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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억 원이 동네 개이름입니까?”

한 드라마 외주 제작사 대표의 토로다. 이 대표는 새로운 드라마를 준비하며 한 남자스타에게 시놉시스와 대본을 건넸다. “내용도 좋고 캐릭터도 좋다”는 답이 왔지만 협상은 결렬됐다. 돈 때문이었다. 이 스타의 소속사가 회당 1억 원의 개런티를 요구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미니시리즈가 16부작 임을 감안하면 드라마 한 편으로 16억 원, 총 제작비의 4분의 1을 혼자 가져가겠다는 의미다.

이 스타는 영화에도 출연한다. 하지만 편당 몸값은 2억∼3억 원 선이고 비교적 규모가 작은 영화에 출연하며 턱없이 적은 출연료를 받기도 했다.

이런 모양새는 많은 스타들에게 그대로 적용된다. 영화에서는 돈을 적게 벌어도 ‘배우’로 평가받고, 드라마에서는 ‘스타’라 불리며 돈벌이에 힘을 주는 이중잣대를 꼬집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많은 스타들이 드라마보다 영화를 선호한다. 드라마가 성공하면 영화로 고개를 돌리고 영화가 몇 차례 실패해야 드라마 시장을 기웃거린다. 분명 드라마는 영화보다 돈이 된다. 현재 영화계 톱스타인 송강호 김윤석 하정우 등은 편당 출연료 6억∼7억 원에 제작지분 혹은 러닝개런티를 받지만 대부분 주연급 배우들의 개런티는 5억 원 미만이다.

하지만 뛰어난 외모와 높은 인지도를 앞세워 해외 시장에서 각광받는 스타의 경우 연기력은 조금 부족해도 일단 드라마에 출연하면 10억 원이 넘는 목돈을 챙길 수 있다.

그들이 드라마에 출연하며 엄청난 출연료를 요구하는 근거는 ‘한류’다. 자신의 인지도 덕에 외국에 비싼 돈을 받고 팔 수 있으니 그에 대한 몫을 달라는 것이다. 최근 방송된 드라마에 출연한 몇몇 배우는 회당 출연료 6000만 원에 해외 수출액에 따라 추가 금액을 받아 회당 1억 원의 개런티를 챙겼다. 문제는 그들의 요구가 한류 시장의 부침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거다.

한류를 주도했던 일본은 이미 호황기를 넘어 침체기에 접어들었다. 한 때 회당 30만 달러에 육박하던 드라마 수출액은 반토막이 났다. 하지만 한류스타들의 몸값은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또 다른 외주 제작사 대표는 “시장이 좋을 때는 몸값을 올리고 시장이 좋지 않을 때는 동결이다. 스타가 없으면 방송사에서 편성을 주지 않으니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그들을 쓴다”며 “만약 수출길이 막혀 손해가 나면 그 피해는 제작사를 비롯해 정산 받을 때 후순위인 스태프와 보조출연자에게 돌아간다”고 말했다.

스타들이 드라마에 출연하는 또 다른 이유는 ‘CF’다. 대중성 노출도가 높은 드라마가 성공하면 영화에 비해 CF섭외 빈도가 급증한다. 광고주 역시 자사 모델이 출연하는 드라마의 앞뒤에 해당 광고를 붙이기 때문에 드라마 출연을 요구하곤 한다.

한 광고업계 관계자는 “광고 계약 만료 시기가 다가오면 드라마 출연을 서두르는 스타들이 많다. 광고주는 트렌디한 배우들을 주로 쓰려 하기 때문에 시류를 타지 않는 톱A급 스타 몇몇을 제외하곤 광고주의 눈치를 보며 드라마 출연 시기를 저울질한다”고 전했다.

반면 배우들 입장에서는 한국 드라마 제작 시스템의 문제를 지적한다. 영화는 모든 촬영과 후반작업까지 마친 후 개봉하는 것과 달리 드라마는 사전제작을 엄두도 내지 못하는 실정이다. 쪽대본을 받아들고 촬영하고 밤을 새우기 일쑤다. 시간을 쪼개며 바투 다니다 보니 크고 작은 사고가 이어진다. ‘하얀거탑’과 ‘베토벤 바이러스’ 등 굵직한 드라마를 탄생시킨 배우 김명민이 “드라마는 수명을 단축시키는 작업”이라고 말하는 이유다.

한 연예기획사 대표는 “연기력이 좋은 배우들도 드라마에 출연하며 연기력 논란에 시달릴 때가 있다. 앞뒤 내용을 모르는 상황에서 쪽대본을 보며 어떻게 감정을 연결시켜 연기할 수 있겠는가”라며 “배우로서 깊은 고민과 충분한 모니터를 거치며 작품을 만들어갈 수 있는 영화를 선호하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고 반박했다.

안진용 기자 realyong@munhwa.com