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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함민복 시인이 본 ‘강화의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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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강화도는 진달래의 낙화를 애도하듯 철쭉꽃, 등나무꽃, 아카시아꽃이 흐드러지게 폈다. 강화대교를 건너오면 우측에 만남의 광장이 있다. 만남의 광장에 쉴 새 없이 관광차들이 몰려왔다. 차에서 쏟아져 나온 등산복 차림의 상춘객들이 상가건물의 화장실을 향해 뛰었다. 먼 곳에서 왔고 차가 꽤 밀렸었나 보다. 지하수를 사용하는 화장실 물이 벌써 다 떨어졌다고, 애먼 볼일만 보고 다급히 차에 오르는 사람들을 향해 인삼센터 상인들이 볼멘소리를 늘어놓았다.

“저 많은 사람들이 홍삼젤리 하나 안 사고 화장실 관광만 하고 가네!”

상인들은 겉으로 투정을 늘어놓으면서도, 덩달아 꽃구경 가고 싶은 마음이 발동해서인지, 꽃구경 빨리 하고 싶은 심정을 헤아려서인지 너그러운 마음을 잃지 않았다. 봄의 심지 꽃 보러가는 사람들을 누가 미워할 수 있을까. 꽃은 지렛대다. 사람들 마음을 향기와 빛깔로 들어올려 가볍게 만들어 놓는다. 광장을 오가는 남녀노소의 발걸음이 사뿐사뿐하고, 그들이 주고받는 눈빛과 말도 적당히 흥분되어 편편이 꽃잎처럼 가볍다.

꽃 보고 싶은 마음도 전염되는 것일까. 장사를 뒤로 하고 산책을 나섰다. 강화대교 아래를 지나 당산 기슭을 향했다. 나란히 서 있는 통제영학당 안내판과 해군참모총장이 세운 통제영학당 옛터 표지석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통제영학당은 1893년 군사적 요충지 갑곶나루에 자금 1000원을 들여 설립한 우리나라 최초의 해군사관학교다. 통제영학당에서는 영국의 해군장교와 하사관을 교관으로 초빙하여, 사관후보생 50명과 수병 300여 명을 교육하였다. 교육생들은 영어, 군사학, 항해학, 포술학 등을 배웠다. 종래의 수군체제를 근대식 해군체제로 전환시키려는 목적 하에 설립되었던 학교는 개교 이듬해인 1894년 11월 청일전쟁의 영향으로 꽃도 피워보지 못하고 폐교되고 말았다.

갑곶나루 순교성지는 통제영학당과 잇닿아 있다. 순교성지에는 황매화·겹벚꽃·철쭉꽃이 가득 피어있다. 순교성지 동산에는 여러 갈래의 작은 길들이 있고 이 길들은 잘 가꿔져있어 바라보기만 해도 탄성이 저절로 나왔다. ‘십자가의 길’ 출발지점에는 똑같이 두 줄기로 갈라진, 쌍둥이 같은 은행나무 세 그루가 기이하게 서 있다. 병인양요 후 천주교에 대한 대대적 박해가 이어졌다. 1868년 강화에 살던 천주교 신자 우윤집, 최순복, 박상손 등도 이때 갑곶나루에서 효수되었다. 세월이 흘러 그들이 처형되었던 장소는 순교성지가 되었고 그들은 순교자로 새롭게 피어났다. 시간이란 나무가 피워놓을 꽃을 그 누가 짐작이나 했을까.

어쨌든 모든 현재는 과거가 피워놓은 꽃이라는 생각을 하며 순교성지를 나와 강화전쟁박물관으로 내려갔다. 박물관 초입에 강화와 관련된 비석들을 모아 작은 비림을 조성해 놓았다. 빗돌 중에는 송덕비가 많았다. 대부분의 송덕비 내용을 냉철하게 보면 그 직책을 가진 사람이면 당연히 하여야 할 일이다. 송덕할 만한 일이 아니다. 차라리, 행인들의 이정표가 되어주기도 하고 사람들에게 침묵을 가르쳐 주기도 한, 송덕비로 서 있는 돌들을 송덕하면 어떨까. 그 돌들을 사람들 가슴에 새겨 송덕하여야 마땅하지 않을까.

이미지 크게보기 인천 강화군 강화읍 갑곶나루 순교성지의 산길. 함민복 시인 제공

구석기 주먹찌르개에서 베트남전쟁 참전까지의 자료들을 살펴보고 밖으로 나와 갑곶돈대 성벽에 기대서서 강화를 섬으로 만들고 있는 염하(강화해협)를 굽어보았다. 뱀장어 새끼를 잡는 그물을 단 꽁당배 10여 척이 물결을 읽으며 평화롭게 떠 있다. 박물관을 돌아 나오는 길목에 진해공원이라는 작은 공원이 있고 여기에 순국열사 연기우 의병장 공적비와 강화 출신인 죽산 조봉암 선생 추모비가 있다. 두 비석은 두 사람의 파란만장한 생애처럼 닮았다.

