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서울 교보문고 핫트랙스의 문구매장에서 한 중년남성이 신년 다이어리를 고르고 있다. 곽성호 기자 tray92@

만년필·명함지갑·시계부터 콘돔통·안경·키 홀더까지
실용 아이템으로 개성 연출

“문구점, 미술관 숍 등을 구경하다 보면 물건이 어느새 자신에게 말을 걸어온다.… 그 물건들과의 교감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교감 못지않다. 사물에 위안을 받기도 하고, 사물 안에 잠든 기억을 떠올리기도 하고, 사물과 함께 고요히 늙어가는 자신을 발견하기도 한다.”

미술평론가 박영택 경기대 교수는 저서 ‘수집미학’에서 자신이 오랜 세월 들여다보고 즐기는 다이어리, 연필깎이, 잉크병, 돋보기, 배낭 등 사물을 통해 일상의 재미와 감동을 이야기한다.

물리학자 이기진 서강대 교수도 저서 ‘나는 자꾸만 딴짓하고 싶다’를 통해 자유분방한 이탈의 즐거움을 안겨준 소품으로 병따개, 로봇인형들을 공개한다. 이 교수는 물건과의 인연과 더불어 소소한 물건의 의미, ‘업’과는 또 다른 ‘즐거운 인생’을 일깨운다.

‘남자의 소품’은 대부분 쓸모 위주의 일상용품들이면서 취향을 즐기고 발휘하는 상징들이다. ‘남자의 물건’이 여성용에 비해 패션성보다 실용 위주인 데다 품목이 많지 않아, 사용하는 물건에 그 사람의 취향과 면모가 고스란히 투영되기 마련이다.

연예기획자 양현석 YG엔터테인먼트 대표 프로듀서 경우, TV 프로그램 속 사무실 장면에서 장식장 가득한 아트토이, 피규어를 통해 개인적 취미가 드러나기도 했다.

‘나만의 무엇’이 발휘되는 대표적인 남성용품이 만년필, 명함지갑, 시계 등이다. 여성의 시선이 명품 가방과 의류로 향할 때, 남성들은 문구점, 남성용품 편집매장에서 평범하면서도 개성적인 물건을 바라보거나 사모으며 내밀한 시간을 즐긴다. 문구용품 전문매장이나 백화점마다 강화하고 있는 시계전문 코너는 퇴근 후 저녁시간은 물론 점심시간이면 중장년층까지 포함해 정장 차림 남성 고객들의 비중이 높다.

김상진 신세계백화점 남성의류팀 바이어는 “수년 전부터 남성소품의 품목이 늘어나고 고급화하는 추세”라고 지목한다. 2010년 즈음 남성패션이 정장 위주에서 캐주얼화하고 2012년 들어 이탈리안 스타일이 국내서 강세를 보이는 가운데 남성용 소품도 다양해졌다는 이야기다.

반듯한 정장 차림과 다르게 캐주얼 패션은 자칫 옷을 함부로 입은 듯 보이기 쉬워, 옷 이외에 소품을 강화하게 됐다는 것. 무엇보다 타이의 변화가 크다.

이전엔 중년남성 10명 중 7∼8명이 심지 굵고 두툼한 데다 큐빅을 뿌리거나 반짝이 소재의 ‘큐빅 타이’를 사용했지만, 근래 장식성을 덜어낸 무늬 없는 단색의 차분한 디자인이 대세다.

가방도 큼직한 검정 가죽제품 대신 남성용으로 유행색인 버건디색 클러치까지 등장했다. 가방의 경우, 로고가 드러나는 유명 브랜드보다 전통기법으로 제작하는 이탈리아 일본 장인의 브랜드 등이 주목을 받고 있다.

감각파 패션피플들은 인지도는 떨어져도 ‘개성파 브랜드’를 통해 ‘나만의 취향’을 은근히 즐기고 발휘한다는 것.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중장년층도 소품패션에서 화려하고 티나는 유명 브랜드보다 “아는 사람만 알아보는 브랜드를 끼리끼리 즐기고 있다”는 이야기다.

남성용품도 스타 마케팅이 영향력을 발휘한다. 스티브 잡스의 안경, 존 레넌의 안경, 장동건의 예물시계, 양현석의 피규어 등 국내외 유명인들이 애용한 상품이 애호가들 사이에 입소문을 타며 남성들의 소유욕을 자극한다.

휴대전화의 시간 알림 기능에도 불구하고 시계는 국내서도 ‘남성의 주얼리’ ‘남성패션의 완성’으로 남성 소비자들을 파고들었다. 롤렉스, 오메가, 까르띠에 등 전통 명품 브랜드뿐 아니라 파텍 필립, 오데마피게, 브레게, IWC, 예거 르쿨트르, 바쉐론 콘스탄틴 등 럭셔리 브랜드까지 시계시장이 급성장 중이다.

김필도 갤러리아백화점 시계 담당은 “국내서 시판하는 시계 브랜드가 다양해지면서 남자의 ‘드림 워치’는 수백만∼수천만 원대를 중심으로 최고 상한가가 따로 없다”고 밝힌다.

업계에 따르면 국내서 거래된 시계 최고가는 14억 원대. 다이아몬드가 박히고, ‘크로노그래프’ ‘문페이즈’ ‘투르비옹’ 등 하이테크 기능의 고가 수공시계와 별도로, 배터리 없는 19만 원대 오토매틱시계도 남성 시계애호가들 사이에 빅뉴스다. 스와치사가 지난 8월 말 국내서 선보인 신제품은 간편하게 애용할 수 있는 패션소품으로 입소문을 타고 있다.

노트북 자판을 누를 뿐 글을 쓸 기회는 줄어들었지만 만년필, 그중 명품 만년필은 디자인이 다양화·고급화하는 추세다. 현재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 핫트랙스의 문구매장에는 펜촉·링·클립꽂이를 18K 금과 골드 도금한 만년필이 4800만 원대에 나와 있다. 0.03∼0.05캐럿 다이아몬드가 박힌 수백만 원대 제품 및 몽블랑의 경우 브람스·토마스 만·대니얼 디포 등 유명 음악인, 작가들을 기념하는 한정판 특별제품도 선보인다.

시계 만년필 등의 명품 브랜드들은 ‘몽블랑 홍보대사 휴 잭맨’ 등 문화예술행사와 연계하는 마케팅으로 자사 상품이 공장 대량생산품이 아닌 장인들의 예술작품과 일맥상통함을 일깨운다. 예거 르쿨트르는 베니스영화제 등 세계 유명 영화제를 후원하고, 몽블랑은 문화예술인대상의 시상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남자의 물건’으로 남성용품 편집매장에는 타이, 와이셔츠 등 의류, 안경, 시계, 필기도구 외에 자동차키 홀더, 돋보기, 우산, 면도기, 북마크, 모자, 장갑, 손톱깎이, 구두약부터 콘돔통까지 나와 있다.

신세미 기자 ssem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