다. 서대문구는 아예 ‘쥐약 등 동물 학대 금지. 우리 구의 길고양이는 중성화사업(TNR)으로 관리하고 있습니다’란 안내판을 내걸기도 했다.

동물보호법에는 동물을 잔인하게 죽이거나 도구·약물을 사용해 다치게 하면 1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돼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길고양이 살해범’들을 처벌하기는 쉽지 않다. 사체가 있어야만 수사가 가능하고, ‘범인’을 지목해 신고하더라도 “고양이를 죽이려고 한 게 아니라 쥐를 잡으려고 했을 뿐”이라는 등 핑계를 대고 빠져나가 증거를 확보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강서구에서는 지난 2월 고양이 3마리가 흉측한 모습으로 죽었다는 내용의 민원이 구청에 접수됐다. 신고자는 ‘평소 길고양이에 대해 불만이 많았던 인근 주민이 쥐약으로 고양이를 죽인 것 같다’는 내용의 진정을 경찰에도 냈다. 경찰은 증거가 불충분해 이 건을 무혐의 처분할 수밖에 없었다. 지난 6월 경기 용인서부경찰서에도 대단지 아파트에 사는 길고양이들이 관리사무소가 놓은 쥐약을 먹고 죽었다는 고발이 접수됐지만, 역시 무혐의 처분이 내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고양이 사체에서 발견된 쥐약은 치사량이 아니라 극소량이었다”며 “쥐약을 먹고 죽었다고 특정할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쥐약을 먹은 길고양이는 핏줄이 터지거나 경련·발작 등에 시달리는 등 오랜 기간 고통을 겪다 죽는 만큼, 길고양이와 거주민들의 ‘조화’가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김현지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 정책팀장은 “소수의 길고양이가 동네에 정착하면 오히려 개체 수가 안정적으로 유지된다”고 말했다. 채일택 동물자유연대 정책팀장은 “함부로 쥐약을 놓다가 어떤 생명체의 목숨을 빼앗게 될지 알 수 없다”고 경고했다.

김수민·이희권 기자 human8@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