강화대교에서 초지대교로 이어지는 해안도로에 긴긴 철쭉꽃의 행렬이 펼쳐져 있다. 파스텔풍의 꽃들은 산호초 군락지 같기도 하고 아름다운 환형동물의 꿈틀거림 같기도 하다. 차로 달리는 20여 분 간, 세파에 찌든 마음을 씻어주는 꽃방파제 철쭉의 줄서기는 계속 된다. 잠시 갓길에 차를 멈추고, 무슨 공연이 있나 물어보지도 않고 무작정 꽃 뒤에 줄을 서고 싶어졌다. 사람들에게도 저리 어우러져 환하게 피어나고 싶은 욕망이 내재되어 있나 보다. 휴대전화를 꺼내 꽃바다를 배경으로 사진 찍는 사람들의 얼굴이 송이송이 피어났다. 꽃은 살아온 시간의 기록일까, 미래에 대한 계획서일까. 꽃의 압축된 시간에 자신이 살아온 세월을 압축해 비춰보는, 시간의 순례자들을 뒤로 하고 돌아서 북쪽을 향했다.

내친김에 고려산에 올라보기로 하고 송해면 하도리 오류내를 향했다. 오류내는 조선 최고의 시인이라 일컫는 석주 권필(1569∼1612)이 초당을 짓고 수년을 살았던 마을이다. 권필선생 유허비를 지나 고려산에 들었다. 권필은 ‘남은 송곳 꽂을 땅도 없다 하지만/나는야 애당초 송곳도 없네’라고 노래할 만큼 청빈하게 살았지만 ‘온천지를 내 집 삼고/만물을 양식 삼아,/ 별들을 패옥 삼고/구름 달을 치마 삼아,/눈 귀 막고 문을 닫아/도와 더불어 훨훨 날아…’와 같은 웅숭깊은 시를 읊었다.

고려산에는, 처음 절을 세운 스님이 산정에 있는 오련지(五蓮池)에서 연꽃을 꺾어 하늘에 날려 꽃잎이 떨어진 곳마다 청련사, 백련사, 적련사, 흑련사, 황련사를 창건했다는 설화가 전해진다. 청련사 가는 길을 잡아 오르다가 갈래 길에서 백련사 쪽을 택했다. 사람들에게 덜 알려져 한적한 길이었지만 더러 하산객들을 만났다. 능선의 오르막길을 오르며, 개화시점에서 가파르게 치달았을 꽃들의 시간을 생각했다. 오죽 가팔랐으면 꽃들이 절정에서 오래 머물지 못하고 달려온 여력에 시듦 쪽으로 급히 기울까. 모든 꽃에서는 이별의 냄새가 난다. 꽃의 빛깔은 이별의 색이다.

멀리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 흐르다 다시 예성강을 만나는 아름다운, 그러나 북방한계선(NLL)인 물줄기가 펼쳐져 있다. 그 너머로 북녘 땅인 민둥산들이 다가왔다. 며칠 전 저 아래 별악산 자락 끝에 있는 철산리 제적봉평화전망대에 갔었다. 개관 시 강화평화전망대였던 명칭이 2011년 4월 18일 ‘제적봉평화전망대’로 바뀌었다. 글자 중 새로 붙인 제적봉이란 글자가 유독 깨끗해 갈 때마다 마음이 무거워졌다. ‘제적(制赤)봉’은 1966년 정치인 김종필이 이곳을 ‘붉은 적을 제압한다’는 뜻으로 명명해 유래되었다고 한다. 제적과 평화란 말의 불편한 조합을 만날 때마다 묵자(墨子)의 아우르는 사랑 ‘겸애’ 편과 전쟁을 반대하는 ‘비공’ 편이 떠올랐다.

평화전망대에 올라 북녘을 보면 지척이란 말이 실감난다. 달밤이면 평화전망대의 그림자가 북녘 땅에 닿을 듯도 하다. 남녘 북녘 물가에서 청둥오리들이 비상하려고 동시에 출발하면, 활주로가 짧아 중간지점까지 다다라서도 날아오르지 못하고 서로 엇갈려 물 위를 더 내달려야 날아오를 수 있을 것 같다.

인디언들이 ‘악마의 끈’이라 부른다는 철조망 아래서 보초를 서며, 북녘 땅에서 우는 청 좋은 부엉이 울음소리를 들은 귀 젊은 병사도 있었을 법하다. 망원경으로 당겨보는 1.8㎞ 밖 북녘. 500원을 내고 2분 동안 연백군, 개풍군의 북녘 동포 100여 명을 보면서, 통일을 원하는 우리들 마음망원경에는 점점 먼지가 껴가는 것 같아서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다시 돈을 넣고 망원경으로 둘러보아도 북녘 땅에는 꽃이 보이지 않았다. 지난 4월 열린 ‘고려산 진달래 축제’에 50만 명이 꽃을 보러왔듯 평화전망대에 통일을 염원하는 인파가 넘실거리길 빌어보았다.

꽃을 보았으니, 사람들 마음에 평화를 주는 꽃처럼 꽃값하며 살아가야겠다는 마음이 피어나는 강화의 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