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마찬가지로 공간도 감정을 나눈다. 어떤 장소에 가면 편안하고, 어떤 장소는 그렇지 않다. 그 이유를 설명할 순 없다. 그냥 그 장소와 내가 교감하는 것이기에. 나는 이렇게 어디를 가나 내 맘에 드는 곳을 찾는다. 내가 좋아하는 곳을. 그러고 나선 그곳과 정들이기를 한다. 그곳과 나 사이에 의미를 만든다. 의미를 쌓아간다.

서울 여의도공원에서 내 속살 같은 곳, 엄마의 품 같은 곳은 바로 ‘자연생태의 숲’ 안의 공간이다. 마치 안산 숲길을 걷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다. 이름 그대로 숲이다. 울창한 나무 사이로 항상 그늘이 져서 한여름에도 더위를 피할 수 있다. 내가 일하는 KBS 본관에서 들어가는 5번 출입구에서 가장 가까운 곳이기도 하다. 조용한 이곳이 지루해지면 마포대교, 한강 둔치를 향해 걸어가보자. 가다보면 잔디가 유난히 보기 좋게 깔린 곳이 나온다. 이름 하여 ‘잔디마당’. 들고 있던 종이를 깔고 근처에서 사온 샌드위치로 점심을 먹어봐도 좋을 것이다. 점심시간이 통째로 내 휴식시간이 되니까. 엉덩이가 아프면 군말 말고 일어나자. 또 좋은 곳이 있으니. 정자와 원두막이 있는 한국 전통의 숲 쪽으로 발길을 이어가보자. ‘원두막 곁에 있는 작은 연못’. 그 옆으로 펼쳐진 ‘작은 꽃밭들’. 난 여기서 어린아이가 되거나 한 마리 나비가 되어보고 싶다. 멀리 갈 듯 돌아오고 다시 떠날 듯 제자리를 찾아와보게.

공원을 걸으며 따스한 가을 햇살을 충분히 즐겼다면, 이제 원두막을 지나 ‘수세미 넝쿨 터널’을 걸어보는 것도 이색적일 것이다. 무르익은 수세미가 머리 위로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아슬아슬함과 그걸 통과하는 짜릿함이 있다. 이 터널은 11월쯤 낙엽이 아름다울 때가 가장 장관이다. 형형색색의 잎들을 통과한 햇살은 총천연색이 되고 만다. 이렇게 공원을 돌면서, 나는 ‘좋아하는 벤치’, ‘좋아하는 꽃밭’, ‘좋아하는 언덕’, ‘좋아하는 길’을 정하고 그곳을 계속해서 즐기고 있다. 이번 가을엔 이 넓은 여의도공원에서 자신만의 아지트를 만들고, 그곳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한번 즐겨보자.

하나 더. 나는 공원 산책을 하고 나면 꼭 커피를 찾는다. 먼저 KBS 연수동 근처 ‘데바수스(de Bassus)’를 추천하고 싶다. 연한 아메리카노가 구수한 맛이다. 산책 후 약간 허기진 배를 달랠 간식거리로 당근케이크도 일품이다. 또 다른 곳으로 KBS 신관 근처 ‘커피소녀’는 어떨까. 이 집에서 만든 두 종류의 카푸치노는 달달하고 부드러워 허기를 달래기에 적합하다. 그냥 산책하면서 커피를 즐기고 싶다면, 베이커리 ‘르 뽀미에(Le Pommier)’로 가서 아메리카노 한 잔을 뽑아들고 공원으로 가도 좋다. 커피와 산책, 내가 제일 좋아하는 두 가지, 이 가을 모두에게 추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