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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욱 서울대 명예교수·보건학

내 나이 올해 85세, 이름은 ‘한장수’. 이름에 걸맞게 한세상을 장수한 사람이다. 심근경색 증상으로 한동안 고생했다. 그런데 최근에 증상이 심해져 가끔 의식을 잃는 순간도 잦아지고 가슴이 찢어지는 통증도 견디기도 힘들다. 가족들이 당장 수술을 하자고 했을 때 나는 반대했다. 병원치료비도 걱정이지만 이 나이에 무슨 수술을 하랴 싶다. 그렇지만 갑자기 파도처럼 밀려오는 가슴 통증이 심할 때면 참을 수가 없다. 결국, 깜빡 의식을 잃었다가 회복하기도 했다. 의식 회복은 또 다른 통증의 광란을 겪어야 하는 과정이라 오히려 저주스럽기만 했다.

그러던 중 이른바 ‘웰다잉법’이란 것이 생겨서 존엄사의 길이 틔었다는 얘길 들었다. 참 잘됐다고 생각하고 알아보니 나는 안 된단다. 그 법은 환자의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있도록 하는 법일 뿐이어서 나는 해당이 되지 않는다고. 게다가 질병도 ‘암, 후천성면역결핍증, 만성폐쇄성 호흡기질환, 만성 간질환’ 등이어야 한단다. 물론 그밖에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하는 질환도 가능하지만, 아직 그런 질환은 지정되지 않았다고 한다.

이른바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이 지난해 국회에서 통과됐고, 3개월의 시범 기간을 거쳐 내년부터 시행된다. 우여곡절 끝에 마련된 ‘문명스러운 법’이다. 이 법은 ‘연명의료’와 ‘연명의료 중단’ 등의 결정 및 그 이행에 필요한 사항을 규정하기 위한 법이므로 일단은 그 법에 맞는 행위만을 대상으로 하는 원칙에 충실해야 할 것이다.

특히, 이 법에서 규정하는 연명치료란 ‘심폐소생술, 혈액투석, 항암제투여, 인공호흡기 착용의 의학적 시술로서, 치료 효과 없이 임종과정의 기간만을 연장’하는 것에 한정하고 있다. 또한, 법조문을 읽다가 ‘연명의료 계획서’ ‘사전 연명의료 의향서’ 등에 이르면, 연구계획서 작성 요구서를 읽는 기분이 된다. 하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이른바 감사를 대비한 듯한 표현이 곳곳에 나온다.

원래 법이란 것은 제정과 동시에 그 법을 피하거나 악용하려는 반작용이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이 법은 매우 특별한 법으로서, 법 적용이 유난히 엄격해야 한다. 법 집행 과정에서 환자, 가족, 그리고 의료진들이 존엄사라는 미명 아래 의외의 피해를 보게 되는 경우가 없도록 하기 위해서는 법 해석을 까다롭게 할 수밖에 없고, 그래서 있을 수 있는 역기능의 기회를 제거해야 함은 너무도 당연하다.

환자 가족 간의 사생활적인 속성과 맞물려 졸지에 존엄사를 당하는(?) 환자도 있어선 안 되겠지만, 환자의 가족과 의료진과의 사회심리학적 메커니즘도 고려해야 하므로 시행 초기에는 엄격한 법 적용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그렇지만 유연한 적용도 존엄사를 ‘허용하는’ 법의 취지에 맞다. 눈을 들어 주위를 돌아볼 때 ‘한장수’ 노인처럼 존엄스럽게 생을 마감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어도 이 법에 적용이 되지 않아서 기회를 얻지 못하고 오히려 고통스럽게 생을 이어가는 사람은 없는지 연구해 봐야 할 것이다.

위의 네 가지 질병에 한정하는 법조문을 까다롭게 적용하는 것이 오히려 존엄사의 길을 막을 수도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모든 해당자에게 포괄적으로 존엄사의 길을 열어 주는 것이 법의 정신이 아닐까. 우리 주위에 존엄사를 필요로 하는 수요 집단은 없는지 살펴보면서 존엄사의 취지를 살려 보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앞으로의 과제라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